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나자 학교는 급격히 수축된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축소 수업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오전 수업만 하고 귀가하는 일정에서 ‘수업’이라 부를 만한 건 거의 없었다. 칠판은 깨끗한 채로 남아 있었고, 교과서는 가방 속에서 꺼내지지도 않았다. 교실 안에서는 시내의 어느 술집이 싸고 괜찮다는 둥,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가 언제냐는 둥, 이미 학교 바깥을 향한 이야기들만이 공기처럼 떠다녔다. 그렇게 몇 마디 잡담이 오가고 나면, 어느새 귀가 종이 울렸다. 하루는 늘 그렇게 끝났다. 무언가를 시작하지도, 끝내지도 않은 채였다.
이미 대학 발표가 난 학생들 중 일부는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담임도 출석 인원을 대충 훑어볼 뿐이었고, 빈자리가 늘어나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책임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옅어진 자리에는, 곧 시작될 인생의 다음 장에 대한 기대와 해방감이 대신 들어앉았다. 모두가 기다리는 건 졸업이었다. 교실은 이미 과거형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 안에서 고등학교에 미련을 두고 있는 사람은, 현 혼자뿐인 것처럼 느껴졌다.
현은 1지망으로 쓴 대학에 예비번호 없이 단번에 합격했다. 주변에서는 축하가 쏟아졌고, 선생님들도 “잘됐다”고 말해 주었지만, 정작 현의 얼굴에는 기쁨이라는 표정이 머물 자리가 없었다. 눈은 안개 낀 먼 곳을 보는 듯 흐렸고, 표정은 무채색에 가까웠다. 합격이라는 결과가, 도착이 아니라 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입시를 하는 동안 현은, 몸을 조이는 바늘들이 매일 조금씩 더 안쪽으로 파고드는 기분을 견뎠다. 숨이 막히는 시간들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유정을 떠올릴 수 있었기에 하루를 버텼다. 수요일 동아리 시간, DVD를 건네받던 순간, 짧은 문자 몇 줄, 복도에서 스치던 시선 같은 것들이 그 시간을 지탱해 주었다. 돌아갈 수 있다면, 현은 그 시간을 다시 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고통이 있었지만, 방향은 분명했으니까.
그러나 수능이 끝나고, 동아리도 막을 내리자 상황은 달라졌다. 더는 유정을 볼 수 없었다.
현이 보내는 메시지는 읽히지 않았고, 전화는 끝내 연결되지 않았다. 단축 수업 탓에 급식실에 갈 일도 없어졌고,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칠 가능성조차 사라졌다. 유정은 마치 학교라는 공간에서 조용히 삭제된 사람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현은 유정의 반 앞을 서성였다. 괜히 창문 안을 들여다보다가, 몇몇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 보기도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다는 말. 그 말은 사실을 전할 뿐이었지만, 현에게는 설명 없는 공백처럼 들렸다. 하루, 이틀, 기다림이 쌓일수록 그 공백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결국 현은 유정의 담임을 찾아갔다. 왜 학교에 나오지 않느냐고,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묻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조심스러웠다. 담임은 잠시 말문을 닫고 서류를 정리하는 척하다가, 난처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그 침묵이 의미하는 바를 현은 어렴풋이 느꼈다. 묻지 않는 것이 예의인 영역, 더 이상 학생의 몫이 아닌 사정. 현은 그 앞에서 더 묻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인 채 돌아섰다. 복도를 걸어 나오면서, 자신의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며칠 뒤에는 유정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분식집에도 가 보았다. 문을 열자 익숙한 기름 냄새가 풍겼지만, 유정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장은 무심한 얼굴로 “일 그만뒀다”고만 말했다. 그 말은 너무 간단해서,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졌다. 이유도, 맥락도 없이 끊긴 한 문장처럼.
그날 이후 현은 깨달았다.
유정의 부재는 단순히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가 사라진 자리마다, 현의 하루도 함께 빠져나가고 있었다. 학교는 여전히 같은 시간에 끝났고, 합격증은 여전히 책상 위에 놓여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은 중심을 잃은 채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현은 처음으로,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다는 감각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모두가 해방의 시간을 만끽하던 계절이었다.
