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재다능’이라는 이름의 저주

보유 자산 평가 | 경험, 기술, 직함이라는 이름의 재료들

by 무채


용어 정의



내 방의 옷장을 정리한다고 하면

보통 시작은 안 입는 옷들을 골라내거나,

옷장을 뒤적이며 입는 옷과 버릴 옷을 나누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든 옷을 바닥에 전부 쏟아내고,

텅 빈 옷장 바닥부터 깨끗이 닦아내고 싶은 마음으로 이번 화를 시작했다.


내 삶의 옷장 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꺼내볼 것이다.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것들은 무엇이며,

정의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언급했던 것처럼,

오래간 한 운동으로 좋은 체력을 가졌다. 아니, 가졌었다. 긴 세월 한 운동은 내게 운동을 기피하는 아주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고, 운동은 숨쉬기 운동이 최고라며 얼버무렸다. (그 좋던 체력은 30대 초까지 다 까먹었다.)


다음은 다양한 경험이다. 운동을 접고 다른 전공을 찾기 전 나는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몰랐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경험을 원했다. 궁금함에 친구의 아르바이트를 며칠 땜빵하기도 하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기도 했다.


그리고 디자인이다.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나는 이론 공부보다는 실무에 관심을 가졌다. 전공 선택 전 이것저것 해보는 게 즐거웠는지, 그것이 관성으로 남아 이어졌다. 가진 경력도 경험도 없었지만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갔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로, 디자인 프리랜서로,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때의 체력과 경험은 자산이라기보다,
그냥 언제나 꺼내 쓸 수 있는 '재료'에 가까웠다.





이런 관성과 태도는 디자인을 업으로 시작할 때도 이어졌다.

처음 내가 접한 영역이자 시작했던 직군은 웹 디자인이다. 지금은 생소하겠으나 2010년 무렵까지 당시 웹 디자인은 '웹 퍼블리셔'라는 직군과 양분됐다. 대부분 2000년도 초기에 웹 디자인을 접한 사람은 '웹 퍼블리셔'라는 이름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을지 모른다.


이 직군은 "UI 디자인(포토샵) + 마크업(HTML/CSS) + 동적 효과(jQuery)"를 다뤘다.

덕분에 웹 디자인을 전문으로 한 동기들은 지금 다양하게 UI/UX 디자이너, 웹디자이너, 프론트엔드 디자이너 등으로 나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웹 퍼블리셔'가 이상하기도 독특하기도 한데,

디자이너의 감각과 개발자의 논리적 사고를 동시에 갖춰야 하는 '가교' 역할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지금의 프론트엔드 영역 개발을 했어야 했기 때문일 거다.


나 또한 맡은 프로젝트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 퍼블리셔 단계를 공부했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는 개발에도 관심을 가졌고 구조적, 논리적 사고에 관심을 두었다. 심미적 아름다움을 가졌으나 구조적으로 어색하면 뜯어고쳤다.


처음 입사한 회사는 외국계 회사로,

각 역할에 맞게 기능적, 전문적으로 나뉘어 있었다.

덕분에 '프론트엔드, 백엔드 디벨로퍼, 엔지니어'와 함께 구조, 기능적 논리에 따른 일을 경험했다.

나뿐만 아니라 나 전과 후의 '연결성'과 '편의'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냥 '모든 게 궁금했을 나이'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웹 퍼블리셔는 한국 IT 업계에만 있던 독특한 형태로 발전된 직군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플래시'나 프론트엔드 개발을 다뤘다.)


지금 돌아보면
이 시기부터 나는 "결과보다 구조에 더 오래 머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건축 디자이너다.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보고 자란 그림들은 그냥 그림이 아닌, 기능하는 형태의 디자인이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고 했다.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이 한 말이었으나 바우하우스에서 이를 모더니즘의 핵심 철학으로 계승하며 많은 디자이너들이 바우하우스의 격언으로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Design is how it works.(디자인은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냐에 대한 것)라는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말도 많이 기억할 것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바우하우스에, 스티브 잡스에게 '기능하지 않는 디자인'은

디자인이 아니라 단순히 그림일지도 모른다는 영향을 받고 있었을지 모른다.


