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백구와의 왈츠
1986년, 별 빛 이 낮에 보일 때.
학교에서 '말뚝박기'하느라 정신이 팔려서
오줌 마려운 걸 깜박 놓쳤었다.
상체는 굳은 채 하체만 요란하게 빨리 걸었다.
이주일 아저씨의 콩나물 무쳤냐? 걸음처럼.
내 머리 회로는 옆차선으로 이탈할 듯했다.
좀만 참으면 집인데 도저히 못 버틸 것 같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바로 레이더망에 걸린 듯,
막다른 공간에 틈새가 보이는 곳으로 뛰어갔다.
얼른 그 사잇길로 깊숙이 들어가 일단 앉았다.
그런데 급하게 들어가는 바람에
이불솜을 훅 걷어내는 느낌이 스쳤지만 그냥 무시했다.
눈앞에는 별빛이 희미하게 반짝,
식은땀은 목주름 따라 '둘리'춤,
방광은 수문을 열라는 듯 시끄러웠다.
이 총체적 난국에서 살아남는 게 먼저였다.
아주 시원하게!
동시에 아주 거룩하게 얼굴색이 바뀌었다.
일어나려니까 무언가가 툭, 생명체가 떨어진 듯했다.
TV에서 보던 플란다스 개처럼 하얀 덩치가 눈앞에 있었다.
이제야 보이는 이불솜의 정체가 백구라는 걸 알았다.
짖지도 않고 바로 옆에서 관찰하고 있었다.
이런 정적 속의 조용한 개가 더 공포스러웠다.
순간 심장이 북 치듯 두들겼다.
'⋯ 죽었다 이제'
그래도 이 조그만 공간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갑자기 백구가 허리를 세우더니 손으로 덮치려 했다.
난 찰나 반사적으로 백구손을 막으려고 했다.
너무 놀랜 나머지 손이 엉켜서 방향이 뒤집혔다.
그러자 약점을 스캔한 듯 빛의 속도로
백구가 내 손바닥 위에 더 빨리 얹어버렸다.
벽돌에 머리 박은 것처럼 멍~ 해졌다.
그래도 난 출구를 막고 있는 백구를 돌파해야 했다.
많이 긴장하며 백구손을 받친 채로
오른발을 슬그머니 띄었다.
백구도 내발 따라 살살 발을 띄었다.
서로가 탈출 파트너처럼.
분명 나를 약 올리는 것 같지는 아닌데,
백구가 날 놀아주는 쪽이라는 서열이 느껴졌다.
난 다시 왼쪽으로 튀려고 왼발을 들었고,
그러자 백구도 따라서 오른발을 들었다.
손잡고선 두세 번을 왔다 갔다 하는데 리듬이 잡혔다.
긴장한 채 서로 왔다 갔다 하다가
에잇! 백구손을 던지듯 뛰어나갔다.
그런데 뒤돌아보니 무서워 한 만큼의 괴물은 아니었다.
백구는 짓지도 않았고 얌전히 묶여 있었다.
사람이라면 아마 이런 느낌의 눈빛이었다.
'내 구역일세 여긴. 오늘 즐거웠네 또 놀러 오게'
난 단추도 못 잠근 채 헐떡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내 방에 누워서 생각해 봤다.
그 장면이 꼭 왈츠 치는 장면 같아서 웃음 버튼이 터졌다.
백구와 두 손을 가지런히 둘이 포개서
본능적인 스텝을 밟으며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백마 탄 왕자는 아니었지만
백구 왕자님과 왈츠를 춘 셈이었다.
그날 얼마나 긴장했던지 꿈에서도 백구랑 시름했었다.
아침에 눈떠 보니 중력을 벗어난 난장판이었다.
이불은 실종되어 있고,
머리는 180도 회전,
발 하나는 탈출 시도,
땀은 범벅이고 메트에는 지도였다.
학교에 가자마자 백구와의 왈츠를 얘기해 줬다.
친구들은 내 얘기에 까르르 웃고 있었는데
한 친구만은 안 웃고 툭 내뱉었다.
"오줌 마렵기 전에 미리 화장실가야 이불에 안 싸!"
내 얼굴은 자두빛으로 변하면서 비상한 촉이 스쳤다.
아직도 오줌 싼다는 얘기를
엄마가 동네에 소문냈나 싶었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다짜고짜 심문하듯 따졌다.
"엄마가 동네방네 나 오줌 싼다고 소문냈지?"
"아직까지 싼다고 하는 게 왜!"
"엄마는 딸이 창피당하는 게 좋아?"
다른 엄마들은 딸 자랑 만하는데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4000원을 챙겨서 골목시장으로 뛰어갔다.
며칠 전부터 먹고 싶던 게 하나 있었는데
깻잎을 우수수 얹은 허파볶음이었다.
북적이는 시장통 골목에 앉아서 음미하듯 한 입 먹었다.
'이~야하 ~ 천상의 맛이로구나.'
드라마 ' V '에서 나오는 다이애나가 쥐 먹는 건 그렇게 징그러워하면서 물컹한 허파를 숨도 안 쉬고 먹었다.
내가 살짝 어이없긴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천히 먹으려고 했는데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당면이 양념을 흡수하고 내 정신도 흡수하며,
그야말로 입속에서 '문워커'를 추듯 미끄러졌다.
엄마랑 싸우고 답답할 때마다
또 허파볶음을 먹어야겠다고 다짐을 할 때!
옆가게 양념한 닭발들이
철판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게 보였다.
닭발들이 '이리 와' 발가락 부채질 하듯 느껴졌다.
홀린 듯 일어나 가게 앞에 가서 가격표를 훑어봤다.
'다음은 여기다!!'
집에 돌아올 때 햇빛은 노을로 양념한 닭발 같았다.
오늘은 다 필요 없고 하나 건진 하루다. 끝!
그땐 왜 그랬을까
결국 내가 싼 똥을
내가 치우게 됐습니다.
먹을 땐 아무 생각 없었는데 말이죠.
어린 나는 스트레스를 버텨낼 줄 몰라
음식에 기대곤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어설펐지만
왼발, 오른발
다시금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도 왈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