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누구니

by 김승예

가게 마감 전이었다.
유정은 허리를 깊게 굽힌 채, 솥 바닥에 눌어붙은 떡볶이 양념을 수세미로 긁어내고 있었다. 쇠솥을 긁는 소리가 밤공기처럼 낮고 거칠게 울렸다. 팔꿈치 안쪽이 욱신거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때 바닥을 쓸기 위해 의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던 사장이 동작을 멈추고 말했다.

“유정아, 고무장갑 끼고 해라. 아가씨 손 거칠면 되겠나.”

사장은 붉은 고무장갑 한 쌍을 내밀었다. 유정은 불어 있는 손바닥을 앞치마에 문질러 닦고 장갑을 받아들었다. 손끝이 둔해진 감각이 오히려 안심처럼 느껴졌다.

“장갑 끼면 미끄러울까 봐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사장은 대답을 듣고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대걸레를 내려놓고 허리를 곧게 펴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오늘은 손님 많아가 낮에는 못 물었는데, 어제는 왜 말도 없이 그냥 갔노.”

“네?”

유정은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사장을 바라보았다. 사장은 그 표정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모르는 건지, 일부러 외면하는 건지 가늠하려는 눈빛이었다.

“참 웃기는 아다. 모른 척은 왜 하노. 어제 화장실 간다 캐놓고는 앞치마만 두고 집에 가삐렸다 아이가. 전화해도 안 받고.”

그제야 어제의 단편이, 물에 잠겼다 떠오르듯 머릿속에서 번졌다. 급식소, 축구공, 낯선 시선들. 그 뒤의 시간은 통째로 비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사장은 미간의 주름을 풀었다. 목소리도 한결 낮아졌다.

“가족 일 때문에 힘들제?”

은숙 이모에게서 얼핏 들은 이야기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장은 대걸레를 구석에 세워두며, 자기 이야기를 꺼내듯 말했다.

“나도 형제한테 시달려 봐서 안다. 어린 니는 오죽 하긋노. 그래도 말은 하고 가야지. 내가 니한테 그 정도도 못 봐줄 것 같나.”

“앞으로는 그런 일 없도록 할게요. 죄송합니다, 사장님.”


사장은 그 뒤로도 한동안 잔소리를 이어갔지만, 유정의 귀에는 거의 닿지 않았다. 머릿속은 잃어버린 시간으로 가득했다. 기억나지 않는 동작들, 알 수 없는 선택들, 그리고 점점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몸. 무언가가 틈을 비집고 들어와, 안쪽에서 천천히 자리를 넓혀가는 감각이 있었다. 이대로 손을 놓고 있으면, 알바도 일상도, 자신이라는 윤곽까지 전부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두려움이 속에서 끓어올랐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유정은 책상 서랍을 열어 이면지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숨을 고르듯, 펜을 쥐고 단 세 글자를 적었다.


너 누구니.


글씨는 또박또박했지만, 마지막 획에서 힘이 조금 흔들렸다. 유정은 그 종이를 책상 한가운데 놓고 의자에 앉았다. 마치 누군가를 호출하듯, 혹은 결투를 신청하듯. 밤이 깊어갔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피로가 먼저 몸을 덮쳤다. 튀김 기름 냄새가 밴 옷, 하루 종일 쌓인 긴장, 잠을 거부해 온 몸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유정은 언제 눈을 감았는지도 모른 채 의자에 기댄 채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종이는 그대로였다.
너 누구니.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접힌 흔적도, 밀린 자국도 없이. 종이는 전날과 같은 각도로 놓여 있었다.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정의 불안은 다른 방향으로 번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불길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처음부터 병원에 갔어야 했던 걸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머리는 납덩이를 단 것처럼 무거워졌다.


