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뻐지는 마술
1986년, 사이다 마시고 톡 쏘는 날씨
요즘은 친구들과 내 얼굴이 자꾸만 비교된다.
남자애들한테 인기 많은
여자아이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쌍꺼풀이 찐한 큰 눈이었다.
거울을 보니 내 무쌍 꺼풀이
이뻐지려는 얼굴에 방해였다.
나의 무쌍 꺼풀과 찢어진 눈이 너무 싫어졌다.
어떡하면 눈이 커질까 고민하다가
딱풀을 연필 모서리에 발라서
눈 위로 쌍꺼풀을 만들었다.
'오오 ~ 됐다! 이렇게 간단한걸'
나도 이제는 남자애들한테 인기 많아질 상상을 한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쁘니?
'나다!'
아닌 걸 알지만, 내가 봤을 땐 탤런트 같았다.
엄마가 눈화장할 때마다
입을 왜 벌리는지 깨달으며
집중하면서 쌍꺼풀을 만들었다.
다음날 딱풀을 바르고 학교에 갔다.
그런데 아무도 몰라보는 눈치였다.
거울 속에서는 미스코리아 '진'이었는데
현실은 뺄셈 두 개로 보인 실눈이었다.
‘– –’
더욱더 눈을 크게 만드는 연습을 하면
나의 미모를 알아줄 것 같았다.
채변 검사 할 때처럼
섬세한 젓가락질 감각으로 드디어 완성됐다.
패션의 완성은 머리니까 젤까지 바르고 학교를 갔다.
그런데 며칠을 계속하다 보니
눈이 부어버린 것이 우럭 같았다.
피부도 약했는데, 딱풀이 버텨줄 리 없다.
하필 이제야 애들이 내 눈을 알아본다.
“루달, 눈 왜 그래?”
' ⋯⋯ '
뭐라도 뻥칠 건더기가 없이
눈 따로 생각 따로였다.
예뻐지려던 자리가 부은 살로 채워진 게, 슬펐다.
이렇게 멈출까? 아니다.
피부가 가라앉자마자 또 해야 한다.
이번엔 연필 끝이 아니라 이쑤시개였다.
조금 더 정밀하게, 조금 더 완벽하게.
연습이 쌓이자 쌍꺼풀은 티 나지 않게 접혔다.
그날도 머리를 빗고 찬물까지 묻히고 학교를 갔다.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뒤돌아보며
" 루달아 너 눈 대빵만 하게 커졌어"
' 아자뵤~아자 아자 '
통쾌하게 신이 났지만
내가 이쁜 얼굴이라는 걸 생각하니까
이상하게 행동이 조신해졌다.
그런데 '짜자잔~ 짜안!' 왜 운명에 장난인가.
책상 서랍에 책을 꺼낼 수도 없고,
고개는 칠판으로만 고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손끝으로 더듬어 공책을 꺼냈다.
시선을 내리면 풀칠이 다 뜯어질까 봐.
나는 예쁜 얼굴이고 뭐고
자유의 여신상 석고상처럼 느껴졌다.
딱불에 중독된 내가 싫은 채 집으로 갔다.
방학 때 앞집 언니가 야매로 쌍꺼풀 수술을 했는데
성공했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엄마한테 거래를 제안했다.
"엄마 나도 야매로 쌍꺼풀 수술해 줘. 커서 효도 할게 "
" 살이나 먼저 빼! 그렇게 살찌면 시집 못 가!"
"엄마도 결혼사진 보니까 드레스 터지려 하던데?"
"그건 뱃속에 네가 있어서 그런 거야"
아니 뱃속이 지하실 연탄광도 아니고 왜 들어가지?
아무리 봐도 태생의 비밀이 있는 것 같다.
엄마는 쌍꺼풀, 나만 무쌍 꺼풀이고
엄마는 A형, 난 O형이다.
몇 시에 태어났나고 물어보면
둘러대듯 아침밥 짓기 전이라 한다.
언제 시간 되면 꼭 병원 가서 확인해봐야 한다.
아이루달아
네가 아가씨 됐을 때,
매몰법으로 쌍꺼풀수술한 거 안 비밀!
네가 엄마가 되던 날,
너도 아이 낳느라고 시계 못 봤어.
그리고
뚱뚱했어도 시집 잘 갔다 돌아왔어.
이제 딱풀은 안녕을 고하고
그렇게 내 얼굴을 인정하게 됐다.
학교에서 오늘은 글짓기 숙제를 내주었다.
작년에도 반공 독후감을 썼는데 상장을 주셨다.
'1950년 6.25일 새벽 4시 모두가 잠든 밤...'
웅변까지 해서 달달 외우고 있다.
오늘도 집에 가자마자 신발주머니를 내팽개쳤다.
내 방 문을 잠그고 배를 깔고 글을 썼다.
글짓기는 종이 인형을 오려서 옷 입히는 것 같다.
날 쳐다보는 듯한 다락방도 안 무서웠고,
엄마가 부엌에서 요리하는 냄새도 관심 없었다.
작년쯤 고모방에서 간식 숨겨놓은 게 있나?
몰래 들어갔다가 책꽂이 책을 보게 됐다.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아서 흥미로웠다.
그때 읽었던 책이 내가 주 씨니까
'주몽'을 먼저 꺼내 읽었다.
엄마가 같은 고향 사람 물건은 이유불문 사듯이.
참새 눈곱만 한 글씨라서 당황했지만
가문의 영광이니 봐줘야 했다.
그렇게 읽어선지
참새눈곱이랑 콩나물들은 내 친구들이었다.
'자 상 받으려면 6하원칙을 맞춰야 해'
원고지에 이 년 전 대가족이었던
우리 식구들을 떠올리며 글짓기를 썼다.
밥상에 둘러앉아 서로 조기생선 하나 놓고
눈치 보는 걸 쓰는데 혼자 웃겨서 발로 차고 굴렀다.
그렇게 신나게 쓰고 다음날 선생님께 제출했다.
일주일 뒤 월요일 운동장 조회시간에
마이크로 내 이름이 호명됐다.
이것이 현실인가?
철계단을 올라가서 최우수상 상장을 받았다.
교실에 와서도 계속 자랑하려고 가방에 안 넣었다.
근데 친구들은 내가 웃길 때만 좋아하고
관심이 없다는 걸 느꼈다.
집에 와서 거실 테이블에 떡 하니 올려놨다.
오빠와 동생도 심지어 엄마까지도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았다.
' 이건 자랑할만한 게 아니구나'
그래서 난 글짓기상이
왜 그런지 눈물이 나온다. 흐흨.
글은 일기에만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1986년 하늘이 밤 양갱이 색일 때. 끝!
아이루달아
미안해. 그렇게 좋아하는 글짓기였는데...
안 그래도 네가 반백살 될 무렵,
네 이야기를 다시 쓰고 있단다.
2025년 10월 28일 모두가 잠든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