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전 관리 | 현재 버전의 인정
1화에서 나는 나를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진단하겠다고 선언했다. 2화에서 일과 나를 동일시해온 구조를 인정했고, 3화에서 방향 질문을 놓쳤음을 확인했다. 4화에서는 회피 습관을 들여다봤고, 5화에서는 임원진 없는 회사를 마주했다. 6화에서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해석하는 나를 보았고, 7화에서는 속도에 대한 집착을 직면했다. 8화에서 핸들이 고장 났음을 인정했고, 9화에서 청구서를 받았으며, 10화에서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꽤 많은 진단을 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솔직하게 들여다봤고, 나름 냉정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모든 과정을 지나왔는데도, 나는 여전히 제자리였다. 문제를 이해했는데도, 출발은 여전히 느렸다. 알고 있다는 것과 움직인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 밑바닥을 들여다봤을 때, 완벽을 향한 집착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출발선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늘 완벽한 정답을 찾으려 했다. 완벽해지면 움직이겠다고 생각했고, 준비가 끝나면 선언하겠다고 미뤘다. 더 나은 버전이 되면 공개하겠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다가 멈춘 적이 있다. 진행한 프로젝트를 업로드해야하는데, 이 프로젝트를 올리기엔 결과물이 아쉽고, 저 프로젝트는 클라이언트 이야기가 많아서 공개하기 애매하고, 이건 너무 오래됐고. 고르다 보면 남는 게 없었다. 완벽한 포트폴리오를 만들려다가 결국 아무것도 올리지 못했다. 그 상태가 몇 달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몇 년이었다.
그 기다림은 신중함처럼 보였지만, 실은 출발을 지연시키는 구조였다. 신중한 게 아니라 두려운 거였다. 틀릴까 봐, 부족해 보일까 봐, 나중에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두려움에 신중함이라는 이름을 붙여두고 있었다.
완벽하지 않아서 멈춘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멈추는 방식이 문제였다.
완벽을 출발 조건으로 세워두는 순간, 나는 영원히 준비 중인 상태로 남는다. 지금 완벽하다고 선언해도 내일이면 다시 수정할 부분이 생긴다. 그렇다면 완벽은 애초에 조건이 될 수 없다. 조건이 될 수 없는 것을 조건으로 걸어두고, 나는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완벽은 시작점도, 도착점도 아니다.
움직이는 과정에서 계속 점검하고 조정해야 할 운영 기준에 가깝다.
완벽한 판단은 없다.
다만 그 시점에서 책임질 수 있는 기준이 있을 뿐이다.
아버지는 올드 팝송을 좋아했다.
오래된 라디오처럼, 집에 가면 늘 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가요를 틀면 가사가 귀에 꽂혀 집중이 안 돼서, 작업할 때 의도적으로 팝송을 작게, 노이즈처럼 깔아두는 편이다. 귀에 들어오지 않는 선율은 소음이 되고, 그 잔잔한 소음은 오히려 집중을 도왔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노이즈 속에서 이런 문장이 귀에 꽂혔다.
“There is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레너드 코헨의 노래였다. 멈추고 다시 들었다.
균열이 있어야 빛이 들어온다. 완전히 막혀있으면 빛이 들어올 틈이 없다.
나는 그동안 균열을 감추려 했다. 부족한 부분을 들키지 않으려 했고, 완성되지 않은 상태를 드러내는 게 두려웠다. 그런데 그 균열이 오히려 신호였다. 무너짐이 아니라 입구였다.
핸들 없는 트럭은 위험이었고 동시에 경고였다. 갑작스레 받기 시작한 청구서는 더없이 완벽한 빨간 불이었다. 그 신호들을 무시하지 않는 순간부터 관측은 시작됐다. 보이지 않던 문제가 드러났다는 것은, 더 이상 무의식적으로 운영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 연재를 통해 나의 균열을 관측했다. 그동안은 부족한 부분만 보였고, 그래서 나라는 존재 전체가 결함처럼 느껴졌다. 문제를 발견할 때마다 자책이 먼저 왔다. 왜 이걸 이제야 알았지, 이 나이에 이것도 몰랐나, 진작에 고쳤어야 했는데. 그 자책이 쌓이면 움직이기가 더 어려워진다. 자책은 에너지를 쓰지만 방향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균열은 틈이다. 그 틈을 통해 무엇이 들어오는지까지 보게 되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실패가 아니다. 결함투성이가 아니라, 관측이 시작된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v1.0을 선언했다.
이것은 최종본이 아니다. 지금 시점에서 확인한 판단과 기준의 집합이다.
수정을 전제로 하고, 기록을 남긴다. 버전은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운영의 단위다.
첫 번째 실패.
마음 속으로 선언을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랜만에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났다.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 시간을 쓰는 중이었고, 그들도 오랜만이었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다가 그들 중 하나가 자신의 회사와 계약된 현재의 외주 디자이너에 대한 아쉬움을 살짝 비쳤다. 딱 그 정도였다. 부탁도 아니었고, 직접적인 의뢰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바로 말했다. "내가 그거 빼곤 이런 건 하지, 의뢰 연락은 언제나 환영."
말하고 나서 잠깐 멈췄다. 방금 내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천천히 재생됐다. 나는 나의 시간을, 결정을, 자리를 또 타인에게 먼저 내줬다. 요청이 오기도 전에, 아주 습관적으로. 48시간은 커녕 4.8초도 안 걸렸다.
두 번째는 프로젝트였다.
완벽은 없다고 썼다. 완벽을 조건으로 하지 않겠다 선언했다.
그러면서 또 조금이라도 더 완성도 높은 결과를 내고 싶었다. 미리 일정을 조금 더 넉넉히 잡았으면 됐을지 모른다. 근데 나는 또 닥쳐서 시작했고, 일주일 동안 하루 네 시간을 자며 마감을 맞췄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쓴 사람이 완벽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또 시간과 건강을 고이 갈아 넣었다.
자책하지는 않으려 했다. 전과 같았으면 왜 또 이러냐고 한참 몰아붙였을 텐데. 대신 그냥 봤다.
아, 아직 여기까지구나. 선언을 했고, 몸은 아직 예전 패턴을 기억했다.
그게 v1.0이다.
완성된 버전이 아니라, 지금 이 상태에서 시작하는 버전.
깨면 기록하고, 기록하면 다시 세운다. 버전은 그렇게 올라간다.
완성본은 없다. 기준은 존재한다. 다만 고정되지 않는다.
이전까지는 준비가 끝나면 시작하겠다고 했다. 이제는 시작하면서 준비한다.
다음 글은 감정이 아니라 문서다.
다음 화
15화. Guideline v1.0 | 가이드라인 | 나다움을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