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고맙습니다. 그리고 잘 지내요.

여자점원의 이야기3

by 박하준

정말이지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의 탄생. 그리고 죽지 않는 이 저주.

지금까지 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보냈던 이야기.

그리고 국화빵 장수인 당신을 만나기 전 독립운동을 위해 힘쓴 날들.

그리고 나의 마지막 계획.


우리는 이야기에 얼마나 몰입했을까 해가 저물 때쯤 내 길고 긴 이야기는 끝났다.

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는 내가 편히 말할 수 있게 열심히 경청해 주었다.

그 사소한 배려는 유자차처럼 따뜻해서 내 속 얘기를 모두 꺼내게 하였다.


“끝이에요. 정말 길죠? 믿지 않아도 좋아요. 사기꾼이라 생각해도 좋고”


그는 침묵을 이어갔다.


아 이 사람 역시 나를 떠나려나 보다 생각할 때쯤 그의 푸른 바다 같은 눈동자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한 방울 한 방울. 그 방울들은 모여서 거대한 장마 구름을 형성했다.

예상과는 다른 그의 눈물에 나는 당황했다.


지금까지 내 이야기를 듣고 불쌍하다 한 사람은 있었어도 운 사람은 없었다.

그의 눈물은 나에 대한 단순한 연민일까?


“흑흑…. 흑….”


나는 당황해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고장 났다.

일단 그의 바다같이 푸른 눈에서 눈물이 그치길 기다렸다.

눈물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을 때쯤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많이…. 많이… 힘들었겠다.”

“많이…. 많이… 외로웠겠다.”


300년 전을 마지막으로 운 적이 있었을까?

일본군의 독립으로 동지들을 잃었을 때도 울기보단 분노의 감정이 앞섰던 나였다.

그만큼 오랜 세월 눈물에 많이 무뎌진 나였다.

하지만 이 남자의 말에 무너졌다.


메마를 때로 메마른 내 감정에 정말이지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눈물이 계속 떨어졌다. 한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오랫동안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단순한 공감이 아니었을까.

그 단순한 말이 500년이 걸렸다.


그는 내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울음이 그쳤을 때 나를 안아주었다.

그의 품은 따뜻했다. 그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굽는 국화빵처럼.

우리는 그날 단순히 단골과 사장 사이라 부르기엔 애매한 관계가 되었다.


동지들을 위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내 마지막 계획 실행까지 5일 정도 남았다.

그동안 쉬지 않고 국화빵 냄새가 나는 그 낡은 천막을 찾았다.

이제 이 사람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 이상했다.


어느 순간부터 허락한 적은 없지만 내 일상의 일부가 된 사람이었다.

가난한 사람이 쌀밥을 먹을 때처럼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했다.

벚꽃 개화와 함께 날씨는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었고, 내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밥은 먹었어요?”

“아 오늘은 바빠서 아직이요…. 헤헤.”

“으이구. 이따 끝나고 나랑 잔치국수 먹으러 갈래요?”

“에? 잔치국수 좋죠! 만두도 시켜요. 우리!”


이따 그녀와 저녁을 함께 먹을 생각에 국화빵 장수는 퇴근까지 버틸 힘이 났다.

그녀 역시 국화빵 장수의 밝아진 표정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 이상했다.

왜 그가 웃으면 나도 웃고 그가 기쁘면 나도 좋을까. 이 감정은 대체 무엇일까.

일단 중요한 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슬슬 그와의 만남도 정리해야 한다. 하지만 계속 보고싶다.

당연히 욕심인 걸 안다. 하지만 계속 욕심내고 싶다.

어짜피 마지막이니깐 지금만큼은 조금 이기적이어도 되지 않을까?


“킥킥. 국수도 곱빼기로 시켜요.”

“곱빼기요??? 그 말 무르시면 안됩니다!”


우리는 그날 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건 그가 곱빼기 국수를 두 그릇이나 먹었다는 것과 집 가는 길 내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 남자의 손은 그가 파는 국화빵처럼 따뜻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훌쩍 지나갔고,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이제는 정말 그에게 이별을 고해야 한다.

평소 천막에 갈 때면 항상 발걸음이 가벼웠지만, 오늘만큼은 무거웠다.


“이제 이 천막도 익숙한 국화빵 냄새도 마지막이구나….”


천막에 들어가기 전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어떤 중요한 일을 하기 전 숨을 들이마시는 것은 지난 900년 동안 이어진 나만의 의식이다.


“이별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900년 전 그녀의 인생에 첫 이별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다음 이별. 그 그다음 이별. 그렇게 9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왔다.

이별은 신기하다.


숱한 이별을 해왔던 그녀도 이별 앞에서는 여전히 어린아이가 된다, 천막 문을 열자 국화빵 장수가 보였다.

국화빵 장수는 나를 보고 환히 웃었다.


“어서와요! 이제 완전 봄 날씨에요!”

“그렇네요.”


