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킥오프 | 프롤로그
참 열심히도 살았다.
남의 머리 깎느라. (웃음)
남을 챙기느라 정작 나는 늘 마지막 순위였다. 아니, 순위조차 주지 않았다.
내게 남은 건, 다 쓰고 남은 에너지뿐이었다.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어느 날은 관심조차 없었다.
일에 모든 힘을 쏟고, 나에게 주는 보상이라며 늦은 밤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주중 내내 야근하고 주말은 종일 잠으로 나를 채웠다.
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지만, 정작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은 없었다.
누군가 대화 중에 나에 관해 물으면 입에 꿀을 머금었다. 감정을 물으면 이윽고 말을 잃었다.
생각하느라 늦은 건지, 굳이 답하지 않으려는 건지, 사실은 내 온전한 감정과 기분을 몰랐다는 것이 맞다.
살아오느라 바쁘기도 했고 더 잘 살려고 노력도 했지만, 이제 와서 제대로 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디자이너다.
클라이언트의 말을 듣고 또 듣고 원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질문했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에게는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었다.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으니,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했을 때도 제대로 답할 수 없었던 게 당연했다.
얼마 전 짝꿍의 말도 끊임없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스스로에 관한 질문은 사춘기에 했어야지"
…맞다.
그래야 했다는 걸,
난 마흔에나 알게 됐다.
요즘 자기 전 침대에 누우면 자꾸 질문이 생긴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지금의 삶은 내가 선택한 것인가.
막연한 답은 있지만, 확신은 없었다.
이제 와서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잘 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좋은 차나 큰 집, 일하지 않아도 돈이 생기는 삶을 꿈꾸는 건 아니다.
물론 가능하다면 거절하진 않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다만 나와 내 가족이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그 질문이 문제였다.
질문은 많아졌고, 생각은 부유했지만, 방향이 없었다. 계획도 결론도 없었다.
일할 때는 또렷했지만 일이 아닌 순간, 나는 흐릿했다.
그러던 어느날 클라이언트와의 대화에서 익숙한 질문들을 다시 마주했다.
어떤 회사인가?
무엇을 하고 싶나?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 (중략)
브랜딩을 위해 늘 던지던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지금의 나를 자가진단 해봤다.
남에게는 전략을 제안하면서, 내 인생의 전략이 전혀 없었다.
나를 설명하는 말들은 많지만, 정작 내가 고른 단어는 없었다.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연장선’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바꿔야 한다는 건 아는데, 뭘 바꿔야 할지는 모르는 상태였다.
늘 누군가가 세운 기준, 역할, 책임 안에서 존재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몸으로 느끼게 됐다.
정작 나와 내 삶에 이런 질문도, 질문에 대한 답은 물론이고, 정의해 본 적도 없었다는 걸.
언젠가 한 번쯤은 내 인생을 정리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지금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순간 떠올랐다.
“나부터 브랜딩 해야겠네.”
여기서 말하는 브랜딩은
흔히 말하는 퍼스널 브랜딩과는 조금 다르다.
퍼스널 브랜딩이 수익과 영향력을 위해 밖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설계하는 일이라면, 내가 하려는 브랜딩은 내 안쪽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준을 세우는 작업에 가깝다.
브랜드가 정체성을 가지듯, 나 역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리하고 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기준과 방향을 하나의 가이드라인으로 정리해 보고 싶었다.
돈을 벌기 위한 브랜딩 이전에, 흔들리지 않기 위한 브랜딩.
더 '나다운 선택'을 하기 위한 설계다.
마흔이 되니 시간이 가장 아쉽다.
더 이상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라는 사람'을 한 번 브랜드처럼, 처음부터 점검해 보기로.
이 시리즈는 나를 포장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기 위해 정리하기 위한 기록이다.
브랜딩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회사처럼,
성실하지만 기준 없이 굴러가던 사람을 처음부터 점검하고 설계해 나간다.
가장 먼저 현재 상태 점검부터 시작한다.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 브랜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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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일=나’라는 위험한 물아일체 | 현재 상태 진단 | 전략 없이 성실하게만 굴러온 브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