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며칠 전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이전에 해외 연수나 출장을 갔을 때는 인권, 차별, 무시, 빈곤, 외면, 측은지심, 불쌍함, 욕심, 나태와 같은 단어들을 크게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유독 올해는 그런 생각들이 많이 든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자부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안타까운 장면을 보고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1960~70년대에는 그랬을 텐데, 그 시절을 생각하지 못하고 지금에 와서야 개도국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불쌍한 모습을 보고 측은지심이 생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10년 전에도 개도국을 여행했고, 2025년에도 개도국을 갔는데, 지금에 와서야 이러한 차별과 인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가족여행을 통해 나는 그곳에서 어른이 아이에게 앵벌이를 시키는 것을 보았다. 앵벌이라는 것은 정말 저급한 용어이지만, 그곳에서는 어머니가 아이를 예쁘게 치장하고, 4~5살밖에 안 되는 아이에게 립스틱을 바르고, 음악을 틀어 그 앞에서 춤을 추게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여행자들은 그것을 보고 조그만 바구니에 돈을 넣고 있었다.
나는 순간 아이보다는 엄마에게 관심이 갔다. 그 엄마는 아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둘째는 엄마 등에 업혀 있었다. 정말 몇 푼 안 되는 돈을 받고자 길거리에서 열심히 춤추는 아이와, 그것을 지켜보는 엄마의 대조되는 장면을 보았다.
10년 전에는 어린아이들이 "1달러" 하면서 앵벌이를 했지만, 지금은 물건을 들고 다니며 팔고 있다. 그나마 좋아진 것이다.
그런데 어린아이를 음악에 맞춰 2~3시간 동안 춤을 추게 하는 부모를 볼 때면 아동 착취가 생각난다.
아동 노동 착취라고 할 수 있겠지. 날이 밝을 때는 엄마와 어린이가 없고, 오후 식사 시간 때 나와서 음악을 틀어 춤을 추게 하는 것이 과연 아동 노동 착취인가, 아니면 아동 인권 문제인가?
그것을 보는 여행자들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춤추는 아이에게 다가가서 사진도 함께 찍으면서 바구니에 돈을 놓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그들의 방식과 살아가는 모습을 내가 판단하고 정리할 수는 없지만, 결코 부모들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내 어릴 때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삶을 살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서로 생각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과연 아동을 이용한 구걸이 존중받아야 할 문화적 차이인가?
나는 생각한다. 내가 태어난 곳이 어두운 곳이 아니라 광명이 있는 곳에 태어난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내가 살고 있는 내 나라의 인권과 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먼저인지, 더 나아가 다른 나라의 인권과 차별도 생각해야 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오늘도 그들을 생각하면 나는 그것을 보고 회피한 나 자신이 왠지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 않고, 노력하면 무언가 될 수 있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이 경험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첫째, 빈곤의 대물림이다. 그 아이는 춤을 추고 싶어서 춤을 추는 것이 아니다. 엄마가 시켜서 하는 것이다. 학교에 가야 할 나이에 길거리 바닥에서 춤을 추며 구걸하고 있다. 그 아이가 자라서 부모가 되면, 또다시 자기 아이에게 같은 일을 시킬 가능성이 크다.
둘째, 여행자의 선의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동정심에서 돈을 주는 것이 그 순간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아동 노동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는다.
셋째, 문화적 상대주의와 보편적 인권의 충돌이다.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말과 "아동의 권리는 보편적이다"는 말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나는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불편함을 느꼈고, 그것을 외면한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가 태어난 나라에서 교육받을 권리가 보장되고, 노력하면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그리고 그 축복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나라도 불과 50~60년 전에는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때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이제는 우리가 도울 차례가 아닐까?
물론 개인적인 시혜가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를 만드는 방향으로 도와야 한다. 교육 기회 제공, 부모들의 경제적 자립 지원, 아동 노동 금지 법률 제정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개도국에서 마주한 불편한 진실은 나에게 큰 숙제를 남겼다. 내 나라의 인권과 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동시에, 글로벌 시민으로서 다른 나라의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