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에게 승무원 해보라는 말을 들은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승무원 관련 검색을 했다.
참고로 이때가 아이폰 3s를 쓰기 시작했던 시절이다.
인스타는커녕 유튜브가 지금처럼 활성화되기도 전이라, 직접적인 생활상이나 후기를 지금처럼 쉽게 찾아보긴 어려웠다.
당시에는 다음 카페 전현차가 제일 활성화되어 있었고, 채용공고와 면접 후기들 위주로 글이 올라오곤 했다.
물론 면접후기도 취준생에겐 정말 귀중한 자료들이지만, 그 당시의 난 우선 현직자들의 생활상을 들여다보고 내가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인지부터 판단하고 싶었다.
그래서 주로 구글에서 검색을 했다. 한글로 검색해서는 내가 원하는 자료가 많이 나오지 않았고 영어로 검색하니 중동이나 유럽 베이스로 근무하는 현직 크루들의 글이 다수 나왔다.
이번엔 어느 나라를 갔다 왔다, 트레이닝이 이렇게 진행됐다, 이런 승객이 기억에 남는다, 비행이 없는 날엔 베이스 도시에서 이렇게 보냈다,... 하나하나가 낯설고 흥미로웠다.
글을 계속 찾아보다가 뻐근해서 잠시 고개를 들었는데 새벽 5시였다. 밤을 꼬박 새운 것이다.
사실 이게 글 찾아보는게 마냥 재밌어서 그랬다기보다는, 부족한 영어로 사전 뒤져가며 검색하느라 글을 찾는 것도 그리고 온전히 이해하는 것도 시간이 좀 걸려서 그랬던 탓도 있다. 지금같은 AI는 고사하고 구글 자동번역 성능도 아직 별로던 시절이라 다 스스로 하나씩 사전 찾아보면서 해야 했다.
어쨌든 그날 학교 가는 버스에서 새우잠을 자고 쉬는 시간, 점심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속 승무원 관련 글들을 찾아봤다.
국내 베이스에 전 세계를 다니는 경우도 있고 특정 노선에서만 일하는 경우도 있구나, 해외 베이스라고 다 전 세계를 다니는 건 아니고 해외 베이스에서도 특정 노선만 일하는 경우도 있네, 트레이닝이 종류도 많고 되게 자주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승무원들이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어렴풋이 파악해가며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 후 교수님이 나를 다시 부르셨고, 교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말씀하신 대로 승무원 지원 해보겠습니다."
사실 나는 그렇게 말하면 교수님이 “그래, 알겠다” 하고 대화를 금방 끝내실 줄 알았다.
그런데 교수님은 일주일 동안 내가 뭘 알아봤는지 설명해 보라고 하셨다.
하겠다고 했는데 왜 더 물어보시는 거지?
그래도 일단 알아본 게 있으니 알아본 대로 답했다. 난 국내 베이스 항공사보다는 해외 베이스 항공사가 더 끌린다는 것.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정노선만 다니는 것보다는 전 세계 다 다니는 게 더 재밌어 보인다는 것도.
교수님은 잠자코 내 말을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말한 거의 모든 항목마다 왜? 라고 다시 물어보셨다.
재밌어 보인다는 말에도 왜 재밌어 보이는지를 말해보라고 계속 물어보시는 식이었다.
부족한 영어로 진땀 흘리며 최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는 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내가 무작정 따라서 지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주체적으로 판단하길 원하신 것 같다고.
"제가 스스로 하겠다고 결론 내릴 때까지 기다려주신 건가요?"
한국어였다면 교수님께 감히 그렇게 여쭙지 못했을 것 같은데, 영어로 말하다 보니 오히려 직접적으로 여쭤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그 교수님의 가장 환한 미소를 이때 보았다.
"그래. 네가 스스로 원해서 해야 끝까지 해낼 수 있을 테니까. 너 잘할 거다. 나중에 고민되는 게 생겨도 생각만 하지 말고 그냥 움직여서 해봐. 준비 잘하고!"
교수님과 대화를 마치고 나서는 길에는 여전히 마음 한편에 내가? 승무원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에 도착할 무렵에는 나를 몇 년간 지켜보신 분이 저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하시는데 해볼만 하지 않을까? 그래, 지원해 보지 뭐.라고 생각이 정리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외항사 채용공고가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