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그 여자 점원의 이야기2
한 남자가 열심히 국화빵을 굽고 있을 때 당시 나는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
평소 세상일에 간섭하는 걸 싫어하지만, 이번만큼은 간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독립군에 들어가 투쟁했다. 하지만 무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일본군의 기습으로 어제까지 함께 웃고 울던 전우들이 죽었다.
나는 그들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꼭 살아남아 독립을 외치고자 하였다.
추격군을 피해 연변에서 함경도, 함경도에서 평양, 평양에서 개성을 지나 경성에 당도했다.
두 번째 일은 독립 투사들에게 폭탄이나, 권총을 몰래 전달하는 역할이었다.
내가 전달한 폭탄과 권총으로 독립투사들은 독립을 부르짖으며 투쟁했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을 기억했다.
마침내 하나의 폭탄이 남았다. 나는 그 폭탄을 들고 원래라면 오늘 조선총독부를 향해 던지고자 하였다.
하지만 계획은 발각되었고, 일본 순사들을 피해 도망쳤다. 그 과정에서 팔에 총을 맞았다.
죽지 않는 이 지긋지긋한 삶이 이제 드디어 끝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쯤 천막이 보였다.
천막에서는 국화빵 냄새가 났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게 언제였을까.
나도 모르게 그 천막으로 향했다. 그때 그 국화빵 장수를 만났으면 안되었다.
나는 그날 의도치 않게 그 남자를 내 운명에 끌어들였다.
어쨌든 그 남자 덕분에 지긋지긋한 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독립을 외칠 수 있었고, 동지들의 복수를 할 수 있었다.
그 남자에게 먼저 든 감정은 고마움이었다.
일본 순사들의 경비가 삼엄해져 폭탄을 던지는 일은 뒤로했다.
국화빵 장수에게 고마움을 전달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 낡은 천막에 향했을 때 그 남자가 보였다.
“어서오세요. 어? 맞죠?”
“저…저기. 크흠. 그러니깐.”
“몸은 어때요? 이제 다 괜찮아진거에요?”
“네…. 뭐…. 덕분에.”
“휴. 다행이다.”
국화빵 장수는 나를 보곤 환하게 웃었다.
“그날 그렇게 사라져서 걱정을 얼마나 많이 했다고요.”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이었다.
“저… 저기. 그 그러니깐…”
“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어요?”
“그… 그게. 가.. 감사… 감사합니다.”
나는 그 말을 하고 볼이 빨개졌다. 얼마나 빨개졌을까.
국화빵 장수는 내 볼을 보더니 귀여운 듯 웃었다.
“에이 뭘요. 같은 조선인끼리 돕고 사는거지.”
“이 은혜 제가 꼭 값을게요.”
“음…. 그러면 일단 이 국화빵 하나 먼저 먹어줘요.”
“국화빵이요?”
동지 팥죽이 생각나는 팥앙금이 가득 들어간, 먹음직스러운 국화빵이었다.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든게 얼마만일까.
나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그 먹음직스러운 국화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뜨거웠다.
“하……. 호….”
그런 내 모습을 국화빵 장수는 흐뭇하게 보았다. 국화빵은 달고 맛있었다.
서둘러 나머지 남은 부분도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그리고 그를 보았다.
“저…. 여기 국화빵 20원어치 주세요!”
“네? 그렇게나 많이요?”
“네.”
“으이구. 손님 다 못먹어요. 5원어치만 드릴게요.”
“앗….”
“대신 앞으로 맨날 와줘요.”
“네?”
그 이후로 다음날이고 그 다음날이고 나는 그 천막에 향했다.
분명 따뜻한 다른 가게도 많았지만, 이상하게 그 천막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은 달랐다.
그 의미를 생각하려고 하다 보니 어느덧 단골이 되어있었다.
단골이 된 나를 그 국화빵 장수는 항상 반겨주었다. 이제 국화빵 천막은 나의 아지트가 되었다.
추운 겨울을 그 천막 덕분에 따뜻하게 보냈다.
어느덧 봄이 되고 거리에 벚꽃이 조금씩 피기 시작했을 때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그 천막에 방문했다.
“어서오세요. 오늘은 20분 늦으셨네요. 단골손님?”
“아…. 일이 조금 있어서. 오늘도 5원어치 주세요.”
주문한 국화빵이 나오고 그 국화빵을 한입 베어 물었을까.
국화빵 장수가 평소와 달리 어딘가 경직되어 있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아뇨? 아무 일도 없어요. 헤헤.”
“음? 무슨 일 있으시죠.”
“아 그게…. 손님. 그 혹시….”
“네?”
“내일 뭐하세요?”
국화빵 장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손님들에게 국화빵을 전할 때처럼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전했다.
“내일…. 음. 내일도 이 시간쯤 여기에 국화빵 사러 오는 것 말곤 뭐 없어요.”
“그래요? 저 내일은 하루 쉬려고요 손님.”
“아 그래요? 어쩔 수 없네요….”
하루의 즐거움이 사라져 아쉬워하던 나에게 국화빵 장수는 다시 조심스럽게 진심을 전했다.
“내일은 손님하고 벚꽃 구경 가려고요.”
“네… 네에?”
