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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인 Aug 16. 2024

나의 표류기 7

7/8

 아포가토(affogato)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에스프레소를 얹어 먹는 디저트다. 뜨거운 에스프레소의 공격에 설산 같은 아이스크림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은 정말이지 숨 막히게 아름다운 풍경. 이탈리아어 ‘affogato’에 ‘물에 빠진’, ‘익사한’, ‘익사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름부터 서사까지 빠짐없이 완벽한 디저트라 할 수 있겠다.


 나를 구한 건 휴가차 굴해에 와 있던 낚시꾼 ‘위’였다. 노련한 낚시꾼인 그는 파도가 치거나 물고기가 튀어 오를 때와는 다른 파문이 이는 것에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고 했다.

 새벽의 어둠, 생경한 풍경, 불안정한 시야. 모든 것이 모호한 상황에도 위가 경찰에 신고하기로 마음을 먹은 건 순전히 자신의 느낌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낚시는 그에게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에도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경험은 감각을 날카롭게 제련했다. 그리고 추처럼 가라앉던 한 인간을 바닥으로부터 건져 올렸다.

 병원에서는 나라는 의식이 이틀하고도 한 시간이 더 지나서야 돌아왔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사이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혼수에서 흔히 경험한다는 환상이나 유체 이탈 같은 체험도 내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온 감각은 목이 몹시도 마르다는 것, 그리고 전보다 어깨가 가벼워졌다는 것뿐이었다.

 병실에는 웬일로 아버지가 찾아와 있었다(그는 지금껏 섬에는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었다). ‘위’와 함께 나의 입원 수속을 도운 추 형은 내가 깨어나기 몇 시간 전 신도시행 버스를 탔다고 했다. 별로 서운하지는 않았다.

 사고를 빌미로 아버지는 나를 도시로 불러들이려 했다. 어머니가 떠났을 때, 그리고 내가 도시를 등질 때도 별다른 말이 없었던 그로서는 의외의 제안이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 내가 그러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그저 해야만 하는 자신의 역할을 하려고 했을 뿐이라는 것도.


 의사는 나에게 좀처럼 보기 드문, 말하자면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했다. 익수자 대부분이 폐 또는 뇌에 크거나 작은 손상을 입는데, 내 경우에는 조금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의사라는 종족은 낚시꾼과 달리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이들이다.

 의사는 알지 못했지만(아니 알 수도 없었겠지만) 나라는 세계는 사고 이후 크게 바뀌어 있었다. 오직 나만이 그걸 알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돛을 올릴 때라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껏 내 안에서 솟아오르려 부단히도 애를 썼던 희고 널찍한 그 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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