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어쩌면 나는 꽤 오래, 이상한 나라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잘해야 한다"는 시계 토끼를 따라 도착한
시간이 멈춰버린 어느 날의 시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나는 그저 뛰고 있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우쭐했고,
또 누군가의 시선 하나에 쪼그라들었다.
가끔은 너무 커졌고, 가끔은 너무 작아졌다.
무례한 매드 해터들의 티파티에 앉아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이상한 나라에선 늘 누군가의 기준이 나의 나침반이었다.
신비로운 보라색 털의 고양이는 나뭇가지 끝에 앉아 있었다.
익숙한 듯 낯선, 리노를 꼭 닮은 고양이.
나는 물었다.
- 말해줄래, 제발, 난 어느 쪽으로 가야 되지?
-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렸지.
- 어디든 상관없어.
미소를 띤 채 천천히 사라지며 이렇게 말했다.
- 이제 리노에게 돌아가야지.
이걸 마시면 돼.
“Drink me”가 쓰인 유리병을 건네어 준 쳇셔캣은 그의 미소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것을 단숨에 들이켰다.
체리파이, 커스터드, 파인애플, 칠면조구이, 토피사탕과 버터를 바른 토스트 같은 맛.
그 순간, 이상한 나라의 하늘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땅이 흔들리고 잔잔하던 호수가 요동쳤다.
마침내 하늘이 열리고 빛이 쏟아졌다.
그렇게 쿵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눈을 떴다.
무릎 위엔 루나가 골골 소리를 내며 낮잠을 자고 있었고
리노는 창밖을 바라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식탁 위엔 갓 구운 체리파이 그리고 노란 종이 위엔 남편의 편지.
마침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동생.
'언제나 완벽해야 한다’는 저주를 풀고
이상한 나라의 마법에서 깨어난 나는,
이제 나의 작은 세상을 만든다.
비워내고, 느긋하게 채워가는
매일매일의 낯설고 놀라운 ‘현실’.
따뜻한 햇살과 체리파이, 리노와 루나,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이곳이 나의 원더랜드.
그리고 나는 여기에 오래오래 머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