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나를 살리는 일에 소홀하지 말 것

by 이솔

모처럼 날씨도, 기분도 좋은 날이었다.


수업이 없는 날이라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침대에서 한참을(정말로 한참을...) 빈둥거리다 점심때가 다 되어 느지막이 일어났다. 주말 동안 해야 할 과제가 두 개 있고, 그간 수업도 제대로 못 들었기 때문에 복습도 해야 해서 부지런히 밖으로 나왔다. 땀이 살짝 흐를 만큼 날이 맑았다. 잘 꾸며진 카페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아이스 라떼를 마셨다. 햇볕이 그대로 들어와 손등에 내려앉는다. 나는 이런 순간에 살아있다고 느낀다.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오늘은 나를 살아있게 하는 것들에 대해 써볼까.


쨍쨍한 햇볕과 녹음, 신선한 바람. 걷는다. 아주 오래 걷는다.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때로는 죽음을 갈망하고 가끔은 삶에 다가가려 발버둥 치는. 또, 찍는다. 프레임 안에는 사람이 없다. 꽃과 나무, 강아지와 고양이, 바다, 철길, 도로, 가로등......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아름다움.


좋은 시, 소설, 영화, 드라마, 뮤지컬, 연극, 팟캐스트...... 그러니까 좋은 이야기. 그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죽어있지 않다. 숨지 않는다. 좋은 이야기에 의지하는 것은 좋은 사람에 의지하는 것보다 쉽다. 좋은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피하지 않는다. 상처받지 않는다. 나는 불안하지 않다. 눈치 보지 않는다. 상처 주지 않는다. 자유. 숨이 트인다.


그리고 차가운 커피를 산다. 제대로 된 밥을 먹는다. 약을 처방받는다. 이불을 껴안고 잠든다.


언젠가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나를 살리는 일에 소홀하지 말 것'. 그런데 나의 세상은 나에게만 중요하다는 사실이 나를 자꾸 죽인다. 나에게 내가 소중하지 않아서. 나를 살릴 이유가 없어서. 백 일을 다 채우고 나면, 아무런 의심 없이 나를 살릴 수 있을까? 시간은 언제나 그랬듯 빠르게 흘러갈 것이다. 삶이라는 연속선상에서 순간이라는 점을 기록하는 것. 관객이 없다면 무대는 의미가 없는 것인가? 내가 나의 관객이 되어보기로 한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5화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