그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그 당황스러움은 곧 내 볼의 색깔을 빨갛게 바꿨다.
그 당시 음식으로는 얼큰한 비빔국수 색깔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내일 저랑 벚꽃 구경 가요. 손님.”
“그… 그게.”
“저 벚꽃만 피길 기다렸어요.”
“아… 알겠어요! 저 일이 있어서 오늘은 먼저 갈게요.”
내 대답에 국화빵 장수는 흐뭇하게 웃었다. 서툰 시골 총각이라 하기엔 나름의 연애 고수였다.
그리고 천막을 뛰쳐나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달리던 중 그와의 약속 시간을 잡지 않은 게 생각났다.
그때는 무슨 용기였을까. 그와 정말 벚꽃 구경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다시 천막으로 돌아갔다.
“어? 뭐 두고 갔어요?”
“내일 청계천에서 1시쯤 만나요!”
그 말과 함께 나는 다시 천막에서 나와 무작정 달렸다.
그날은 볼의 색깔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 전까지 달렸었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건 100년 만이었을까.
그와의 벚꽃 구경 때문은 절대 아니었지만 예쁘게 하고 가고 싶었다.
그래서 시장에서 예쁜 살구색 머리삔도 샀다.
그녀는 내일 약속에 늦을까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나라를 뺏기고 떠돌이 생활을 반복하는 그녀는 여인숙에서 지냈다.
그 여인숙은 웬만한 호텔보다 아늑하고 따뜻했다.
벚꽃 구경을 위해 빨리 잠에 들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설레임을 느껴서일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의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다.
이는 국화빵 장수도 마찬가지였다.
태어나서 여자랑 첫 벚꽃 구경.
국화빵 장수의 마음속은 장작불을 마구 뗀 온돌방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다음날이 밝았다. 국화빵 장수는 2시간이나 일찍 나갔다.
평소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격을 가진 그였지만, 벚꽃 구경만큼은 그에게 달랐다.
4월 초 청계천의 벚꽃 나무는 예쁘게 만개하였다.
그녀가 언제 올까 예쁜 벚꽃 나무를 보며 국화빵 장수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였다. 서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었다.
벚꽃잎이 휘날려 시야가 잠깐 가려졌다.
시야를 가린 벚꽃 잎을 치우자 국화빵 장수는 깜짝 놀랐다.
바로 앞에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헉.”
국화빵 장수는 그대로 코피를 흘렸다.
“어…. 이봐요! 괜찮아요?”
“아…. 네. 헤헤.”
바보처럼 웃음이 자꾸 나오는 국화빵 장수였다.
그녀의 뒤엔 예쁜 벚꽃잎이 흩날리고 있었고, 살구색 머리삔은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분홍 벚꽃을 뒤로 한 그녀는 무대 속 여주인공 같았다.
그리고 그녀 주변의 흩날리는 분홍색 벚꽃잎 모두 그녀의 미모를 돋보이기 위한 무대장치 같았다.
하지만 이건 연극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무대 속 여주인공이 아니었다.
오늘 나와 함께 벚꽃 구경을 할 우리 가게의 단골이었다.
“저… 저기. 오늘 예쁘세요. 저 벚꽃처럼.”
“네?”
“마치 연극의 여주인공인줄 알았어요. 반했어요. 그 짧은 순간에.”
“킥킥. 어제 밤새 멘트 준비하신거 아니죠?”
“아…아니에요! 진심이에요!”
“흐음.”
연애와는 오랫동안 담쌓고 지내 국화빵을 맛있게 굽는 법밖에 모르는 그 남자의 서툰 고백에 그녀는 피식 웃었다. 첫 반죽에서 나온 국화빵처럼 삐뚤삐뚤 서툰 그가 귀여웠다.
나는 첫 만남에 코피를 흘린 남자와 함께 청계천을 따라 예쁜 벚꽃을 구경했다.
동지들의 복수. 그리고 독립. 오늘 하루만큼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이 남자와 벚꽃 구경에 집중하고 싶었다.
청계천을 따라 한참을 걸었을 때쯤 국화빵 장수는 내게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봤다.
“저…. 궁금한게 하나 있어요.
”뭐에요?“
”그날…. 저희가 처음 만난 날. 무슨일이 있었던 거에요?”
나는 그의 질문에 한참 동안 국화빵 장수를 빤히 쳐다봤다.
아마 그의 눈을 계속 봤었던 것 같다.
그의 눈동자는 넓은 바다 같았다. 고요하지만 거대한 바다.
모든 비밀을 말해도 괜찮을 속 깊은 바다.
“말하자면 길어요. 오늘 밤새 얘기할지도 몰라요.”
“괜찮아요! 저 손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싶어요!”
“내일이 아니라 모레 끝날지도 모르는데요?”
“일주일이 걸려도 상관없어요! 알려주세요!”
“음…. 저는 사실…….”
이 사람이 파는 국화빵이 왜 인기가 많은지 알 것 같다.
아마 그 빵엔 그의 순수함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500년 전쯤이었나.
그 당시 소중한 사람에게 내 비밀을 털어놨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소중한 사람은 나를 괴물이라 여겼고, 곧 내 곁을 떠났다.
그 이후로는 절대 나의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오늘.
이 사람한테만큼은 말해도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