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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무너진 평등, 그리고 진짜 변화는.....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사회

by 윤호근

현장에서 무너진 평등, 그리고 진짜 변화


직장 내 장애인식개선교육이 의무화되기 전의 일이다.


나는 우리 학생을 데리고 자동차 부품 조립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총무과 인사담당자를 만나 학생의 장애 특성, 직업교육 과정, 기능훈련 내용, 그리고 직장인으로서 갖춰야 할 예절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면접은 합격이었고, 2주간의 실습을 거쳐 정식 채용하기로 했다.


학생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입니다. 간단한 조립 작업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다음 날부터 현장 실습이 시작되었다.


첫날, 나는 학생과 함께 회사에 갔다. 인사담당자가 현장 책임자인 반장님께 학생을 소개시켰고, 나는 장애 특성과 유형에 대해 간단히 설명드렸다. 일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나도 옆에서 함께 작업을 했다. 3일 동안 매일 아침 회사로 출근해서 학생과 함께 오전 작업을 하고 돌아왔다.


일주일이 지나자 학생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 저 회사 다니기 싫어요."

"왜? 무슨 일 있어? 일하기 싫어? 어려워?"


학생과 단둘이 대화를 나눴다. 그때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선생님 계실 때는 반장님이 잘해주시고 웃으면서 잘 가르쳐 주세요. 그런데 선생님 안 계실 때는 욕하고 '그것도 못 하냐?', '장애인이면 집에서 엄마랑 같이 있지', '일도 안 되고 못하는 애가 와서 생산성도 안 나'고 말해요."


나는 학생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 학생은 성실한 학생이었다. 물론 작업 속도가 조금 느릴 수는 있다. 하지만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나 싶었다.


나는 다시 반장님과 대화했다. 반장님은 평소 비장애인들을 대하듯 말투가 센 편이고, 장애인을 처음 겪어본 사람이라 약간의 욕도 섞어서 이야기했다고 했다.


나는 반장님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근무하는 아주머니들도 함께 교육했다. 특히 현장에서 장애 인식이 되지 않으면 우리 학생들이 겁을 먹어서 일을 할 수 없으니, 현장 직원들을 찾아가며 장애 특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 후 학생은 정식으로 취업했다. 하지만 몇 개월 못 하고 퇴사했다.


현장에서 일은 둘째 치고, 반장님, 현장 아주머니들, 그리고 외국인 근로자들까지 "일 못 한다"고 수근거리는 것을 학생은 참지 못했다.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나는 회사 측에 이야기했다.


"사장님, 부장님께 이야기해도 소용없습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현장 직원들을 설득시켜야 합니다. 회사가 잘되고 이익을 내는 것은 직원들의 단합된 모습에서 나옵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평등하게 일할 권리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일을 잘 못한다고 평등권을 박탈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평등은 똑같이 일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장애인도 같은 공간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일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겪으며 깨달았다. 제도와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경영진의 선한 의지만으로도 부족하다는 것을. 진짜 변화는 현장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법으로 장애인 의무고용을 정하고,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의무화할 수는 있다. 하지만 현장 직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장애인 근로자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반장님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장애인을 처음 만나봤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 아주머니들도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생산성에 대한 압박 속에서 느린 작업자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느리더라도, 서툴더라도, 장애인도 일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단순히 법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존중의 문제다.


평등이란 무엇인가?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똑같이 대우하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모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똑같은 속도로 일할 수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장애인을 일터에서 배제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조금 느리다면 작업 방식을 조정하면 된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주면 된다.

그것이 함께 사는 사회다. 그것이 평등한 사회다.


지금은 장애인 의무고용제도가 있고, 장애인식개선교육이 의무화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제도는 만들어졌지만, 사람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변화는 현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경영진의 선언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이해와 배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 학생은 결국 그 회사를 떠났지만, 나는 그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장애인 취업 지원은 단순히 일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현장의 인식을 바꾸고,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까지 포함된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그렇게 되어가야 한다. 장애인이 일터에서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평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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