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주, 목요일
새 친구가 왔습니다.
자세히 표현하자면 근처 원에 다니던 친구였는데 친구들과 다툼이 많고
선생님들과 해당 반 어머님들에게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 더 이상 그 원에 보내기가 어렵겠다는
자의적, 타의적 시선으로 입학하게 된 아이였습니다.
"아이가 늘 산만해요."
"감정조절이 안 돼서 친구들을 때리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고요"
"오죽하면 선생님도 혀를 내두를까..."
동네에서도 이미 소문이 자자했던 그 아이는
역시나 소문대로 함께 한 첫날에 그 아이를 따라다니던 꼬리표들을 하나씩 증명이라도 하듯이
활동시간 내내 집중하지 않는 부산함과 다른 친구들의 활동을 방해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였고
분에 못 이겨 머리를 잡아채기도 하였습니다.
선생님이 다가가 도와주려고 할 때도 강렬한 눈빛으로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 눈빛에는 분노도, 두려움도,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도 있었습니다.
함께 한 첫날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 채, 분주했던 하루가 지나고
모두들 귀가한 텅 빈 교실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지, 걱정 안은 생각에 잠깁니다.
단정한 머리와 동그란 눈,
첫 만남에서 수줍어 보였지만 놀이활동 할 때는 누구보다도 신나 보이고 함박 웃음꽃이 예뻤던
그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오늘 하루 그 아이를 바라보았던 시선을 하나씩 되짚어 봅니다.
정보의 대중화는 아이들의 어려움을 돕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진단하고 낙인 하여
아이의 이면에 있는 모습을 잘 보지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오늘 그 아이를 도와주려 다가갔을 때 보았던 강렬한 눈빛 너머로 말하고 있던 그 이야기가
텅 빈 교실 안을 뱅뱅 맴돕니다.
"나를 함부로 판단하지 마세요."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고요.."
그 아이의 마음은 아직 말로 다 표현되지 않았고, 그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 역시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아이는 아침 인사로 '안녕하세요' 작은 목소리로 용기를 담아 건넸습니다.
놀이시간에는 여전히 부산했고 자신의 뜻 대로 되지 않았을 때 화를 내는 모습도 있었지만
한 친구가 넘어졌을 때는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손을 내밀며 일으켜 세워주었습니다.
그 아이의 도움에 넘어졌던 친구는 '고마워'라는 말로 화답했고
어제까지만 해도 그 아이를 바라보며 불만과 불안을 표현했던 친구들도 하나. 둘 먼저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변화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누군가 자신을 믿어준다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 아이의 마음은 아직 말로 다 표현되지 않았지만, 그 마음을 읽어주려는 시선이 하나 생겼을 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선도 달라집니다.
소문보다는 눈빛을, 꼬리표보다는 마음을 먼저 보게 되었지요.
그 아이는 단지 '문제아'가 아니라 누군가의 따스한 시선 속에서 다시 자라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 아이와 함께 걷는 이 길이
조금은 느리고, 때로는 울퉁불퉁하겠지만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그 아이를 부르던 꼬리표들의 이름 대신, 마음을 부를 때
아이도 나도 조금 더 자유로워집니다.
유아기의 아이들은 아직 자기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때로는 울음으로, 때로는 몸짓으로, 때로는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자신의 감정을 세상에 내보입니다.
그 표현이 서툴다고 해서 그 아이가 서툰 존재인 것은 아닙니다.
그 아이는 단지, 자기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선생님은 아이의 행동을 해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행동 너머의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입니다.
'산만하다' '문제 행동이 많다'는 말은 아이를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아이를 가두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낙인은 아이의 가능성을 덮어버립니다.
그 아이가 어떤 존재로 자라날 수 있는지를 미리 결정지어버리는 시선은 아이의 자존감과 정서발달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볼 때, 그 아이는 조금씩 자신을 열기 시작합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어."
이러한 감정은 아이의 회복 탄력성을 키우고, 자기 조절 능력과 사회적 관계 형성 능력을 자라게 합니다.
정보는 아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정보가 아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의 과거보다 오늘의 눈빛을, 아이의 기록보다 지금의 숨소리를 먼저 들어주는 선생님.
그런 선생님이 있는 교실은 아이에게 가장 안전한 성장의 공간이 됩니다.
* 아이들을 바라보며 알게 모르게 내가 붙이는 꼬리표가 있었나요?
만약 있다면 그 꼬리표를 대신하여 새로운 긍정적 단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 내가 만나는 어려운 친구가 있나요?
그 친구가 가장 듣고 싶어 할 말은 무엇일까 생각해 볼까요..
그 말을 꼭, 한 번은 건네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