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로 부른 교수님은 전공 교수님들 중 한 분으로, 외국인 여성분이셨다. 대화는 영어로 진행됐다.
'대학원 준비 잘 돼가냐는 질문이겠지, 아직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는데 뭐라고 하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교수님의 첫 질문은 뜻밖이었다.
"대학원 가고 싶어?"
순간 예상을 벗어난 질문에 당황했지만 바로 대답했다.
"교수님들 덕분에 장학생까지 되었는데, 가야죠."
교수님은 다시 물으셨다.
"가야 한다, 안 가야 한다가 아니라. 네가, 가고 싶어?"
내가 살면서 머릿속이 가장 복잡해진 순간 중 하나가 그때였을 것이다.
왜 물어보시는 거지? 무슨 테스트인가? 원하시는 답이 있는건가?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 건가? 그런데 정말 내가 가고 싶나? 가야 하는 게 맞나?
그러고 보니 나 스스로도 나 자신에게 그렇게 물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교수님의 갈색 눈동자가 어쩐지 나를 꿰뚫어 보는 맹수의 눈처럼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원래 원하던 길은 아니어서요."
한 3초쯤 지났을까.
교수님은 내 어깨를 툭툭 치시더니,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지셨다.
"항공사 승무원 해보는 건 어때?"
순간 기가 찼다. 다들 왜 자꾸 승무원을 권하는 거야?
차마 교수님께 뭔 X소리냐고 할 수는 없어서 짧게 되물었다.
"네?"
"내가 중동 항공사들 비행기 타고 미국도 가고, 남미도 가고, 아프리카도 가봤는데, 거기 크루들하고 비행 중에 이야기해 보니까 회사에서 숙소도 지원해 주고, 돈도 벌면서 전 세계를 다니는 게 즐겁다고 하더라고.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 너도 하면 잘할 것 같은데."
아니, 난 서비스직은 생각도 없는데 다들 왜 그러냐고요.
"저는 서비스직이 저랑 맞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지. 그리고 어차피 사회생활하려면 서비스직 경험 있는 게 좋아."
내 예상을 벗어난 말들에 대한 반항심과 의문점이 섞여서 말을 잇지 못하고 교수님을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교수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에 넌 일단 외국인을 겁내지 않아. 다른 애들은 영어 쓸 때 문법이 맞나, 어휘가 이게 맞나부터 고민하는데, 넌 일단 네가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질문부터 최대한 영작해 와서 물어보잖아. 그리고 네가 이해될 때까지 계속 질문하지. 우리 설명이 잘 이해가 안 되면 다르게 다시 설명해 달라고도 하고. 그런 노력이나 시도를 꾸준히 하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어디 가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장점이지. 넌 좀 더 큰 세상에 나가봐야 해."
"하지만 교수님, 전 그게 그렇게 장점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저 이미 장학 프로그램에 합격했잖아요. 교수님들이 그렇게 준비해 주신 건데... 제가 안 가도 되나요?"
그러자 교수님이 조금 더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공부는 원하면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어. 하지만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건 젊을 때 아니면 못해. 다른 교수님들한테는 내가 이야기해 줄 수 있으니까 그건 걱정 말고, 네가 아니다 싶으면 억지로 대학원 가지 마. 대신 내가 말한 승무원직에 대해서 한번 알아봐."
"...."
"승무원이 단순히 서비스직이라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어. 물론 그게 메인 업무이긴 할 테지만, 그 일을 하면 넌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나라를 경험하게 될 텐데 그건 보통 사람들이 쉽게 못 하는 경험이야.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돈과 시간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어. 그 경험은 나중에 네가 어떤 커리어를 선택하든 분명히 도움이 될 거야."
돌이켜보건대,
이 분이 내 인생의 귀인이었고,
그런 조언을 직접 들을 수 있었던 나는
참으로 행운아였다.
살면서 인생의 방향을 잡아줄 진심 어린 말을 건네주는 사람을 과연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말을 듣는 당시의 나는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내 생각의 범위를 한참 벗어난 교수님의 말씀에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눈만 껌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대학시절 통틀어서 제일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거다.
그런 나를 보고 교수님은 피식 웃으시더니 어깨를 두어 번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잘 생각해 봐. 너무 오래 생각하지는 말고.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이야기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