입시가 끝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교정에는 가벼운 웃음과 들뜬 말들이 넘쳐났다. 짐을 내려놓은 사람들 특유의 느슨한 걸음,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표정들이 오후의 햇빛 속에서 반짝였다. 하지만 현은 그 무리 속에 섞이지 못한 채,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 서 있었다. 해방의 공기 한가운데서 그는 홀로 불확실성의 그늘에 붙잡혀 있었고, 그 어둠의 중심에는 언제나 유정의 부재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굣길, 용빈이 아무렇지 않게 던진 “피시방 갈래?”라는 말에 현은 고개만 가볍게 저었다. 이유를 묻는 말도, 붙잡는 손도 없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흘렀고, 현은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한 걸음 비켜난 자리로 물러났다. 누군가와 어울리지 않기로 선택했다기보다, 이미 그 자리에서 밀려난 느낌에 가까웠다.
집에 돌아온 현은 방에 틀어박혀 천장을 바라보다가, 결국 유정의 얼굴을 떠올렸다. 목소리의 높낮이, 말끝을 흐리며 웃던 습관,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기울이던 버릇까지 하나하나 더듬었다. 기억을 붙들수록 이유는 흐려졌고, 이해하려 애쓸수록 그리움은 더 짙어졌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은 점점 무게를 얻어, 현을 자기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는 서서히 고립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흐름에서 벗어날 힘을 찾지 못했다.
그 감정은 마치 멈추지 않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쳇바퀴 같았다. 되돌리고 싶은 시간은 계속 반복되었고, 손에서 새어 나가는 계절의 감각 속에서 졸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조차 현은 실감하지 못했다. 달력의 날짜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한 지점에서 맴돌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들과 게임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던 용빈은,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는 현을 흘끗 바라보았다. 웃음과 웃음 사이의 미세한 틈, 거기에 걸린 현의 침묵이 눈에 밟혔던 것이다. 용빈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야, 너 요즘 대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냐?”
“그냥. 아무 생각도 안 해.”
현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대답은 가벼웠지만, 그 말 뒤에는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거짓말 치네. 너 지금 누굴 속이는 거냐. 너 요즘 유정이랑 안 좋은 거지?”
대충 얼버무리고 넘기려던 현은, 생각보다 정확한 지적에 눈을 크게 떴다. 그 반응 하나만으로도 용빈은 확신을 얻은 듯했다. 그는 현의 맞은편 자리에 턱 하니 앉아 버렸다.
“봐라, 내가 뭐랬냐. 너는 나 같은 애 말을 들어야 해.
가만히 있어도 여자애들이 잘해주는 얼굴값 하는 애들은 연애 시작은 잘하지. 근데 문제 하나 생기면 늘 우왕좌왕이야.
나처럼 조건 안 좋은 애들은 말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를 굴리고 진흙탕에서 구르면서 배운 내공이 있다니까. 자,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데? 이 형한테 말이나 해봐.”
말투는 얄미웠지만, 전부 틀렸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유정과 있었던 일들을 조심스럽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끝을 맺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지만,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쪽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걔가 갑자기 학교도 안 나오고 연락도 안 받는다고?”
용빈은 잠시 눈동자를 굴리며 깊이 생각하는 흉내를 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거 꽤 심각하긴 하네. 근데 말이야, 어차피 대학 가면 다 새 출발이잖아. 걔도 어디선가 입시 준비하고 있을 거고, 너도 대학 가면 새로운 사람들 잔뜩 만날 거고. 지금은 걔가 세상의 전부 같겠지만, 시간 지나면 달라질걸?
아니면 내가 간접 경험 좀 시켜줄까? 너 아직 헌팅 술집 안 가봤지? 오늘 밤 8시, 어때?”
현은 잠깐이나마 용빈에게서 무언가 다른 답이 나오길 기대했다. 하지만 결국 남은 건, 잊기 위해 더 큰 자극을 덧입히라는 제안뿐이었다.
“근데… 내일 졸업식인데, 술 마셔도 돼? 전날이잖아.”
현은 기가 막힌다는 듯 물었다.
용빈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야, 그래서 마시자는 거지. 내일이면 청소년 신분도 끝인데 네 마음 안 헛헛하냐? 오늘 밤 푹 잘 자신 있어? 없잖아. 술 마시면 잠은 오잖냐. 졸업의 아쉬움도, 유정이한테 차인 마음도 술로 털어버리는 거야. 인생이 원래 그런 거야, 짜식아.”
‘내일이면 끝’이라는 말이 현의 귀에 오래 남았다.
유정 생각에 잠긴 채 밤을 새우느니, 차라리 생각의 회로를 잠시 마비시키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 선택이 도피라는 걸 알면서도, 지금의 현에게는 숨 돌릴 틈이 필요했다. 그는 잠시 고개를 숙인 채 망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8시에 보자.”
말을 뱉는 순간, 현은 자신이 무언가를 선택했다기보다 한 걸음 밀려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 감각을 붙잡을 힘조차, 지금의 그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