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로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롯빠인생

by 정로생

내 생애 첫 직관은 ‘사건’이었다. 야구장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사건이 벌어진 년도가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84년 우승 후 92년 우승 전 사이의 어느 해였다는 것뿐이다. 또한, 내가 국민학생이라는 것과 가족과 같이 갔다는 것만 기억난다. 그렇게 롯데를 좋아한다고 실컷 나댔으면서 첫 직관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무슨 팬이냐고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죄송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이고, 그 ‘사건’은 무려 1세기 전 20세기에 있었던 일이다. 그 사건으로 롯데를 평생 기억하게 됐다.

사건 현장은 비참했다. 사직 야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해태 타이거즈(현재 기아타이거즈의 전신)의 경기였다. 해태는 1983,1986,1987,1988년 우승팀이었다. 해태에는 이름부터 짜릿한 뜨는 해 ‘선’동열이라는 투수가 있었다. 해태는 이기고 있으면, 경기 중반부터 선동열이 몸을 푸는 모습을 타 팀에 보여줬다. 그러면 롯데 같은 약팀은 선동열이 출전하기 전에 빨리 승부를 내려고 무리하다가 선동열이 나오기도 전에 패배하곤 했다. 그날도 선동열이 몸 푸는 모습을 보고 술 취한 아재들이 “야, 선동열이 몸 푼다. 빨리 치라.”라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연어의 본능처럼 패배를 직감한 롯데 타자들은 그 말을 들었는지 안타와 홈런을 터트리려고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정작 터트려지는 건 팬들의 복창뿐이었다. 배팅(batting)을 하라고 하니 배팅(betting)을 했다.

<선동열 기념 우표. 무시무시한 통산 기록들. 사진 출처: 우정사업본부>

경기는 9회까지 1대 0. 경기는 롯데의 패배 본능에 반하게 흘러갔다. 롯데가 점수를 못 내는 건 당연했지만, 해태라는 강팀에게 점수를 1점밖에 주지 않은 건 ‘사건’이었다. 불안을 느낀 해태는 선동열을 마운드에 올렸다. 롯데 팬들은 패배를 직감했다. 술 취한 아재들도 자리를 뜨려고 준비했다. 그런데 귀신이 곡할 노릇인지 선동열이 롯데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했다. 경기장을 나가려던 관중들이 걸음을 멈추기 시작했다. 홈런 한 방이면 끝내기로 롯데가 이길 수 있었다. 상대 강팀 잡는 우리 약팀 롯데. 늘 팬들이 기다려온 그림이 그려졌다.

9회 말 롯데의 마지막 공격, 주자 1루. 투수는 선동열. 아웃카운트도 타자도 기억나지 않는다. ‘딱’하는 타격음과 함께 어디선가 “됐다. 넘어갔다”하는 소리가 나면서 주변에 술 취한 아재들이 모두 벌떡 일어섰다. 나도 일어섰다. 높게 날아가던 공은 펜스에 맞고 넘어가지 않았다. ‘아’하는 안타까운 탄식이 연습한 듯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런데, 1루 주자는 이미 2루와 3루를 돌아 홈까지 돌진하려고 했다. 3루 코치가 팔을 세차게 돌렸다. 관중들도 흥분하며 3루 코치처럼 팔을 돌렸다. 나도 ‘빨리빨리’를 외치며 발을 동동 구르며 3루 코치처럼 팔을 돌렸다.


설마 선동열이 롯데에게 장타를 맞을까 방심했던 해태 선수들은 공을 주워서 홈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톱니바퀴 돌아가듯 롯데에서는 볼 수 없는 수비였다. 3루를 돌아 홈으로 돌진하는 롯데 주자, 그리고 해태 선수들이 릴레이로 던진 공이 거의 동시에 홈플레이트에 도착했다. 주자가 슬라이딩하며 홈플레이트로 손을 뻗는 순간 해태 포수는 공을 잡아 주자를 태그 했다. 슬로비디오가 재생되는 것처럼 홈플레이트 주변에 둘의 충돌로 모래바람이 일었다가 서서히 걷혔다. 관중들은 일제히 팔을 양옆으로 벌리며 연습한 듯 동시에 소리 질렀다. “세잎~~~!!!” 하지만 공정한 심판은 압박에 굴하지 않고 홀로 큰 제스처로 주먹을 휘둘렀다. “아웃!!!!!!”

