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14년 차
주변에서 요리 잘한다고 하면 늘 이렇게 말한다.
" 아니야~ 생존요리야~ "
그 한마디엔 조금의 농담과 꽤 많은 진심이 담겨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엄마가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시고 자연스레 나는 주방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엄마가 20살 때 돌아가셔서 레시피를 물어볼 사람은 유튜브와 요리책이었다. 친할머니랑 외할머니가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셨지만 친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요양병원에 계신다.
부엌은 늘 내 전쟁터였다.
24살에 연년생 아들 둘을 키우며 일하면서도 아이들 이유식은 늘 손수 만들어줬고 내 끼니를 챙기지 못해도 아이들 끼니는 항상 챙겼다. 아이들이 어릴 땐 오후 4시가 될 때까지 밥을 제대로 못 먹은 적도 많았고 잠깐 잠든 시간, 노는 시간에 후루룩 밥을 먹는 게 내 일상이었다.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내 시간이 생겼다. 밥상은 배를 채우기 위한 밥이었고, 하루를 버티기 위한 반찬이었다.
그리고 27살
6살, 4살 아들 둘을 데리고 혼자가 되었을 때 요리는 살아남기 위한 일상이었다.
사실 배달시켜 먹고 밀키트나 반찬을 사다 먹으면 훨씬 편하겠지만 자극적인 입맛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집에서 요리를 거의 다 해 먹었다.
번거롭긴 하지만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훨씬 저렴했다. 이혼 후 양육비를 받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 생활비를 아끼려면 제일 많이 아낄 수 있는 항목이 식비였다. 내가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훨씬 세이브할 수 있는 금액들이 많았다.
그렇게 생존요리는 점점 업그레이드되어 갔다.
이제는 회 뜨는 거 빼고 한식, 일식, 중식, 양식 웬만한 건 다 할 줄 알고 밀키트나 시판 양념은 쓰지 않고 김치(김장김치, 겉절이, 깍두기, 백김치, 파김치, 열무김치, 동치미 등)도 만들고
각종 장아찌, 젓갈(새우젓, 오징어젓갈)도 집에서 만든다. 그렇다 보니 나물반찬, 각종 밑반찬은 기본이 되었고 카레, 감자탕, 삼계탕, 해신탕, 닭볶음탕, 갈비찜, 월남쌈, 아롱사태수육, 갈비탕, 꼬리곰탕, 사골도 직접 다 집에서 끓인다. 각종 김밥들도 다 만들고 곤부즈메도 직접 집에서 한다.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는 지인들은 우리 집에 오는 걸 무서워한다. 음식이 끝이 없이 나오고 사육(?)당하고 집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김밥집이나 도시락, 반찬가게를 오픈하면 안 되냐는 말도 많이 한다. 그럼 무조건 단골 하겠다는 사람이 많다.
특히 밖에서 5만 원 이상 하는 산 낙지 연포탕은 집에서 끓이면 활전복 10마리, 산 낙지 2마리를 3만 원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그러니 먹는 거 좋아하는 나로서는 안 할 수가 없다. 사실 지금도 누군가가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긴 하다~
어느 순간부터 생존요리는 나와 아이들이 하루를 버티게 하는 위로의 밥상이 되었다.
각자의 삶이 바빠서 하루에 한 끼 같이 먹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서 아쉽긴 하지만 최대한 하루에 한 끼는 셋이 앉아서 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 시간들이 정말 귀하다는 걸 안다. 요리한 거 맛있게 먹어주면 그게 너무 행복하더라.
시간이 지나며 한 가지 깨달은 건
누군가를 위해 밥을 짓는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을 다독이는 일이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음식도 삶을 견디고
나를 다시 살게 하는 힘이었다.
여전히 나는 엄마가 해주던 밥이 그립다.
엄마가 해주던 반찬들과 음식들이 그립다.
15년쯤 흘렀을까
이 브런치북은 요리 이야기이자
제일 먹고 싶은 엄마 밥상을 그리워하면서
이제는 내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차려주는
30대 싱글맘의 생존요리 기록이다. 특별하지 않지만 음식을 통해 울고 웃었던 희로애락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