평소 따뜻하기만 했던 그의 미소였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나를 조금 아프게 하였다.

이제는 국화빵 장수의 웃음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마지막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오늘 국화빵 많이 팔았어요?”

“갑자기 뜬금없이 뭐에요. 킥킥. 제 살림 걱정 해주는거에요?”

“아니 그냥….”

“적당히 팔았어요. 날이 따뜻해져 겨울만큼 많이 팔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먹고살만큼은 팔았으니 걱정 마요.”

“걱정 안 했거든요.”


이제는 진짜 마지막 작별을 고해야 한다.

하지만 그와의 마지막 대화니깐 조금은 아주 조금 정도는 더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아 끼니는 거르지 말고 잘 좀 챙겨먹어요.”

“에? 허허. 걱정 마요. 장사 끝나면 남들보다 3배로 먹고 있어요.”

“그리고 아직 밤에는 추우니깐 외투 챙겨 다니고요. 감기 걸리니깐.”

“에? 허허. 오늘 무슨 날인가요? 여자한테 걱정 처음 받아보는데 생각보다 좋네요.”

“알겠냐고요!”

“알겠어요. 알겠어! 허허. 걱정 마요.”

“그리고…. 아….”

“네?”


이제는 진짜 말해야지 하고 운을 띄웠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별이라는거 쉽지 않구나. 그래도 해야 한다.

이 사람 덕분에 잠깐이지만 행복했으니깐.

잠깐이지만 이 사람이 내 일상이었으니깐.


“잘 지내요.”

“…….”


국화빵 장수는 내 작별 인사에 말이 없었다.

말없이 밀가루 반죽을 틀에 넣고 굽기만을 반복했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 중인걸까.

어쨌든 인사도 했으니 이제 가봐야겠다.

아 마지막으로 이 사람 이름을 물어보고 싶은데 욕심이겠지.


“그럼 이만….”

“저기요!”

그때였다. 국화빵 장수가 소리쳤다.


“나도 할 말이 있어요! 있잖아요. 나도 그쪽 덕분에 행복했어요. 그쪽을 만나고 매일매일 그쪽이 언제 올까 기다렸어요!”


“아….”

“그쪽은 저에게 있어 잊지 못할 단골손님이었어요!

“…….”

“아니 어쩌면 단골손님 그 이상이었어요. 잘 지내요…. 그쪽도.”


나는 뒤를 돌아 그를 볼 수가 없었다.

눈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계속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 그를 보고 싶었다.

이대로 뒤돌지 않으면 후회할 걸 안다.

그래도 가야 한다.

“그쪽도 저에게 국화빵 장수 그 이상이었어요….”

“….”


눈물을 겨우겨우 집어삼키며, 목 안에 있던 말을 힘껏 내뱉었다.

내 마지막 인사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배려이자 그에게 고백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마지막 말과 함께 서둘러 낡은 천막을 나왔다.

그리고 하염없이 어디론가 뛰어가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골목에서 펑펑 울었다.

추운 겨울 갓 나온 국화빵처럼 항상 따뜻했던 당신.

이젠 진짜 안녕.


나는 감정을 추스르고 최후의 계획을 위해 여인숙으로 향했다.

폭탄을 들고 이제 동지들의 복수와 조국의 복수를 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이 삶도 내 사명과 함께 끝낼 때가 되었다.

여인숙에 당도했을 때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폭탄. 가장 중요한 폭탄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 차리고 침착해 생각해보았다.

“내 계획을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구지?”


동지들은 모두 죽었다. 그리고 마지막 폭탄은 오직 나를 위한 폭탄이다.

다른 독립투사 누구도 폭탄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생각에 생각을 반복하던 중. 한 기억의 파편이 내게 떠올랐다.

벚꽃 구경 당시 나와 함께 있었던 한 남자.

바로 국화빵 장수였다.

난 그 남자에게 내 마지막 계획을 말했다.


“설마…. 안돼!”


되찾은 기억의 파편과 함께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만약 그 남자에게 폭탄이 있다면 그 남자를 말려야 한다.

그 남자만큼은 이 일에 휘말리게 해서는 안된다.

숨도 쉬지 않고 총독부 앞으로 달렸다.


달리면서 국화빵 장수가 제발 무사하기를….

그가 무모한 짓을 하지 않았기를 바랬다.

총독부에 거의 다 왔을 때쯤 사람들이 모여 바글바글했다.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이 불길한 예감이 제발 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머어머…. 저거 국화빵 장수 아니여?”

“에구머니. 저걸 어째….”

“아니 저 사람이 대체 왜…. 어째서….”

“잠시만요! 저 좀 지나갈게요! 잠시만요!”


사람들을 뚫고 총독부 앞에 당도했을 때 그녀가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폭탄은 빗맞아 터졌는지 총독부의 담장만 무너져 있었다.

그리고 국화빵 장수는 그 앞에 쓰러져있었다.