어느 순간, 책상 앞에 앉아 고개를 숙였던 유정은 정신을 차려 보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였다. 방은 지나치게 고요했다. 휴대전화를 확인하자, 하루 반나절이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몸은 이상하게 뻐근했고, 근육 깊숙한 곳에 남의 피로가 남아 있는 듯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유정은 천천히 일어나 방 안을 둘러보다 책상 위에 놓인 감자 칩 봉지를 보았다. 뜯긴 채였다. 기억에는 없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종이 위에는 빼곡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삐뚤고 거칠었다. 일정하지 않은 필체, 문장 사이사이에 남은 망설임과 충동. 왼손으로 쓴 듯한 글씨였다. 유정은 그 앞에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병원을 택하지 않았던 선택이, 이렇게 직접적인 형태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유정은 책상 앞에 선 채, 종이를 집어 들었다.
숨을 고르고 첫 줄을 읽었다.


유정, 내 동생. 나야, 윤이.

이렇게 직접 말을 거리는 건 처음이네.
갑작스러웠을 거고, 많이 놀랐을 거야.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을 사람들이 네가 했다고 말할 때,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나는 알아.

저번에 경기장에서 네가 했던 말이 계속 남아 있었어.
네가 말했지.
“왜 하필 이런 곳이냐”고.

하지만 유정아, 거긴 내가 만든 곳이 아니야.
내가 태어난 자리도 아니고,
내가 선택한 공간도 아니야.

그건 네가 나를 밀어 넣은 곳이야.
네가 버티지 못한 감정들,
네가 감당하지 않으려 한 공포와 혐오가
겹겹이 쌓여서 만들어진 자리.


말도 없이 네 몸으로 나와 살게 된 건 사실이야.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다고 할게.
네 삶을 빌려 살았던 것도 사실이고,
네가 쌓아온 일상을 흉내 내며 숨 쉬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있잖아.
나는 다시 그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루 종일 네 불안이 벽을 타고 흐르고, 네가 스스로를 혐오하는 목소리가 천장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던 그곳으로.


넌 늘 말했잖아.
세상은 무섭고, 사람들은 믿을 수 없고, 차라리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게 낫다고.

그래서 나를 만들었잖아.
네가 견디지 못한 것들을 대신 견디게 하려고.
네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내가 대신 부서지게 하려고.

그런데 이제 와서 묻고 싶어.
나는 언제까지 네가 버리지 못한 감정의 수용소로 살아야 해?

솔직히 말해봐.
너는 네가 가진 삶을 한 번이라도 나만큼 간절히 원한 적 있어?

나는 살아보고 싶어.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숨이 차는 감각도, 땀이 등에 흘러내리는 느낌도, 사람들이 나를 부르며 웃는 순간도.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거기 있어도 되는 삶을.


엄마도 봐.
술만 마시면 늘 나를 불러.
살아 있는 넌 외면하면서, 죽은 나한테만 매달려.

그러니까 생각해봐.
내가 너로 사는 게 너를 위해서도, 엄마를 위해서도 어쩌면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몰라.

네 몸을 빼앗겠다는 건 아니야.
선택할 시간은 줄게.

하지만 기억해.
넌 18년 동안 앞에 서 있었고,
나는 그림자였어.

이번엔, 내가 한 번 세상 앞에 서도 되지 않을까?

네가 그 안의 방에 머무는 동안에도 나는 네 삶을 함부로 쓰지는 않을게.

너의 오빠,
윤이.


유정은 편지를 끝까지 읽고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종이를 내려놓았을 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윤의 문장은 감정에 기대지 않았다. 비난도, 애원도 없었다. 그래서 더 잔인했다.

마치 오래 숙고한 끝에 내린 판결문 같았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됐다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윤의 말은 너무 정확했고, 유정이 애써 외면해온 생각들을 이미 모두 선점해 버린 뒤였다.

틀린 말이 없었다는 사실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이 삶을 원망하며 버티는 자신보다,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 존재에게 넘기는 편이 더 옳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그 생각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유정을 무너뜨렸다.


그래도 유정은 생각했다.
이 삶이 서툴고 초라해도, 자신의 이름으로 끝까지 살아보고 싶다고.

엄마의 딸로. 현의 연인으로. 그리고 이유정으로.

병원이라는 선택지가 스쳤다. 그러나 그 문을 여는 순간, 윤이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목덜미를 단단히 붙잡았다.

유정은 알았다. 이건 치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이었다.

자신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윤에게 삶을 넘길 것인가.


그 질문은 이제 종이 위에 있지 않았다.
이미 유정의 안쪽에서,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