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실업자가 되었다.
부정-분노-타협-우울을 지나 예고 없이 찾아온 변화를 수용했다.
5월, 새 가족이 생겼다.
우리의 작은 우주에 비로소 초승달이 떴다.
6월, 루나의 작은 기적을 함께 했다.
나의 세 번째 고양이, 하얀 수염의 철학자.
7월, 교정기와 함께 재취업을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 모든 ‘증명’이 버거웠다. 마음이 쉽게 지쳤다.
8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비우기 시작했다. 집 안의 물건들을, 내 안의 불안을, 묵혀 둔 후회를.
나의 일기에 살을 더해 에세이를 쓰게 되었다.
9월은 다시 일을 시작하며 정신없이 지나갔다.
내가 선택한 일이었지만, 다시 뛰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10월엔 내 글을 누군가에게 처음 공유했다.
마음 깊이만 머물던 말들을, 조심스레 세상에 내어놓았다.
11월, 하루하루가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다.
비우고 다시 채우는 평범한 일상이 이어졌고, 그래서 매일이 아쉬웠다.
그리고 12월, 나는 지금 이곳에 있다.
오래 걸었고, 많이 멈췄다.
덜어내고, 다시 채우며, 나는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남들과 비교를 멈추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몸으로 익히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더는 매일이 다급하지 않다.
때론 불완전하게 흔들리고, 느리게 내 속도로 흘러가는 나의 삶을 사랑한다.
그래, 이만하면 됐다.
그리고 30대의 끝자락에서야 열어볼 수 있었던 10년을 묵혀둔 이야기.
건축을 그만두고 방황하던 시기 작은 공예 브랜드를 만들었다.
한참 완벽주의에 빠져있을 때라 질릴 때까지 계획을 세우고 리서치를 했지만
왠지 이름만은 별 고민 없이 쉽게 정했다.
Cindy in wonderland
열정은 가득했지만 뚜렷한 목표 없이 이리저리 표류하던 나의 원더랜드는
어느 날 안갯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 미완의 챕터를 닫지 못해 왠지 가슴 한편에 아프게 남아있던 이름.
그리고 그 이름은 끝끝내 실패와 좌절과 실수로 얼룩진 20대의 나 자체가 되었다.
그리고 10년.
그때 썼던 공예재료들을 창고에서 다시 꺼내는데 무려 10년이 걸렸다.
그 상자를 열면 가장 못났던 20대의 나를 다시 마주할까 두렵고 아팠다.
인어공주의 마음으로 모으고 또 모은 한때는 반짝이던 공예재료들.
하지만 어떤 것은 녹이 슬고, 어떤 것은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고
또 어떤 것은 허무하게도 그저 더 이상 예쁘지 않았다.
차라리 그때 나의 챕터를 잘 닫고, 인사하고 보내줬다면
누군가가 그 물건들을 다시 반짝이게 만들어줬을 텐데.
이제는 그저 잡동사니가 된 물건들, 그리고 내 20대의 표상을 마주하기가 미안하고 서글펐다.
버려지는 물건에 마음이 없다는 것은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남은 물건을 추리고 추려, 팔거나 기부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재료들은 집 주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기부했다.
토이스토리 3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 건 왜였을까.
마지막 상자를 떠나보내던 12월의 어느 날,
나는 비로소 그때의 슬픈 이상한 나라와 완전히 작별했다.
원더랜드 섬은 그렇게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날 이후 Cindy in wonderland는 다른 의미가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이름이 아프지 않다.
따뜻한 햇살과 체리파이, 리노와 루나,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이곳이
나의 새로운 원더랜드.
그리고 나는 지금,
남편과 다빈치의 고향, 피렌체 광장의 한 카페에 마주 앉아 있다.
고양이는 신이 빚어낸 최고의 걸작품이다.
라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도시 구석구석 그의 숨결을 느껴보려 한다.
이곳의 골목에 사는 멋진 고양이 철학자들과 조향사들도 만나고 싶다.
차가운 공기에 커피는 조금 식었고, 창밖은 여전히 아름답다.
다음 이야기는, 리노루나가 잠시 없는 이 거리의 조용한 골목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지금이 바로 내 르네상스의 첫 장이다.
고마웠어. 내 20대의 원더랜드.
너 때문에 난 가끔 슬퍼졌지만
그 기억으로 앞으로 오래도록 행복할 거야.
So long, part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