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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왜 그랬을까

6. 세 남매의 전쟁

by 루달


1986년 멸치볶음 색의 날씨


하늘이 흐려지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난 역시나 핫도그를 모시듯 집에 빨리 뛰어갔다.


집에 도착하니까 오빠랑 동생이 TV앞에 있었다.

파충류 드라마 'V'를 본다.

주인공 다이애나가 쥐까지 먹고, 어휴 징그러워.

파충류 외계인과 인간이 싸우는 이야기다.


동생은 한쪽 눈만 얇게 뜨고 한쪽 눈은 꼭 감은채

눈 주위를 부들부들 떨고 있다.

언제라도 뒤집어쓸 담요를 망토처럼 입고 있다.


오빠는 양반 자세로 지나가는 벌레도 도망갈 만큼,

한쪽 다리를 심하게 떨면서 뚫어지게 TV를 본다.



숨이 멈춘 듯 조용하다가 '으악!' 소리 지르더니

장롱 속 이불에 머리를 처박고 궁둥이를 내민다.


' 왜 저러면서 보는 거래?'


그러거나 말거나 방문을 닫아 주고

비가 와서 '비 오는 날의 수채화'를 피아노 쳤었다.



" 엄마~! 저 드라마 보는데 시끄럽게 피아노 쳐요!"

" 오빠 드라마 보니까 내일 낮에 쳐!"

" 부드럽고 조용한 곡인데 왜요?"

"오빠가 시끄럽다잖아! 손 씻고 밥 먹을 준비해!"


'비 오는 날의 수채화' 치려다가

내 기분이 찢어진 실내화가 됐다.


그리고선 오빠는 어깨까지 흔들어대며 메롱을 갈겼다.

남동생은 덩달아 한쪽 입술을 올리고

샘통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엄마는 양은 냄비로 날 때리며 요리하듯 소리를 낸다.

이놈의 집구석은

로마 투구장인지 무료 서커스단인지.


연년생인 우리 셋 중 내가 덩치가 제일 큰데도

우리 집에서는 나를 미운 오리 새끼 취급한다.


잠시뒤 엄마는 밥상을 들고 나타나셨다.

오잉? 맨날 먹던 계란 입은 동그란 소시지가 아니라

프랑크 소시지가 무스 바른 듯 빛나고 있었다.



나는 저들에게 뺏길 수 없어서 두 개를 집었다.

그러자 오빠가 주먹으로 내 팔뚝을 세게 쳤다.


너무 아파서 바로 엄마 찾으려는데
오빠가 내 입막음하듯 먼저 소리쳤다.


" 엄마! 루달이 소시지 한꺼번에 두 개씩 먹어요!"


" 엄마! 아니야 두 개만 먹으려고 한 거야!"


" 엄마! 아니에요! 밥도 안 먹고 소시지만 먹어요!"


" 엄마! 그리고 오빠가 나 주먹으로 때렸어!"


" 시끄러워!! 살쪄! 넌 한 개씩만 먹어!"


" 엄마는 나도 자식인데 왜 나만 혼내!!!"


" 여자애가 소를 잡아먹었나? 목소리가 크니!"


"내가 대관령 목장 간 것도 아닌데,

왜 나보고 소를 잡아먹었다고 난리야!"


엄마는 시끄러워서 옆집 들린다고 창문을 닫았다.


맞은 건 나인데 왜 나만 혼내는 건지 억울했지만,

밥상 위에 남은 소시지를 입에 욱여넣고

내 방에 후다닥 들어와 누웠다.



팔뚝을 보니 노란 멍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친구들은 다 언니·오빠랑 오순도순 지내는데

나는 그런 따뜻함과는 늘 거리가 멀었다.

머리도 빗어주고 말도 들어주는 언니 하나 있었으면 했다.

그렇게 속상해하고 있는데, 엄마가 방을 두드렸다.



" 밥 다 먹으면 설거지해! 엄마는 빨래하게!"


" 오빠 보고 하라고 해! 장남인데"


" 말 같지도 하는 소리 하네. 여자가 해야지!"


난 짜증이 솟구쳐서 그대로 한강 쪽으로 뛰어 나갔다.

한강 물결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 파충류 인간이 오빠 좀 안 혼내주나'



한참을 로뎅처럼 생각을 했다.

맛있는 소시지가 아른거리는 생각만 해야 했다.

아빠 생각나니까...


'시원하니 좋네 '


왜 화가 금방 식어버리는지.

내가 생각해도 로뎅이랑 안 맞는 거 같다.

시간이 늦으면 걱정할까 봐 집으로 튀어갔다.


'야~하… 역시나.'


셋이서 사과 깎아 먹으며 TV를 보면서 깔깔 웃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한 지붕 세 가족이다.

다들 나를 '고스터 버스터즈' 유령으로 여긴다.

오빠는 나를 보자마자 엄마를 끌어다 붙잡았다.


" 루달 보고 학교에서 절대 아는 척 말라고 해주세요!"


" 왜?"


" 못생겨서 창피해요"


내 마음은 우유 콱 쪼그라지듯 작아져만 갔다.

그때 동생은 연발탄을 쐈다.


" 엄마 나도 누나 뚱뚱해서 창피해!!"


그런데도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사과만 깎으셨다.

설거지 안 하고 튄 건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내방 문을 ' 쾅!' 닫고 나만의 고립된 세계로 들어갔다.



아이 루달아

그때부터 사과를 미워하게 된 거였네

오빠의 세계가 얼마나 좁고 답답했는지

그땐 몰랐을 거야.

지금... 오빠와 동생은 마음이 아파서 치료받고 있어.


이제야 그때의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 정리하는 중입니다.


남매들의 전쟁통에서

엄마가 얼마나 벅찼을지 돌아봅니다.

글 쓰고 엄마한테 전화 넣어드려야겠어요.


관절약은 잘 챙겨드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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