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 구조 리뉴얼 | 도망치지 않기 위한 장치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니다.
익숙한 문장이고 오랫동안 들어왔다.
누군가를 바꾸려는 시도는 오만이고,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문장은 그럴듯해 보였다.
문제를 사람의 기질이나 성격 탓으로 돌려버리면 설명은 간단해진다.
아무튼 일단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나는 분명 여러번 다른 사람이 되어왔다.
같은 상황에서도 이전과 다른 판단을 했고, 예전이면 받아들일 일을 이제는 거절하기도 했다. 변하지 않는다는 말과는 달리, 사람은 반복된 경험과 충격을 겪으며 조금씩 다른 위치로 이동한다.
나는 사람은 매 순간 고쳐 쓰이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럼 사람은 언제 변할까? 나는 깨달았을 때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결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독립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이 있다. 아무리 설득해도,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하려해도, 타인의 선택은 결국 그 사람의 것이다. 그걸 인정하지 못하면 관계는 계속 긴장 상태로 남는다. 인정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통제를 내려놓고 존중으로 넘어갈 수 있다.
나는 사람에게 오래 매달리지 않았다. 쟤는 그런가 보다, 쟤 선택은 쟤 거니까. 그렇게 금방 놨다. 그게 성숙한 태도였는지, 그냥 일찍 포기한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시간도 다르지 않았다. 시간은 내 생명이고 돈이라는 말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급하지 않은 일에 먼저 반응했고, 남의 일정에 맞추기 위해 내 시간을 뒤로 미뤘다. 일정이 겹치면 조정하기보다 잠을 줄였고, 알람이 울리면 몸부터 일으켰다. 그렇게 쌓인 하루 끝에서야 깨달았다. 나는 시간을 관리한 게 아니라 소모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느 날 밤 자정이 지나서 일을 끝내고, 다음 날 아침 또 미팅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달력을 보니 그 주에 내가 스스로 잡은 일정이 하나도 없었다. 전부 남이 요청한 것들이었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내 시간이 내 것이 아니었다는 걸 실감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감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두 번째에서 오래 걸렸다. 시간은 유한하다고 말했지만, 늘 가장 쉽게 양보했다.
당나라 군대라는 표현을 떠올렸을 때도 비슷했다.
우리는 그것을 오합지졸의 대명사처럼 사용한다.
다만 역사의 사실을 보면 실제로 당나라는 한때 강력한 중앙 통제와 체계를 갖춘 강군이었다. 조직이 붕괴되고 지휘 체계가 무너지면서 약해 보였던 것이다. 갑자기 병사의 상태가 나빠진 게 아니라, 구조가 무너졌기 때문에 결국엔 약해졌다. 병사를 탓하기 전에 지휘관이 어디 갔는지를 물어야 했다.
5화에서 나는 스스로를 당나라 군대라 불렀다.
8화에서는 핸들이 고장 난 채 과적한 트럭이라고 말했다. 그 표현들은 과장이 아니었다.
당나라 군대는 사실 강군이었고, 문제는 병사가 아니라 구조였다.
나 역시 병사(임원진 없는 실무자)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다.
나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무엇을 먼저 할지, 무엇은 하지 않을지, 어디서 멈출지를 정해주는 체계가 없었다. 지시는 사방에서 왔고 나는 전부 받아냈다. 과로는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 구조 부재의 증거였다.
위에서 나는 사람은 스스로 고쳐쓰며 산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사람은 끝내 못 고친다고 말할지 모른다.
좋다. 설령 사람을 고쳐 쓸 수 없다고 해도,
구조는 고쳐 쓸 수 있다.
나는 한동안 나를 사람으로 분석했다.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성격을 탓했고, 태도를 다잡으면 해결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무리 다그쳐도 반복되는 패턴은 사라지지 않았다.
임원진은 없고 실무자만 과로하는 회사. 지휘는 사라지고 반응만 남은 조직. 핸들은 없는데 속도는 줄지 않는 트럭.
나는 무능한 사람이 아니라, 통제되지 않은 구조였다.
하기 싫어서 미루는 회피. 불편해서 방향을 바꾸는 감정 반응.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방치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나는 나를 방치하면서도 '정리 중'이라고 합리화했다.
전환점은 뚜렷하지 않았다. 프리랜서로 일할 때, 어느 날 같은 문제를 또 해결하고 나서, 잘 처리했다는 안도 대신 이걸 왜 또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돌아보니 그 문제는 6개월 전에도, 1년 전에도 있었다. 내가 매번 해결했기 때문에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해결이 반복을 만들고 있었다.
결정하지 않는 것도 결정이었다. 방향을 설정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었다.
해결은 계속 했지만 구조는 남지 않았다. 같은 문제가 반복됐고, 나는 매번 잘 처리했고, 그래서 매번 다시 불렸다. 구조 없는 성과는 결국 반복을 낳는다.
그래서 사람을 고치는 대신, 회사를 고치기로 했다.
설명으로는 부족했다. 장치가 필요했다.
48시간 규칙을 둔다.
어떤 제안이 오더라도 바로 답하지 않는다. 반응과 판단 사이에 의도적인 간격을 둔다.
처음엔 불편할 수 있다. 바로 답하지 않으면 성의 없어 보일 것 같고, 늦게 반응하면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 그런데 48시간 뒤에 돌아보면, 그냥 수락했을 일들이 꽤 많을 것이다. 간격이 판단을 만들어줄 것이다.
거절 조건과 권한을 명확히 한다.
범위와 조건이 불분명한 일은 시작하지 않는다. 시작하고 나서 범위가 늘어나는 것보다, 시작 전에 거절하는 게 훨씬 적은 에너지를 쓴다.
Not-To-Do를 먼저 정한다.
무엇을 더 할지 고민하기 전에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한다. 할 일 목록은 늘 넘쳤지만, 하지 않을 일 목록은 한 번도 만든 적이 없었다. 처음 대략 적어보니 내가 얼마나 많은 걸 기본값으로 수락하고 있었는지 보였다.
리셋 조건도 둔다.
구조는 그대로인데 노력만 늘어난다면 멈춘다. 더 열심히 하는 게 답이 아닐 때가 있다. 그때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구조를 고치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다만 그 구조를 유지하는 태도가 더 어렵다.
규칙은 만들기 쉽고, 지키기는 어렵고,
지키지 못했을 때 다시 시작하기는 더 어렵다.
완벽을 전제로 한 규칙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음 글에서는 완벽을 기준에서 제외하는 방식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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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균열사이로 들어온 빛 | 버전 관리 | 현재 버전의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