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을 내려놓고 잡은 지휘봉

포지셔닝 전략 | 한 사람의 좌표 재설정

by 무채




용어 정의



내겐 몇 가지 연장이 있다.

디자인, 기획이라는 기술적 연장과

다른 몇 가지 도구들.


진짜 연장도 손에 쥐면

어지간히 다룰 줄은 안다.

오래 써온 사람처럼.


심지어 그게

식칼이든,

망치든,

삽이든.





잘하는 일을 그만하기로 했다.

정확히는, 잘하는 걸 잘하는 방식으로 하는 걸 그만하기로 했다.

'못 해서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더 보려고 내려놓는 것'이다.


나는 나의 감정을 몰랐고 설명하는 방법을 몰랐다.

사춘기에 했어야 할 스스로에 대한 질문도 마흔에 하고 있다.


연장을 들고 눈앞의 것은 다 고쳤어도

연장을 든 나는 전혀 몰랐다.


전과 똑같이 살아서는 내가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그걸 위해 나 스스로를 브랜딩 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지금의 나와 앞으로의 나를 위해.





지금까지 지난 편들에서

'나'라는 브랜드이자 회사에 대해서 펼쳐둔 진단은

사실 지난 나에 대한 고백이었다.


지금은 조금씩 다르게 살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잊는다. 그래서 적어두려 한다.


그리고 하나 더.

일의 형태가 바뀌었다.





지금까지 나를 설명하는 직업은 디자이너였다.

앞으로는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스스로를 사업가라고 부르지 못한다.

사업이라 부를 만한 무엇이 분명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여러 갈래로 손을 대고 있다.

디자인, 요식업, 브랜드, 글, 그림, 누군가의 사업을 함께 설계하는 일.

이 중 무엇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중에 마지막까지 남기고 싶은 일들이 있다.

지금은 그것을 시험해 보는 시간이다.


지금의 나는 사업가라기보다 아직 지망생에 가깝다.

누군가 묻는다면 “내 일을 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혹은 “작게 개인사업을 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하는 게 너무 많아, 백수라고 말하긴 싫고,

시스템이 안 잡혀, 사업가라고 말하긴 이르다.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


내가 하려는 건

연장을 하나 더 만드는 일이 아니라

지휘봉을 드는 일이다.


(지휘봉도, 어찌 보면 연장이지.)





이제

나의 영역은 사업이고,

본질은 계속 설계다.


나는 여전히 설계자다.


다만, 손을 움직이는 설계자가 아니라

방향을 정하는 설계자로 서려한다.


어떤 자리에서는 전체를 보고,

어떤 자리에서는 조율하고,

어떤 자리에서는 방향을 정한다.


실무는 손으로 만든다.

설계는 방향을 정한다.


나는 손으로 오래 만들어왔다.

이제는 방향을 정하겠다.


연주는 악보를 본다.

지휘는 전체를 듣는다.


나는 연장을 들고 오래 살아왔다.

이제는 지휘봉을 들고 조화를 보겠다.


준비 중인 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좋은 소리를 낼 때까지.





나는 ‘극한의 효율충’이다.

대화 중에 종종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다.


그동안의 선택은 거의 모두

효율과 편의를 기준으로 움직였다.


편하고 빠른 길,

적은 비용,

낭비 없는 구조.

그 기준으로 살아남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말을 들었다.


“편하게 살려면 혼자 사는 게 낫고,

행복하게 살려면 결혼해야 한다.”


왜 오래 남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안다.

행복이라는 감정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편함’이 아니라

‘행복’을 기준으로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는 효율적이다.

둘은 느리다.


하지만

느림 속에 지속이 있다.


이제는 효율이 아니라

다른 기준을 두기로 했다.


무엇을 우선에 둘 지에 대한 기준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적겠다.





나는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좌표부터 다시 찍는다.


살아남을 것을 기다리는 대신,

남기고 싶은 것을 기준으로 정한다.


연장은 익숙하다.

지휘봉도 결국 연장이라면,

그것 역시 배워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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