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승무원 지원 하겠다고 결심한 뒤 처음 본 채용공고는 싱가포르 항공의 한국인 승무원 모집 공고였다.
싱가포르 항공은 그때도 지금도 세계 최고의 항공사 중 하나로, 외항사 승무원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목표로 하는 곳이다.
채용공고가 자주 나는 곳이 아닌지라 당시 전현차 카페도 들썩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작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딱 하나였다.
어릴 적 공항에서 봤던, 파란색 전통복 유니폼.
우와, 그 유니폼?! 그 언니들 예뻤는데!
싱가포르 항공 채용이 얼마나 드문 기회인데 이런 생각만 하고 있고 이 화상아
공고에는 면접이 세 단계로 적혀 있었다.
1차 서류 심사
2차 학원 대행면접
3차 싱가포르 항공 면접
나중에 직접 면접 과정을 밟으며 깨달은 건, 면접 절차가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저게 틀린 설명은 아닌데 굉장히 요약된 것이었고, 실제로는 단계가 훨씬 많았다.
1. Application Screening
2. Arm Reach & Scar Check
3. Group Interview
4. Group Discussion
5. Group Debate
6. Written Test
7. Uniform Fitting & Walking Test
8. Final Interview
지금 생각나는 것만 대충 이 정도이고, 최종 합격자들은 이 이후에 Medical check, Visa process, 그리고 온갖 수업과 훈련이 이어진다.
거의 한 달에 걸쳐서 이렇게 많은 면접 단계들이 있다는걸 미리 알았다면 지레 겁먹고 지원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오히려 뭘 몰랐기 때문에 지원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때 난 뭘 몰라도 너무 몰랐다.
[전신사진 제출요망]
전신?
이게 뭐지
증명사진 말고?
승무원 준비생들은 기본적으로 증명사진과 전신사진 촬영을 한다.
정해진 규정이 있는 건 아닌데도 모두가 약속한 것처럼 여성분들은 검은색 투피스 정장, 흰색 블라우스, 검은색 구두를 신고 머리를 단정히 묶은 뒤 파란색 배경에 촬영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가볍게 주먹 쥔 차렷 자세에 스마-일 하면서 찍는데,
입 다물고 민증 증명사진만 찍어봤던 당시의 난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으면서도,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나름 열심히 미-소 지으며 촬영했었다.
결과적으로는 (^_^)?;; 이렇게 찍혀있긴 하지만 나름 사진사분 가이드대로 애를 썼다.
승무원 면접 준비 과정에서 제일 어려웠던 걸 꼽으라면 난 단연코 그루밍을 꼽는다.
헤어, 메이크업, 의상(코디)... 헤메코를 외항사에서는 보통 그루밍이라고 한다.
내가 그루밍이 면접보다 어려웠다고 하면 다들 농담하는 줄 아는데,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다. 난 정말로 그루밍이 면접보다 어려웠다.
그나마 면접용 정장은 있었는데, 헤어와 메이크업이 정말 최고 난제였다. 난 승무원 면접 보기 전까지 내가 스스로 화장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메이크업에 워낙 관심이 없었고 립밤과 선크림도 그저 귀찮았다. (이건 사실 지금도 그렇다...)
메이크업 샵이라는 게 있다는 걸 승무원 면접 준비하면서 처음 알았고, 한 번 메이크업받는데 몇만 원이 든다는 걸 알고는 기겁을 했었다.
그때의 난 스타벅스에서 음료 한잔 사는 것도 큰 맘먹고 해야 했던 시절이다. 이거 한잔이면 교내 식당에서 밥이 몇 끼인지 생각하면서.
그래도 메이크업이나 헤어를 할 줄 모르니 방법이 없었다. 며칠을 혼자 해보려고 하다 도저히 내가 봐도 이건 아니다 싶어 어찌어찌 그나마 조금 저렴한 샵을 찾아 메이크업과 헤어를 받고 사진촬영을 마쳤다.
메이크업, 헤어, 사진촬영 단계마다 몇 만원씩 쓴 뒤 마지막에 사진관에서 인쇄된 사진들을 받는데, 내가 뭐라고 이게 대체 얼마짜리 사진인가 싶어 절로 어이쿠... 소리를 내며 공손하게 받아 들었다.
사진 '파일'로 온라인 접수하는 거니까 인쇄된 사진을 그렇게 고이고이 모시고 오지 않아도 되는 거였는데.
비싼 사진들 혹시라도 구겨질세라 비닐에 넣고, 책 사이에 넣고, 무슨 파일에 또 넣고, 가방에 넣어 조심조심 귀가했다.
그리고 그날, 어렵사리 준비한 사진들과 함께 내 첫 번째 승무원 지원서가 싱가포르 항공에 제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