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빠인생
<명장 김태형도 탈출시키지 못한 롯데의 암흑기>. 오늘 어떤 지상파 언론사의 기사 제목이다. 그렇다. 2025년 올해도 롯데는 가을야구에 실패했다. 김태형 감독이 어떤 감독인가. KBO 리그 최초로 두산 베어스를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시킨 명장 중의 명장이다. 그런 감독도 롯데를 2년 연속으로 가을야구에 데려가는 데 실패했다. 부임 첫해인 지난해 10개 팀 중 7위, 올해도 결국 7위다. 한국 야구 최고 명장인 김태형 감독도 롯데는 버거운 존재다. 농담 삼아 박찬욱 감독이라도 데려오라고 하는데, 그분은 아마 ‘어쩔수가없다’라며 고사할 것이고, 봉준호 감독을 데려오면 ‘미키17’처럼 17번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고 할 것이고,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유하 감독을 데려오면 ‘롯데를 응원은 미친 짓이다’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
3월부터 10월까지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하는 경기에서 패배가 훨씬 더 많은 팀에 돈과 시간과 마음을 쏟아 응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프로야구 정규시즌은 3월에 시작하지만, 롯데 팬의 1년의 시작은 가을야구가 좌절된 10월부터다. 끝은 가을야구가 또 좌절될 내년 10월이다. 2년 전인 2023년 10월 24일, 가을야구가 좌절된 롯데에 김태형 감독이 제21대 감독으로 취임했다. 김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임기 내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해 부산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신임 감독의 립서비스인 줄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래, 명장은 다를 거야. 열심히 응원해야지’라고 생각했다. 계약 당시 김 감독의 임기는 3년이었다. 올해로 벌써 2년이 지났다. 2년 연속 7위다. 롯데 때문에 한국 야구 최고 명장 김태형 감독의 경력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롯데에 오지 않았으면 분명히 더 좋은 팀에서 응원받으면서 좋은 커리어를 쌓을 수도 있었다. 감독님, 죄송합니다.
이렇게 10월부터 매년 새 감독이든 기존의 감독이든 ‘내년엔 확실히 다르다’는 선언과 기사들로 팬들은 내년도 롯데를 응원할 준비를 한다. 물론, 다른 팀들은 11월까지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를 보며 자신의 팀을 멋진 경기를 보고 우승을 만끽한다. 롯데 팬들은 나처럼 아예 다른 팀들 경기를 안 보거나, 11월까지 다른 팀의 경기를 보면서 그저 부러워한다. 12월과 1월에는 ‘내년 성적을 올려줄 다른 팀 선수를 비싼 돈 주고 선수를 영입해야 한다’, ‘다른 팀의 누구와 우리 팀의 누구를 바꿔야 한다’, ‘올해 못했던 선수가 많이 성장했단다’ 등의 이야기를 팬들끼리 나누면서 야구 경기 없는 슬픈 기간을 견딘다. 누군가는 이게 희망 고문이라고 하지만, 롯데 팬에게는 매 시즌 실패를 되새김질하는 게 고문이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희망은 고문이 아니다. 롯데 팬이 이렇게 긍정적인 사람들이다. 미쳤지만 응원에 진심이다.
