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째, 폭삭 속았수다

롯빠 인생

by 정로생

키 194cm, 몸무게 135kg 거구의 야구 선수가 등번호 10번들 달고 눈물을 흘리면서 고별사를 읽고 있다. “절대적인 믿음과 응원을 보내주신 21년 동안 결국 팬 여러분이 꿈꾸고 저도 꿈꾸고 바랬던 우승은 저는 결국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22년 10월 08일. ‘조선의 4번 타자’라 불리는 이대호 선수의 은퇴식에서다. 17년 동안 통산 홈런 374개로 5위, 타점 1425로 5위를 기록한 강타자 이대호도 롯데 자이언츠에서만은 우승하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은퇴식에 눈물 흘리는 이대호 선수와 눈물 닦아주는 부인 신혜정 씨. 사진 출처: MK스포츠>

롯데자이언츠는 우승 후보로 거론된 적도 없을 만큼 약팀이다. 우승을 했던 84년과 92년에도 우승 후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떤 누군가가 롯데가 우승 후보라고 말한다면 그냥 ‘웃음 후보’라고 조롱받기 딱 좋은 팀이다. 롯데는 8개 팀 시절인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최하위를 4년 연속으로 한 적이 있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 4년 연속 꼴찌. 그때부터 롯데는 ‘꼴데’라고 불렸다. 2019년 방영된 sbs드라마 ‘스토브리그’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우리는 야구를 못해요. 그리고 또, 우리는 야구를 '드럽게' 못해요. 그리고 또, 우리는 '몇 년째' 야구를 드럽게 못해요.” 내 생애에 드라마를 보면서 이만큼 격한 공감을 했던 적이 없었다.

<사진 출처: SBS드라마 스토브리그>

강팀의 조건은 무조건 우승 횟수다. 82년에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프로야구팀 롯데자이언츠는 84년에 안경 쓴 에이스 최동원 투수의 활약으로 한국시리즈 우승했고, 8년 뒤 92년 역시, 안경 쓴 에이스 염종석 투수의 활약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그 후 33년 동안 롯데는 안경 쓴 투수들은 몇 명 있었지만, 안경 에이스라 불리는 선수도 있었지만, 우승만큼은 없다.


올해로 43년째인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에 롯데를 포함해 6개 팀(삼성, 삼미, 해태, 오비, MBC)으로 출범했다. 86년에 8개 팀으로, 2011년에 두 팀이 늘어나 현재 총 10개 팀이 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21세기에 새로 생긴 NC다이노스, 넥센히어로즈, KT위즈도 21세기에 우승이 있지만 롯데만은 없다. 20세기에 딱 두 번 우승하고, 21세기에 유일하게 우승이 없는 구단이 원년구단 롯데자이언츠다. 21세기에 살면서 20세기 우승을 말하고 있으니 왠지 ‘라떼는’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조금은 부끄럽다.


롯데의 첫 우승은 내가 2살 때다. 당연히 직접 겪은 기억은 없다. 하지만, 나는 현장에서 최동원 선수의 역투를 본 것처럼 이야기할 수 있다. 부모님, 친척, 친구, 야구장에서 옆에 있던 아저씨, 택시 기사님 등에게 전해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영화와 다큐, 책, 기사 등의 내용도 찾아봐서 안다. 우승이 두 번뿐이니까, 다른 팀 팬들보다 롯데 팬들이 우승 상황을 더 잘 기억할 수 있다. 84년에는 안경 쓴 에이스 최동원 투수가 혼자 1,3,5,6,7차전에 등판해서 4승을 혼자 거두고 최종 전적 4승 3패로 삼성을 꺾고 롯데를 우승시켰다. 지금 보면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말도 안 되는 혹독한 등판 일정이지만, 당시 롯데 강병철 감독은 최동원 선수에게 “동원아... 우짜노? 여까지 왔는데...”라고 했고, 최동원은 “알겠심더. 마, 함 해 보입시더.”라고 말했던 눈물 나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패배한 삼성의 김영덕 감독은 “롯데한테 진 게 아니라 최동원한테 졌다.”라고 인터뷰를 했다. 어떤가. 정말로 내가 그 우승 현장을 다 본 것 같지 않나? 다시 말하지만 그때 나는 2살이었다.

