견딘다.
흔적과, 얼룩과, 문질러도 기어코 남고야 마는 수평과 수직의 힘이 지나간 자리를.
누군가의 등에 기대지 않고 비치적비치적 걸어가는 일을.
어지러이 흩어지는 부산물들을.
심상하게 후벼 파는 무구를.
한없이 작아진 채로 제 몫을 해내는 그 초라한 기꺼움을.
공허가 창궐할 땐 시발됨을 읽는다.
어김없이 나긋나긋 조곤조곤한 모서리를 사랑하게 된다.
어느새 쓰게 된다.
물푸레나무 식탁의 일기 무화
Author’s Note
몽당연필은 홀더에 끼워진 채 식탁 위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말리거나 의미를 붙이지 않고,
그 움직임을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이미 닳아 제 길이를 잃었지만
보조된 몸으로 끝까지 나아가며
나무의 결을 후벼 파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에는 설명되지 않는 공허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습니다.
지워지지 않는 얼룩과 긁힘,
문질러도 남는 결들은
감정이 아니라 무심함이 통과한 자리였습니다.
공허는 결핍이 아니라
무언가가 지나가며 남긴 압력처럼
표면에 조용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 글은 견딤에 대한 고백이 아니라
공허를 통과한 흔적을 기록한 메모에 가깝습니다.
어느 순간 쓰고 있었고,
그로써 충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