몸에 총알이 얼마나 박혔는지 피범벅이었다.


그는 숨을 쉬는 것조차 버겁고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힘든 그 호흡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화빵 장수에게 뛰어갔다.

그리고 그를 안고 울었다.

나를 보자 그가 웃었다.


“흑…. 바보. 당신은 바보야. 대체 왜 이런 선택을 한거야…. 흑흑.”

“헤헤…. 다… 다행이다….”

나를 보자 그가 웃었다.


그 미소는 내가 낡은 천막에 방문할 때면 항상 나를 보고 웃었던 그 미소였다.


“이 바보야!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당신하곤 상관없는 일이잖아!”

“헤헤. 미… 미안해요.”

“대체 왜… 왜! 흑흑.”

“그…그래도. 헉헉….”

“말하지마! 내가 당신 병원 데려가서 어떻게든 살릴거니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자신의 끝이 되었음을 직감한 것 같았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지만 이제 정말 끝이 왔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힘을 쥐어짜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

국화빵을 만들 때처럼 진심에 진심을 담아서 외쳤다.


“저기… 여…여어. 헉헉.”

“제발 말하지마요. 병원가서 치료 받고 그때 말해요.”


그는 내 손을 꼬옥 잡았다.

그의 손은 그날 국수를 먹고 집가던 길 잡았던 손하고 달리 정말 차가웠다.

국화빵 장수는 이제 정말 마지막이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서둘러 그녀에게 말해야 했다.


“여… 여…. 여연… 연모…. 헉. 연모…. 헉헉. 연모합니다.”

그 말과 그는 눈을 감았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흑흑…. 나도…. 나도 연모해요….”


총독부 앞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우릴 보며 안타까워했다.

시간이 흘러 밤이 되고 많던 사람들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총독부 앞에서 그를 안고 울었다.

내 슬픔에 하늘도 슬펐을까 내가 국화빵 장수를 만나고부터 비가 계속 내렸다.


울고 또 울었다. 지치면 잠깐 멈추었다.

그리고 기력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면 다시 울었다.

나를 가엾이 본 낡은 천막의 또 다른 단골이었던 국밥집 이모가 우리 근처로 왔다.


“아이고…. 색시. 슬픈거 다 알아.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아마 국화빵 장수도 그걸 바랄거여….”

“…….”

“얼릉 나랑 같이 가자 이사람아!”

국밥집 이모는 나를 자기 가게에 데리고 갔다.

그리고 뜨끈뜨끈한 국밥을 내주었다.

“자 얼릉 먹어! 얼릉!”

“흑. 가… 감사합니다. 흑흑.”


뜨끈뜨끈한 국밥은 지칠대로 지치고, 모든걸 포기하려 했던 내 마음에 다시 불씨를 살려 주었다.

그리고 국밥집 이모의 순수한 마음은 나를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해주었다.

정신을 차린 나는 일단 그의 시체를 일본 순사가 욕보이지 못하게 화장했다.

그리고 재가 된 국화빵 장수의 뼈가루를 산언덕에 올라가 멀리멀리 뿌렸다.

그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뿌렸다.


“거기서는… 부디 행복해요.”


국화빵 장수를 떠나보낸 그녀는 이제 삶과 이 땅에 미련이 없어졌다.

그래서 멀리 떠나려고 하였다.

여인숙에 남아있는 짐을 정리하던 중 한 편지가 떨어졌다.

편지를 열어보자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국화빵 장수가 남긴 편지였다.


그날, 같이 예쁜 벚꽃을 본 당신에게.


처음에 당신을 보았을 때 당신은 무슨 사연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괜히 신경 쓰였습니다.

그땐 단순한 호기심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금세 호기심 그 이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벚꽃 나무 아래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당신의 계획을 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을 연모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어떤 남자가 자신이 연모하는 사람을 먼저 보낼 수 있을까요?

많이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저를 이어서 국화빵 장수가 되어 주세요. 저 대신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세요.

마지막까지 이기적인 부탁을 하고 가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연모합니다.


아 참 제 이름은 정 길손입니다. 우리 통성명도 안 했네요.

만약 다음 생에 또 만난다면 그때는 꼭 이름을 알려주세요.


그녀는 편지를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나지막히 말했다.


“흑…. 흑. 연이에요 내 이름은 김연이….”


시간이 흘러 낡은 천막에는 국화빵 말고 새로운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붕어빵 냄새였다.


비록 파는 음식은 달라졌지만 따뜻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추운 겨울이 되면 사람들은 따뜻한 마음이 가득한 이 낡은 천막에 방문한다.


처음엔 국화빵 장수의 부탁에 시작한 일이지만 이제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누는 이 일이 즐겁다.

그녀는 오늘도 밀가루 반죽에 팥과 슈크림을 가득 넣는다.

이 붕어빵을 먹는 사람들이 행복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도 가득 담는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 때문일까?

천막은 오늘도 따뜻한 온기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