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대학교 졸업반이 될 때까지 장래희망으로 승무원을 꿈꿔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냥 지나치던 직업 중 하나였다.
오히려 난 해외 수출입회사의 직장인, 소위 말하는 ‘상사맨’을 목표로 하던, 어찌 보면 지루할 만큼 평범한 꿈을 가진 취준생이었다.
대학생 때 주변에서 “너 승무원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아.”라고 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왜냐고 묻지도 않고 항상 똑같이 답했다.
"뭔 X소리야."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말해준 분들에게 고맙고 민망할 따름이다.
예상치 못한 전환점은 대학교 졸업반 때 찾아왔다.
당시 나는 학교에서 기업과 연계하여 진행하는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에 합격한 상태였다.
내가 원하던 해외무역 직무에 지원하기에도 완벽한 인턴십이라 생각했고, 드디어 내가 가고 싶은 길로 한 걸음 내디뎠다는 생각에 설렘이 가득했다.
그런데 약 3주쯤 지났을까.
내가 가기로 했던 국가에는 나와 같은 대학생 신분이 인턴으로 갈 수 있는 비자 카테고리가 없다는 이유로 내 인턴십이 취소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통보받은 시점에는 내가 뭔가 더 해볼 새도 없이 이미 취소 처리된 채 모든 게 끝나 있었다.
같은 프로그램에 합격한 다른 학생들이 강당에 모여 합격증을 받고 단체 기념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강당 바로 옆 사무실에서 '내 인턴십이 불가피한 이유로 취소되었음에 이의가 없다'는 문서에 서명하고 내가 제출했던 서류들을 돌려받은 뒤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때의 비참한 기분은 참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훗날 항공사 최종 면접을 마치고 호텔 로비를 나서던 순간만큼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 해당되는 비자 카테고리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까지 비참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땐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이대로 취업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끝나는 건 아닐까, 그 생각 하나로 눈앞이 캄캄해졌던 취준생일 뿐이었다.
왜 하필 나한테만 이런일이 생긴 거지.
강당에서 들리는 박수소리와 웃음소리가 마치 전부 나를 약올리는 것처럼 들렸고, 학교 건물을 빠져나오는데 분노와 억울함이 치밀어 저절로 눈물이 핑 돌았다.
인턴십 프로그램에 나를 추천했던 교수님들은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나를 안쓰럽게 여기셨는지 해외 대학원 진학을 제안하셨다. 박사 과정까지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자신들의 뒤를 이어 교수직을 해보라는 권유였다.
학비는 물론 일정 수준의 생활비까지 지원받는 국가장학 프로그램에 나를 다시 추천해 주셨고, 운 좋게도 또다시 합격하여 출국만 남겨두게 되었다.
그 또한 정말 귀한 기회이고 행운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확신이 없었다.
내가 꿈꾸던 직장인에 다가간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해외 대학원생이라니.
이게 정말 괜찮을까.
실질적인 준비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 고민만 반복하며 출국일이 하루 이틀 다가오던 때, 교수님 중 한 분이 조용히 나를 따로 부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