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 3호 소개>
독고진 과장 (정보를 잘 공유하지 않고 ‘진짜 정보’를 혼자만 독점하며 이를 통해 인정받길 원하는 사람)
닉네임 : 인포킹, 시크릿라인
특기 : 혼자 정보 독점하기, 기록이 남지 않는 방식으로 소통하기
<야루키의 관찰노트>
"기록되지 않은 정보는
제대로 공유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은 정보는
영원히 검증되지 않는다. “
“도대체 나라는 인간은
어디까지가 진짜 나고,
어디부터가 내가 아닐까?
핸들을 잡고 있는 내 손의
어디까지가 진짜 내 손일까?”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무라카미 하루키, 109p
“저희가 개발한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개선률이 17% 상승했습니다.
파일럿 검증은 완료 단계이고
내년부터 확대 적용할 계획입니다.”
독고진 과장의 설명이 끝나자 회의실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야루키 사원은 방금 받아 적은 내용을 찬찬히 다시 읽어 보았다. 관련 부서로부터 전달받은 메일에는 사용률이 10% 이하로 예상보다 낮은 상태고, 파일럿 검증은 아직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확대 적용에 대한 계획도 공식적으로 논의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쨌든 부장님 보고는 무사히(?) 끝났다. 야루키 사원은 노트북을 정리하던 독고진 과장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과장님,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지난주 회의에서는 사용률이 낮아서 사용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요. 오늘 말씀하신 개선률은 어떤 기준으로 계산된 수치일까요?”
“그건 제가 개발팀 담당자에게 직접 확인한 내용이에요. 자세한 계산 과정은 오후에 전화로 다시 확인해 볼 겁니다. 설마 그 팀에서 거짓 정보를 줬을 리는 없잖아요?”
짧은 적막이 감도는 순간, 독고진 과장 노트북 배경화면에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정보는 힘이다.”
독고진 과장의 메인 의사소통 수단을 언제나 전화다. 히스토리를 명확히 남길 수 있고, 누구에게나 쉽게 공유가 가능한 이메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유선 컨택을 선호한다.
”과장님, 개발팀에서 파일럿 관련해서 수정한 자료를 보내준다고 했는데 아직 자료가 안 왔더라고요. “
”잠시만요. 제가 바로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확인해 볼게요. “
”매번 전화하시기 번거로우실 것 같은데 제가 지금 메신저로 문의해 볼게요. “
”에이~ 아니에요. 소통하는 게 제 일인데요 뭘. 이메일 쓸 시간에 전화하는 게 훨씬 빠르고 편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개발팀과의 연락은 제 담당이니 야루키 사원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 뒤로 독고진 과장은 한참 동안 자리를 비웠다. 2시간 정도 지난 후, 개발팀으로부터 메일이 도착했다. 첨부파일을 열어보니 지난번에 보내준 것과 똑같다. 수정할 내용이 없다는 걸까, 아니면 수정한 내용을 실수로 반영하지 않은 걸까. 도통 알 길이 없다. 전화는 빠르고 편하지만 기록이 남지 않으니까. 독고진 과장과 개발팀 담당자가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었는지는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며칠 뒤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이메일도 없었고 이슈로 추가할 만한 내용도 없었다. 다만 파일럿 방향성이 바뀌었고, 일정이 조금씩 뒤로 미루어졌을 뿐이다. 독고진 과장은 회의 때마다 비슷한 말을 반복했다.
“문제없이 잘 진행 중입니다.”
“제가 직접 담당자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어느 날, 팀장이 독고진 과장에게 물었다.
“과장님, 파일럿 진행에 이슈는 없나요?”
“전혀 없습니다.
부장님께 보고 드린 것처럼
이번엔 ‘진짜’ 제대로 된 과제를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
야루키 사원은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진짜보다 더 무서운 건,
진짜인 척하는 거야.’
그는 늘 ‘진짜’를 말했지만 그 ‘진짜’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진짜’는 늘 그의 머릿속에만 머물러서 잘 보이지 않았으니까. 때로는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아는 정보‘가 힘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정보를 독점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Ideas worth spreading”라는 TED의 슬로건처럼 아이디어도, 정보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면 새로운 가치와 또 다른 쓰임이 만들어진다. 나만의 정보가 정말 필요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다른 사람만 알고 있던 정보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다양한 의견을 통해 정보의 실체가 밝혀지기도..)
그날 퇴근 전 야류키 사원은 확인된 내용과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구분해서 적은 회의록을 팀 전체 메일로 돌리면서 생각했다.
“정보는 힘이 아니라,
함께 일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