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땅끝보다 먼 완도까지
마침내 완도에 돌아왔다. 비행기와 버스를 합쳐 스무 시간 넘게 소요된 대장정이었다. 장담하건대, 카르타고로 돌아가는 한니발 바르카도 이처럼 고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천으로 날아오는 길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얼굴을 아는 완도 사람들과 같은 비행기를 탔는가 하면, 에어프랑스의 특별서비스 대상자로 선정되어 편안한 좌석으로 이동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완도 사람들은 군수와 의장을 포함한 완도군청 및 완도군의회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과는 샤를 드골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치며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주말마다 같은 축구팀에서 뛰는 지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완도군의 미래 먹거리인 해양치유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선진지인 프랑스 몇 도시를 견학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옮긴 좌석의 옆자리에는 한국 여행이 처음이라는 프랑스 친구들이 있었다. 낭트 근처 해변에 산다는 그들은 상냥하고 유쾌했으며, 비행하는 동안 내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었다. 대화는 대부분 영어였으나, 4년 전 해둔 프랑스어 공부도 도움이 되었다. 완전한 문장이라고는 "너 이름이 뭐야?" 밖에 구사하지 못했지만. 지금껏 한국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을 'Noemi'와 'Marieme’에게도 무지개와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앞선 두 가지 사건 외에도 예상치 못한 놀라운 만남 하나가 더 비행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이 이야기는 아껴둘 것이다. 왜인지 그러고만 싶은 이야기들이 여러분에게도 있을 것이다. 가까운 지인이나 손님 몇 명에게는 털어놓게 될는지도 모르겠지만.
인천공항에 도착해서는 가장 먼저 붉은 국물을 찾았다. 공항식당의 김치찌개 반상이 귀국 후 첫 식사로 간택되었는데, 카타니아 한식당 ‘판다’에서 먹었던 그것보다 더 매콤하고 깊으며, 진한 풍미가 있었다. 나는 고향의 맛은 바로 이런 것이며, 샤를 드골의 스타벅스에서 느낀 건 가짜 향수였다고 자성하고 말았다.
찌개를 바닥까지 비운 후에는 금붕어처럼 가까운 스타벅스를 찾았다. 모든 장기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띵하고 울릴 때까지 커피를 흡입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고향에, 아니 고국에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마침내 돌아온 완도에서는 시차에 적응하며 줄곧 몽롱한 시간을 보냈다. 사실 지금도 쏟아지는 잠을 억지로 참으며 글을 쓰는 중이다. 한편, 이 글은 돌아온 다음 날 아침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글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자주 노트북을 덮게 되었다.
버스와 기차, 비행기와 공항, 때로는 한밤과 새벽에도 문장과 단어를 고르고 다듬었던 여행에서와 화살처럼 쏟아지는 잠에 금방이라도 항복을 선언할 것 같은 지금은 대체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로맨틱한 문장을 떠올린다. 어쩌면 잘 돌아온 몸과 달리, 마음은 연착되어 아직 이탈리아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라는.
원래 있던 자리로,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여행이 끝난 것은 아니리라. 우리는 모두 평생이라는 긴 여행을 하고 있고, 주어진 삶에서 같은 게임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다. 소년과 소녀가, 친구와 스승을, 악당과 영웅을 마주하는 이 게임에는 하나의 규칙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른다.
오직 믿는 이에게만 벌어지고 찾아오는 이 종교적인 경험을 다시, 나는, 기다린다.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올 마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