언젠가, 일을 하는 중 간간이 동료나 클라이언트로부터 듣던 말이다.

"그냥, 예쁘게 만들어 달라", 그들 중 일부는 목적과 목표, 구조나 기능을 잊고 주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마다 말하고 싶었다. "디자이너는 예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냥도 아니라고".

그리고, 때론 실제로 말하기도 했다.


살면서 주변으로부터 받아온 영향인지, 개인의 생각인지 모른다.

그냥 이유 없는 '그냥'이란 말이 싫었다.





어느 날, 십여 년 전쯤.

어떤 이유였는지 기억하기도 어려운 날에,

여느 때처럼 또 나는 디자인 외의 것에 목말랐다.


한 발 나아가고 싶었다.

그게 무엇인지, 무엇일지, 무엇이길 바랐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뭔가 하나 더 하고 싶었다.

디자이너로서 조금 더 진화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고민을 가지고 있을 때,

상사와 반주를 하던 중에 고민을 꺼냈다.

그때의 상사는 조용하고 골똘하게 생각한 후 기획을 추천했고, 곧이어 업무에서 '디자이너로서 할 수 있는 기획'이라는 과제로 이벤트 기획을 맡겼다.


처음 하는 기획에 준비부터 무척이나 혼이 났다.

일을 하면서 혼이 난 적은 거의 없던 나는 이 경험이 새로웠다.

몇 주 간의 상사의 질책은 팀장의 문책으로 끝이 났다. 내 기획의 예상참여자 수가 크게 벗어난 것은 기획 실패라며.


예상참여자의 열두세 배쯤을 기록했고, 참여자 선별 문제로 타 부서에 협조요청을 했기 때문에 민망함을 감출 수 없었으나, 마음은 중독과 같은 알 수 없는 고양감으로 가득했다.


그 후 나는 디자이너니까 할 수 있는 기획이라며 온갖 콘텐츠 기획을 쏟아냈고,

기획하는 맛에 빠져갔다.





브랜드, 패키지, 편집, 마케팅, 광고 디자인 등 많은 영역의 일을 맡았고, 콘텐츠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스토리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며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일을 했다.


디자이너 타이틀을 달고 입사를 하기 전부터 외주로 들어오는 업무도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서 진행했다.


마지막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며,

산출물을 의도에 따라 도출하기 위해 결국 개발에 손을 뻗었다.


그래픽 디자이너, 웹 퍼블리셔, 웹 디자이너, 콘텐츠 디자이너, 콘텐츠 크리에이터, 아트 디렉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참 여러 길을 거쳤다.



이렇게 경험, 구조, 기능, 기획 등

여러 생각과 태도에 대해 꺼내봤는데.


문제는,
이 선택들 대부분이
'다음 단계'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어디로 가는 단계'였는지는
끝까지 묻지 않았다.




지금까지 왜 경험, 생각, 업무, 직함 등을 길게 나열했을까?


결국 내가 누구인지는 어떤 역할을 했고, 무엇을 경험했는지가 쌓여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라면서도 구조와 논리와 떨어질 수 없는 환경에서 오랜 시간 나를 발전시켰다.

퇴화시켰다.

옆 길로 샜다.


그렇게 내가 보유하게 된 능력은 여러 영역의 경험과 스킬의 합이 되었고,

나를 설명해 온 언어는 곧 '직함'이 되었다.





어떤 때는 의도에 따라,

어떤 때는 의도치 않게,

나는 흥미가 생기면 자리를 옮기며 새로운 일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계획은 없었다.


"이 자산은 앞으로 나를 기준할 설계에서 어떤 형태로 쓰이게 될까."


이런 질문은 누락한 채,

자산이랄 수 있을 것들을 바닥에 전부 꺼냈다.


이제 다음 단계에서는,

스스로 이 자산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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