<한국시리즈에 등판한 최동원 선수. 사진 출처: 롯데자이언츠 구단 유튜브>

두 번째 우승인 92년은 내가 10살 때라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19살 신인인 안경 에이스 염종석 투수가 대활약을 펼쳤다. 정규리그 평균자책점 2.33, 204와 2/3이닝 투구, 127 탈삼진, 6세이브, 13 완투, 2 완봉. 숫자만 봐도 전성기 류현진보다 더 좋은 기록이다. 큰 키에서 내리꽂는 강력한 직구와 활처럼 휘는 슬라이더는 팬들에게 최동원 이후의 또 다른 안경 에이스의 등장을 알렸다. 부산에서 염종석은 ‘염태지’라고 불렸다. 인기가수 ‘서태지와 아이들’의 리더 서태지와 염종석은 부산에서만큼은 동급이었다. 92년 둘이 같은 해에 데뷔했다고 해서 동급이 아니라, 실제로 인기가 그랬다. 아니, 염태지가 더 인기가 많았다. 서태지 팬들께는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염태지는 정규리그가 끝나고 포스트시즌에서도 4승 무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1.47의 성적을 기록하며 팀의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신인왕과 골든글러브상을 동시에 석권한 처음이자 마지막 가수... 가 아닌 롯데 선수가 됐다.

<19살의 안경에이스 염종석. 사진출처 : 롯데자이언츠 구단>

그러나 두 안경 에이스는 우승한 해에 공을 너무 많이 던졌다. 팀이 약하니 더 던져야 했다. 팀은 그들을 혹사시켰고, 선수들은 팀을 위해 혹사당했다. 두 번의 우승은 달콤했지만, 그 후로 둘은 부상에 시달렸고 제 기량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팬들은 선수들의 희생을 알기에, 혹사시킨 구단을 욕하면서도 그 선수들이 입었던 유일한 팀인 롯데를 떠나지 못한다. 그래서 팬들은 안경 에이스가 롯데를 우승시켜 줄 거라는 소망이 있다. 하지만, 팬들 모두 알고 있다. 안경 에이스가 없어서 우승을 못 했던 게 아니라, 그냥 롯데는 야구를 드럽게 못한다는 것을.


각각 우승한 84년과 92년으로 돌아가서 결과를 모르는 상태로 ‘전 재산을 한국시리즈에서 한 팀에게 걸어야 한다면?’이라는 내기를 누군가가 제안해 온다면, 전 재산이 얼마 없는 나도, 절대 롯데를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롯데의 두 번의 우승은 예상 밖의 결과였다. 열세를 극복하고, 강팀을 차례로 물리치고, 전문가의 예상을 뒤엎는 깜짝 우승. 이런 말도 안 되는 극적인 우승을 롯데 팬들은 무려 두 번씩이나 겪었다. 야구팬이라면 이런 롯데 팬들이 반드시 부러울 것이다.

이런 우승은 팬들을 감동의 도가니탕으로 집어넣는다. 내가 지금은 약하고 초라할지라도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내가 응원하는 언더독이자 ‘웃음 후보’이자 만년 ‘꼴데’, 롯데자이언츠의 기적적인 우승처럼, 감동을 선사한다는 거다. 그렇게 매년 롯데는 우승할 전력이 아니지만 팬들은 야구장을 찾고, 중계를 보며 아직 오지 않은 기적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이 마지막 우승 후 33년이나 지났다는 게, 33년이나 그 믿음에 배신을 당했다는 게 함정이긴 하다. 사실 이렇게 오래 응원했으니 마음 돌릴 곳도 없다. 33년이나 속았지만, 오늘도 또 속는다. 매년 속고 또 속는다, 속느라고 진짜 ‘폭삭 속았수다(수고하셨습니다)’. 강병철 감독의 말이 생각난다. “우짜노? 여까지 왔는데......”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환호하는 최동원, 한문연 선수. 사진 출처 : 스포츠동아>

당신이 아직 프로야구 응원팀을 정하지 못했다면, 아니면 지금 응원하는 팀이 있지만 두 번째로 응원할 팀이 필요하다면, 롯데자이언츠 팬이 되는 걸 추천한다. 언젠가는 롯데자이언츠도 우승한다. 진짜 언젠가는 꼭 우승할 거다. 혹시 당신이 우물쭈물 망설이는 사이에 롯데가 갑자기 세 번째 우승이라도 해버리기라도 한다면, 21세기에 처음으로 우승하는 롯데를 보지 못한다면, 그 33년 간의 기다림 끝에 오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면, 세상에 그것보다 억울하지 않은 일은 없을 것이다. 롯데의 우승은 늘 모든 예상을 뒤엎고 도둑처럼 찾아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니 봄에 시작하는 정규리그부터 모두 보고, 겨울에는 극적인 우승을 만끽하면 1년 내내 감동을 준비하는 한 해가 된다. 매년 봄, 나는 그 감동을 기다리며 또 야구를 본다. 자, 그럼 롯데 응원, 한번 해보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