2월에는 팬들이 팀의 해외 전지훈련까지 따라가서 응원한다. 이때가 롯데자이언츠에 대한 기대치가 가장 높은 시기다. “엄마”라고 할 줄 알아도 내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의심하는 부모 같은 상태다. 전지훈련에서 선수들이 조금만 잘해도 ‘‘이러다가 한국시리즈 우승하는 게 아닐까’하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올해 2월에 롯데자이언츠는 1차는 대만, 2차는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갔다. 구단은 열성 팬들을 참가시키는 패키지 관광 상품을 내놨다. 응원단장과 치어리더들과의 단체 관광, 대만과 일본팀과의 연습경기들 관람, 선수들과 팬 미팅이 포함된 약 5일간의 패키지였다. 1차는 189만 원, 2차는 205만 원인데 팬 30명을 모으는데 딱 21초가 걸렸다. 시즌을 7위로 꼬라박아도 약 200만 원 의 거금을 들여 5일을 통째로 전지훈련 응원에 바치는 롯데팬들. 이 정도로 미쳐있는 팬들이 많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팬들 사이에서는 못해도 응원하니까 구단이 신경을 안 쓴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현실은 당시 롯데 인스타그램에 패키지 모집 글에 사정상 참석 못 하는 팬들의 아쉬움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3월은 봄이다. 봄데도 시작된다. 봄에만 잘하는 롯데라고 해서 봄데다. 진짜 봄에만 야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지훈련에서 진짜 선수들이 성장한 건지 3월 시범경기부터 4, 5, 6월이 롯데의 전성기가 된다. 팬들은 시범경기 시작부터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야구를 응원을 즐긴다. 아니, 즐겨야 한다. 언제 다시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 팬들은 안다. 날이 더워지면 롯데는 기가 막히게 다시 내려온다는 것을. 아니, 사실 다른 팀도 이 모든 걸 안다. 하지만, 그 봄데마저도 사치가 됐다. 2016년부터는 봄에도 못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롯데 팬이었다면 ‘봄데 너마저......’라고 말했을 것이다.
7월부터 9월까지는 팬들은 5강 안에 들기 위해 우리 팀의 승리보다 다른 경쟁팀이 졌는지를 확인한다. 월드컵 축구에서 늘 경우의 수가 등장하듯, 팬들이 통계학자가 된다. 10월에는 통계학자에서도 내려온다. 이때쯤 팬들은 승부에 연연하지 않는다. 야구장에서는 승패보다 응원이 중심이다. 노래하고 율동하는 재미가 더 크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앞의 팬들은 경기를 보며 내년에는 어떤 선수가 더 성장해야 할지 가능성을 점친다. 올림픽도 아닌데 참가에 의의를 두고,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야구를 보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4년에 한 번 올림픽 정신을 느끼지만, 롯데 팬들은 야구장에서 1년에 한 번씩 '참가의 의의'를 체감한다. 승패를 초월한 이 태도,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진정으로 배워야 할 마음가짐이다.
‘올해는 다르다’라고 매년 말하지만, 진짜 롯데가 올해는 달랐다. 신기하게도 7월까지 줄곧 여유 있게 3위를 지켰다. 올 8월 초에는 롯데의 가을야구 진출 확률이 94.9%였다. 그런데 8월 한 달간 5.1%의 그 희박한 확률을 뚫고 가을야구 탈락이라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12연패를 한 것이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과는 정반대로 3위에서 7위로 본능적으로 거꾸로 거슬러 내려왔다. <8월 초엔 우승 넘봤던 롯데 추락… 예견된 8년 연속 가을야구 실패>. 한 통신사의 기사 제목이다. 떡상하다가 갑자기 떡락해서 상장폐지 되는 내 주식 같은 롯데다. 롯데 팬은 야구 응원하다가도 주가조작에 당한 개미의 심정도 알 수도 있다.
롯데 응원은 '미친 짓'이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광기가 아니라 순수 그 자체다. 아무런 성과도 보장되지 않는 데도 끝까지 응원하는 것이야말로,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다. 평생에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응원을 해본 적이 없다. 늘 타인을 평가하고 지적해 왔다. 내가 누군가를 응원했다면 그는 어떤 식으로든 더 좋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이런 응원을 받아본 적도 없다. 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두려워하고, 작은 비판에도 상처받았다. 그런 응원을 받았다면 어떤 식으로든 더 좋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주변 사람에는 하기 힘든 이 중요한 ‘응원’이라는 것을, 롯데 야구를 통해 배울 수 있다. 롯데는 이런 팬들의 응원 덕분에 생각보다 더 좋은 팀이 될 수 있었다. 롯데 선수들과 코칭스테프들도 응원이 팀에 자신감과 든든함을 주기 때문에 팬들에게 고마워하는 인터뷰를 늘 한다. 응원 덕분에 더 좋은 팀이 됐지만, 고작 7위라는 게 문제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서로 위로하며 선수와 코칭스테프와 구단을 믿고 또 응원을 시작한다. 내년에도 여전히 경기장으로, 텔레비전 앞으로 팬들은 모일 것이다. 그게 롯데 팬의 방식이고, 우리는 미쳐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