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어린이

내부 인식 점검 | 나를 설명해 온 4가지 회피와 핑계

by 무채




용어 정의



3화에서 자산을 전부 꺼냈다.

이제 그 자산들을 나는 어떻게 인식해 왔는지를 볼 차례다.





자산 정리를 하면서,

나는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포장하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디자이너이지만 심미적 완성보다 본질을 고민하고, 더 발전을 꾀했다’ 같은 말들로.


가진 재료와 자산을 꺼내는 글을 쓰면서도 '에세이니까’, ‘보고서가 아니니까’라며,

단순 나열보다 경험적 이야기가 들어가는 게 맞다며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실제로 도움이 된 적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포장을 걷어내고

팩트만 놓고 본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다양함'을 가장한 산만한 시도.

'치밀함'을 가장한 강박적 사고.

'적극성'을 가장한 충동적 태도.


이 간단한 세 문장이 지금까지의

'나'다.





"당신에 대해 알려주세요."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말했다.

"디자이너입니다."


상대방은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건 직함이잖아요. 당신은 어떤 사람이에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근 40년을 살았는데,

나를 설명할 단어가 없었다.


자산을 정리할 때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말을 글로는 잘도 썼다.

책상 앞에 앉아 오랜 시간 차분히 생각하고,

쓰고 지우길 반복하고서야 겨우 나를 구성하는 것들을 찾아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텍스트 뒤에 숨었을 때의 이야기다.

누군가의 면전에서 곧바로 꺼낼 수 있는 내 언어는 아니었다.


결국 나는 편하다는 이유로 늘 "직함" 뒤에 숨었다.

직함은 긴 설명을 대신해 주니까.


단 한 번도 직함 없이 나를 설명해 본 적이 없었다.


디자이너로 치면 내 삶은 정교한 '목업(Mock-up)' 이미지 같았다.

화면 속에서는 빛과 그림자, 질감 하나까지 완벽한 진짜 제품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건 실체 없는 빈 깡통이다.

그저 '디자이너'라는 라벨을 그럴듯하게 씌워둔 빈 깡통.


소속과 명함을 떼면 나를 설명할 언어가 하나도 없다니.

어린아이 같아 수치스러웠다.


"3학년 2반 아무개입니다"라고 말하는 열 살짜리 꼬마의 자기소개와

마흔 인 내가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돌이켜보면

내가 써온 회피는

늘 비슷한 패턴이 있었다.


회피 패턴 1: 직함으로 숨기

"저는 디자이너예요."

직함은 질문을 끝내준다.


회피 패턴 2: 기능으로 대체

"빠르게 일해요." / "꼼꼼해요."

기능은 판단받지 않는다.


회피 패턴 3: 도덕으로 포장

"성실해요." / "책임감 있어요."

반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가장 안전하다.


회피 패턴 4: 미래로 도망

"지금은 찾아가는 중이에요."

지금 대답 안 해도 되니까.


나는 이 네 가지를

상황에 맞게 조합해서 써왔다.


몇십 년 동안.


적어놓고 보니, 이건 대답이 아니었다.

'질문을 차단하는 방식'이었다. 어른의 언어로 어른인 척 포장했을 뿐,

본질은 숙제 검사를 피하고 싶어 변명하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럼에도 누군가 더 묻기라도 하면

나는 이렇게 말했다.


"바빠서요."


나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또 다른 회피 방법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점검할 시간이 없다고,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고 도망쳤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넷플릭스는 봤다. 의미 없는 술 약속도 갔다.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니다. 나를 마주하는 게 불편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 바쁜 척했다. 또 바쁘게 만들었다.

바쁨은 훌륭한 핑계였으니까.


마치 피망이 먹기 싫은 아이가 "나 배불러서 못 먹어"라고 말하거나,

병원에 가기 싫어 "이제 안 아파"라고 둘러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어른의 세계에서 '바쁘다'는 말은 가장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내 삶의 숙제를 하기 싫어 도망치는 가장 유치한 책임 회피였다.


차라리

만화 속 짱구처럼 말하는 게 나았을 거다.

"피망은 맛없어, 안 먹어."






이 글을 적으며

계속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방치.


의도적으로가 아니라,

무심하게, 무관심하게.


더 나쁜 건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잘 살고 있다"고 믿었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검해 보니 나는 그냥 굴러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가장 큰 모순은,

일터에서 나는 어른이며

'프로'였다는 점이다.


나는 늘 클라이언트에게 말했다.

"브랜드 정체성이 명확해야 합니다."

"본질을 파악해야 합니다."


타인의 본질을 찾는 일에는

밤을 새워서라도 묻고 파고들었으면서,


정작 '나'라는 본질을 마주하는 일은

어린아이의 방식으로 유치하게 도망쳤다.


아주 오랫동안

무책임하게

방치해 왔다.





다음 화

5화. 오합지졸, 당나라 군대 | 조직 및 역할 구조 분석 | 임원진은 없고 실무자만 갈아 넣은 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