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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자의 반대말은 남은 자가 아니라 남겨진 자다. 그리고 섬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산다. 떠나려는 자와 떠날 수 없는 자. 어쩌면 섬과 섬사람의 슬픔이란 또다시 남겨졌다는 쓸쓸함에서 비롯되는 건지도 모른다.
아직 봄이 도착하지 않은 계절의 어느 날. 평소보다 늦게 단골집에 도착한 추 형은 이상한 소리를 했다. 이르면 다음 주, 늦어도 이달 안에 굴해를 떠난다는 거였다.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나는 어째서인지 분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껏 깃발을 드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일 거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리라.
한편 추 형의 돛은 육지를, 그것도 대단지 아파트가 올라갈 신도시의 건축 현장을 향하고 있었다.
“몸은 되겄지. 그래도 돈은 꽤 될 거여...”
“언제 한번 놀러 와. 맛난 거 사줄라니까.”
잘 가라고도, 가지 말라고도 하지 못한 채 소주만 들이키는 내게 추 형은 언제나처럼 별말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약간 들떠 보였다. 돛을 올려 신도시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도 삶도 단단히 뿌리를 내릴 거라 믿는 모양이었다.
공교롭게도 옆 테이블에서는 청년들이 환송회를 벌이고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굴해를 떠나 도(道)로 갈 예정이라고. 잔뜩 들떠 있기는 그녀도 마찬가지다. 잠시 후 그녀가 잔을 들고 입을 열었다.
“지난 몇 년은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도 여러분 덕분에 몇 가지 좋은 추억을 만들었으니 꼭 놀러 올게요.”
단골집을 나온 추 형과는 부둣가에서 몇 잔을 더 마시고 헤어졌다.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른다며 작별 인사를 건네는 그의 눈에는 이제 처음 보는 연민까지 서려 있었다. 터져 나오려는 욕은 가까스로 참아냈지만, 나는 그때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지고 범람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그를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이후의 기억은 부서진 조개껍데기처럼 남아 있다. 단골집으로 돌아갔고, 환송회 테이블에 시비를 걸다 쫓겨났으며, 다시 부둣가로 돌아와, 비틀비틀, 발목을 심하게 삐었고, 바다에 오줌을 뿌리다가 휘청, 그리고 풍덩.
명백한 사고였다. 하지만 바다를 조금 들이키자 술로는 해결되지 않았던 갈증과 불꽃이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이윽고 한 가지 쓸쓸한 사실이 떠올랐는데, 나라는 인간이 수영을 조금도 할 줄 모른다는 거였다. 한참을 버둥거리며 소리쳐 봤지만 나를 구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사실이 나를 더욱 힘 빠지게 했다. 나는 곧 나비처럼, 속절없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바닥은 상상했던 것보다 차갑고 어두웠다. 가라앉으면 가라앉을수록 떠오르는 것도 있었다. 지네, 고양이, 조개들의 무덤, 섬 곳곳에 흉물스럽게 버려진 녹슨 닻과 헤어진 애인들의 얼굴 같은. 그들이 전부 사라진 후에는 나른한 졸음이 찾아왔다. 어쩐지 마음도 편안해졌다. 드디어 꿈이 없는, 잠다운 잠을 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