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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이들이 섬으로 모여드는 것인지, 아니면 섬이 사람들에게 생채기를 내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하나는 섬이 온갖 상흔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이다. 소설가 아무개는 사람들이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가 ‘공간과 물건에 슬픔이 묻어있지 않아서’라고 했다. 섬이 이처럼 누더기가 된 것도 어쩌면 슬픔이 빠져나갈 통로가 부족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연휴가 끝나고는 기묘한 한 주를 보냈다. 수년 전 헤어진 애인에게 전화가 오는가 하면(받지 않았다), 여자를 소개해주겠다는 도시 친구의 연락을 받기도 했다(이 또한 수년만이었다). 무엇보다 앞선 두 사건이 하루 새 연달아 벌어졌다는 것이 나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주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학원 차 통풍구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반 뼘만 한 지네가 튀어나온 것이다. 발 빠른 녀석은 내가 손써볼 틈도 없이 금세 어딘가로 사라져버렸고, 한동안 차에 오를 때마다 나는 검고 재빠른 불안에 시달려야만 했다. 아이들이 내리고 혼자 있을 때 일이 벌어진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네 사건의 전모를 들은 추 형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섬에서 그런 일은 아주 흔하며 벌레는 조금도 무섭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오히려 자동차 내부로 숨어드는 새끼 고양이를 더 조심하라고 말했다. 재수가 없으면 피떡을 보게 될지 모른다며. 그는 마치 경험이라도 있는 듯 말했고, 그 덕에 나는 불안 리스트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할 수밖에 없었다.
기묘했던 일주일로부터 며칠 뒤, 추 형이 교통사고를 냈다. 들고양이를 피하려다가 다른 차에 커다란 생채기를 냈다는 감동적인 사연이었다. 아이들이 타고 있지 않았고, 운전자도 조금의 타박만 입었다는 건 다행이었으나, 이 일로 추 형은 직업을 잃게 되었다.
돈벌이가 사라졌다고 해서 추 형이 단골집에 출근하는 횟수가 줄어든 건 아니었다. 우리는 오히려 전보다 더 자주 만났고, 소주도 더 많이 비워냈다. 새로운 술버릇도 생겼다. 옆 테이블 이야기에 노골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언제나 그들이 우리보다는 더 즐거워 보였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은 우리에게도 안줏거리가 되었다.
흐르는 시간은 마침내 범람하고, 우리를 후회와 슬픔에 젖게 만든다. 나와 추 형에게도 좋거나 나쁘다고 할 수 없는 모호한 하루들이 지나갔다. 어김없이 흘러가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불투명한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