<아마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사진 출처:스포츠동아>


갑자기 차가운 물이 내 얼굴에 떨어졌다. 비도 안 오고 새도 없는데? 하늘을 보니 많은 것들이 운동장 안으로 날아가며 액체를 내뿜고 있었다. 냄새를 맡아봤다. 소주였다. 심판의 아웃 콜을 듣자마자 술 취한 아재들이 일제히 마시고 있던 소주를 경기장으로 안으로 던졌고, 그 속에 있던 소주가 내 얼굴로 뿌려진 것이다. 맥주병과 물병도 미처 홈런이 되지 못한 공의 원한을 풀어줄 듯한 기세로 하늘을 날았다. 그 병들은 롯데 팬의 슬픔을 대신해 그라운드로 관중석으로 눈물을 뿌려댔다. 어디서 나왔는지 두루마리 휴지를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휴지가 풀리면서 길게 떨어지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게도 뭔가 크게 즐거운 축제에 길게 떨어지는 하얀 리본 같았다. 실제로 이런 사건을 목격하니 즐겁기도 했다. 평소에 국민학생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욕도 신선했고, 마음껏 공공장소에서 내가 분노하는 모습도 신기했다.

<예전엔 이런 플라스틱 병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기사 출처: 한국일보>


관중들이 진정되지 않을 기미가 보이자 전광판에 갑자기 84년 롯데의 우승 당시 경기 영상이 상영되기 시작했다. 한국시리즈 마지막 7차전에서 롯데의 5번 타자 유두열이 삼성 투수 김일융을 상대로 역전 3점 홈런을 날리는 장면이었다. 내가 이 시기를 84년 이후 92년 이전이라고 기억하는 이유다. 내가 구단이라도 가장 가까운 우승 장면을 내보냈을 것이니까. 순간 ‘아니 이 순간에 저 장면을 왜?’하며 의아해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유두열의 짜릿한 이름, 아니 짜릿한 홈런은 팬들을 진정시켰다. 분노가 환호로 뒤바뀌며 사람들은 유두열을 연호했다.

<84년 홈런 한 방으로 한국시리즈 MVP를 받은 유두열 선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는,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84년에 홈런 한 방으로 최동원을 제치고 한국시리즈 MVP가 된 유두열, 강병철 감독이 6번으로 내려고 했다가 실수로 5번으로 냈는데 갑자기 강타자가 된 유두열, 한국시리즈 내내 타율 1할에 허덕이다가 막판에 역전 홈런을 친 과거의 유두열이 현실의 롯데 팬들을 위로했다. 나도 이 상황이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가지만 좀 차분해졌다. 관중들도 나도 오늘 저렇게 극적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경기는 속개됐지만, 장시간 휴식을 취한 선동열은 짜릿한 삼진을 잡으며 경기를 끝냈다. 1대 0. 롯데의 패배였다. 허탈했다. 하지만, 소리를 질러서 해방된 느낌과 유두열의 등장으로 스트레스는 풀렸다. 2016년에 돌아가셨지만, 유두열 선수는 첫 우승 영상 속에 영원히 한국시리즈 MVP로 남아 롯데 팬들을 위로해 왔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모습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날 사직 야구장의 전광판은 단순히 옛 우승 장면을 비추던 스크린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노와 허무, 패배감으로 들끓던 수만 명의 마음을 잠시 과거로 데려가는 시간의 문이었다. 그 문을 통과하며 사람들은 한때의 열정과 희망을 다시 떠올렸고, 국민학생이었던 나조차도 그 순간만큼은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그 오래된 사건은 지금까지도 롯데 팬인 친구들과 낄낄대며 술자리에서 꺼내는 평생의 좋은 안줏거리로 남아 있다.


과거가 현재를 위로하던 그날의 전광판처럼, 나의 유년 시절도 지금의 나를 다독이고 있다. 돌아보면 나도 40대가 되기 전까지는 늘 롯데 타자들처럼 인생에서 ‘한 방’을 터트리려 무리했던 것 같다. 하지만 터트려지는 건 언제나 내 멘털이었다. 나 역시 무리하게 배팅(betting)을 해왔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의 그 무모함과 허탈함이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물론, 롯데는 여전히 야구를 드럽게 못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런 변함없는 롯데가 나를 위로한다. 절망에 빠질 때마다 나는 그날의 전광판을 떠올린다. 잠시 그 시간의 문을 열고 과거의 나와 마주할 수 있다면, 다시 힘을 얻어 좀 더 차분하게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고 믿는다. 나에게 롯데의 야구란, 바로 그런 ‘시간의 문’이다.

이전 02화응원은 미친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