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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지도 않은데 죽기는 무서운

by 이솔

어쩌면 중간에 중단하지 않고 100일을 모두 채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생각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100일 후에도 삶과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살고 싶지도 않은데 죽기는 무서운 이 애매한 위치에서 방황하는 것도 정말 질린다.


오늘은 유난히 피곤한 날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낮 시간의 졸림이 심했는데 여전히 수업 내내 졸고 있다. 의지와는 상관없는 문제로 느껴지는데... 타인의 시선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졸다 깨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정신을 차리니 벌써 오후 4시가 넘었다. 피곤하다. 아, 그래서 지난주에 병원에 갔을 때 부프로피온 서방정을 처방받았다. 그런데 또 약 먹는 것을 까먹어서... 내일부터는 정말로 약을 챙겨 먹어 봐야겠다. 도움이 될지 모르니.


처음 정신과에 내원했을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3개월 전에 나의 주요 증상은 자살사고, 죄책감, 무기력, 이인증, 불안, 흥미저하였다. 혼자 있는 시간을 주로 울면서 보내기도 했다. 다행히 처음 처방받은 약들이 잘 맞았는지 자살사고가 많이 줄었고 죄책감은 거의 사라졌는데 요즘 들어 다시 죄책감이 심해졌다. 나의 우울이 나에게만 버거운 것이 아니구나. 주변 사람들까지 버겁게 만드는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상상이 아니라 실제 같지만...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나의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부모님과의 관계, 정신과적 및 내과적 병력, 성적 지향 등등.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게 부담이 될 것 같아 미안해졌다. 이미 다 말해놓고서... 친구도 고민이 많을 시기인데 너무 나의 불안만 잔뜩 털어놓아버렸다. 미안하다. 또 나의 애인은 내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서 혹시 자기가 안 좋은 영향을 주게 될까 봐 봐 겁난다고 했다. 그래서 더 적극적이지 못하고 고민이 많았다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이상형이었다고 했다. 말하지 말 걸 그랬나. 안 지어도 될 짐을 지게 한 것 같아 미안했고,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아 속상했다.


내가 시한폭탄 같은 존재처럼 느껴진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이리 굴렀다 저리 굴렀다... 나와 마주치는 사람들은 언제 터질지 몰라 덜덜 떨고... 모르겠다. 나에게도 내가 폭탄 같으니.


몇 주 정도 약을 제대로 못 챙겨 먹었다. 그 때문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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