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가성비’

외부 이미지 진단 | 남들이 나를 '가성비 잡부'로 쓰는 이유

by 무채




용어 정의


'내 이름은 김삼순'도,

'내 이름은 빨강'도 아닌,


'내 이름은 가성비', 그리고 호(號)는 쓸고퀄이었다.



"네가 하면 더 잘할 것 같아서."

"성실하니까, 믿고 맡길 수 있어."

"고민이 있는데, 이게 잘 안 풀리는데, 좋은 생각있어?"


당시엔 이 말들을 칭찬으로 들었다.

장점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읽힌다.





최근 나는 지난 일상을 중지했다.

관성도, 타성도 함께 멈췄다.


그제야

외부에서 나를 어떻게 읽어왔는지를

다시 들여다볼 시간이 생겼다.


당시 나는 외부의 인정들을

‘능력과 실력에 대한 인정’으로 받아들였다.


남들보다 낫다고 믿었고,

동일 직군의 누군가보다

조금은 더 넓은 시야를 가졌다고 자신했다.


긍정적으로 읽었다.


외부의 눈에서 나는

‘긍정적인, 성실한, 열정 있는’ 인간이었다.


그땐,

그 말들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까지 잘했으니까.

누가 봐도 '잘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발전할 필요를 못 느꼈다. 계획을 세울 이유도 몰랐다.

굴러가는 대로 굴러갔고, 그게 효율이라 믿었다.


그리고 이젠 그것들이

'남의 편의'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는

가끔 비슷한 장면들이 반복됐다.


누군가는 일이 막혔다며 찾아왔고,

누군가는 답답한 얼굴로 내 옆을 지나며 한숨을 쉬었고,

누군가는 부하 직원의 일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막혔다는 말에는 열릴 길을 보여줬고,

한숨에는 굳이 내가 나설 필요 없는 선택지를 꺼냈고,

답답하다는 하소연에는

이건 고치고, 이건 빼고, 이건 추가하면

시간 안에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힘내세요.

그러게요.

나빴네요.

그 정도면 충분했을 일이다.




"네가 하면 더 잘할 것 같아."

"역시 믿고 맡길 수 있어."


이 말들에 취했다.

우쭈쭈라는 나태 지옥이었다.


발전은 멈췄지만,

자존감은 그럭저럭 유지됐으니까.





나의 업은 디자인이었고,

그들의 일은 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일을 내가 마무리하는 업을 했지만

엄밀히, 그들의 일을 함께 해줄 이유도 의리도 의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중간부터 일을 보게 되면

내 일을 할 때의 득이 생겼고,

그래서 도움을 줬다.


지금 와서야 드는 해석이다.


그들이 정말 내 조언을 필요로 했을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까.





외부에서 들은 문장들을

사실에 가깝게 다시 써보면 이랬다.


"네가 잘하니까 디자인 의뢰를 맡기고 싶다."는

"다른 데서 찾긴 귀찮고, 잘하는 네가 마침 옆에 있으니 맡기고 싶다."로


"항상 기대치 이상의 일을 해줘. 성실하고 항상 만족스럽고."는

"의뢰비용 이상의 일을 해줘. 시킨 것보다 더 해주니까, 해주니까 항상 만족스럽고."로


"지인이니까 소개시켜주려고."는

"내 지인한테 소개하니까, 저렴하게."로



"싸게 해줘서 고마워."

"박리다매야? 하하."

"역시 똑똑해."


그땐 인정이나 농담으로 들렸다.

지금은 가격 협상으로 읽힌다.


가치를 깎으면서도

기분 좋게 만드는 기술.





이게 부정적 재해석인지

아니면 내가 애써 무시했던 진짜 의미인지는 모른다.


다만 분명한 건,

내가 이 말들을 '인정'으로 착각하고

같은 패턴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병도 하나 있었다.


누군가 고민을, 일감을 들고오면

그 내용을 듣는 순간 흥미가 동해서 하고 싶어지는 .


그리고 나는

그걸 다 해내는 이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일하는 게 아니라, 일에 '끌려다니고' 있었다.

생각하지 않아도 손이 움직였다. 판단하지 않아도 입이 열렸다.

멈추지 않았지만, 나아가지도 않았다.


그렇게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타성 속에

젖어갔다.





신호는 계속 있었다.

다만 나는 그걸

칭찬으로, 장점으로 번역하고 있었을 뿐이다.


시장에서 나는 이렇게 불렸다.

'필요 업무 외적인 부분까지 케어해주는 멀티플레이어'

'돈 값 이상 하는 올라운더'


나는 본질을 추구한다고 믿었다.

깊이 있게, 의미 있게 일한다고.


하지만 세상은 나를 이렇게 썼다.


"다재다능하니 아무거나 시켜도 다 되는 사람"

"값싸게 여러 가지 해주는 사람"


내가 생각한 나와,

세상이 소비한 나 사이의 간극.


그 간극이

내 이름을 ‘가성비’로 만들었다.


당시엔 몰랐다.

이게 칭찬이 아니라

가격표라는 걸.


이제는 안다.


이 말들이

지금 기준으로

"너 참 착하다."라는 말이라는 걸.





[브랜드 진단 보고서 - 외부 진단: 최종 As-Is 요약]

성실함과 호의로 업무 범위를 지속적으로 초과 수행함.

명확한 역할·가격·경계 설정 없이 문제 해결에 개입함.

그 결과, ‘능력 있는 전문가’가 아닌
‘기대 이상의 일을 기본값으로 제공하는 인력’으로 인식됨.

시장에서의 평가는 신뢰가 아닌 편의, 존중이 아닌 가성비 중심으로 형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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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누군가의 성공에 진짜 배가 아플 때 | 경쟁 환경 분석 | 누군가를 보며 느낀 '진짜 질투'의 실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