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굽는 시간의 레시피

by Cindy in Wonderland

체리파이 레시피로 보는, 마음을 굽는 방법.

1. 차갑게 굳어 있던 마음을 꺼내, 그 속에 남아있던 자격지심, 완벽주의, 미련 같은 것을 섞는다.

소금 한 꼬집만큼의 자조, 설탕 한 스푼만큼의 유머도 함께 넣는다.

부드럽게, 그러나 너무 오래 치대지 말 것. 너무 집착하면 부서지기 쉬우니까.

2. 마음속 체리알들을 하나하나 살핀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엔 상처가 남은 것들이 있다.

조심스레 꼭지를 떼고, 아픈 부분은 덜어낸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긴다.

3. 그 마음에 바닐라의 부드러움을, 레몬즙같은 약간의 거리감,

전분처럼 흐트러지지 않을 중심을 더한다.

4. 얇게 민 마음을 틀 위에 조심스레 펼친다.

오랜 시간 나를 무겁게 눌렀던 것들을 이제는 다 담을 필요는 없다.

가장자리를 정리하고, 조심스레 덮는다.

5. 계란물처럼 유연한 마음을 바르고, 200도의 햇살 같은 시간 속에 사랑하는 이들과 굽는다.

오븐 속을 지나치게 들여다보지 말 것. 생각보다 더딘 변화에 실망할 수 있으니.


굽고 나면, 달큼하고 따뜻한 향이 퍼질 것이다.


나는 마음속 체리들을 어느 정도 솎은 듯했다.

그리고 끝내 솎아내지 못한 아주 시고 못난 체리 하나에 대한 이야기.


엄마의 카톡 상태 메시지 "큰 꿈이 큰 사람을 만든단다."

이 문장은 나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삶이 깜깜한 터널처럼 느껴지던 시기, 카톡을 열 때마다 마음이 툭, 내려앉았다.

큰 꿈이 없는 나는 더 이상 자랑스럽지 않은 딸, 실패자가 된 것 같았다.


남편이 커리어 포럼에서 패널로 만난 한 스피커는

전문의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제빵사가 되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그녀의 가장 큰 지지자가 바로 어머니였다는 사실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부러움과 슬픔에 동시에 휩싸였다.


모든 부모들의 꿈, '자식이 잘 되는 것.'

우리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는 얼핏 사랑의 표현 같지만,

그저 부모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사랑으로 포장한 은밀한 폭력이다.


정신분석학자 후안 만사노(Juan Manzano)는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첫 번째 조건을 이렇게 정의한다.

부모는 자녀로서 자신이 가졌었거나 아니면 같기를 원했던 특성, 그리고 더는 없는 특성 또는 그들이 느끼기에 자신이 부족했다고 느끼는 특성을 투영한다. 자녀에게 투영하는 아버지 또는 어머니는 그들의 아들 또는 딸이 자신들이 갈망하고 원했던 무언가가 부족하기를 원치 않는다. 부모는 자녀들이 그들의 이상적인 자아의 완벽한 묘사로 바라본다.


‘부모’라는 단어만 지운다면, 마치 심리 스릴러의 대사처럼 들리지 않는가.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자기 연민에 갇혀 있었다.

사랑받기 위해 계속해서 ‘잘 되어야만 하는’ 아이로 살아왔다.


하지만 올해, 많은 것을 비워내며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스물일곱, 대학 졸업 직후 선을 보고 결혼하고 곧장 엄마가 되어야 했던 어린 엄마.

그리고 같은 나이, 현실에서 도망치듯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나.


엄마는 그때, 엄마가 되는 법을 처음 배우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를 바라보며 자신의 젊은 날을 투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도 많고 잘하던 것도 많았던 사람.

그 모든 달고 시고, 때로는 쓰디쓴 꿈을 먹고 자라서

나는 꽃을 피웠고, 바람에 흔들리다 꽃잎을 떨궜다.


엄마가 변하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치아 교정의 아픔은 이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했다.

변화의 고통은 늦은 나이에 시작할수록 더 하다.

오래 방치한 틀어짐을 마주하고, 바르게 되돌리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아프고 불편하다.

이제 나는 엄마가 변할 거라는 기대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부디 부탁한다.

'자녀의 성공'은 '나의 행복'이 아니다.

그대도 부모이기 이전에 엄격한 하나의 인격체이다.

그러므로 '나'의 행복을 찾는 일에 죄책감을 갖지 말고 그대 역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해지는 사람임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왜 큰 꿈이 없어도, 그냥 내 속도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 주지 않았어?"

그렇게 원망한 날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서툴렀을 것이다.

그리고 리노루나를 키우는 지금, 엄마의 마음을 1% 정도는 알 것 같다.

나도 가끔은 리노가 호랑이가 되는 큰 꿈을 꾸길 바라니까.


호랑이가 되는 큰 꿈을 꾸는 리노


나는 드디어 원망대신 상처받은 내 안의 어린아이를 어른으로써 껴안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이제라도, 엄마는 엄마를 위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나는 비로소 당신이 만들어 준 땅 위에서,

엄마의 또 다른 자아가 아 오롯한 '나'를 꽃피워 홀씨로 훨훨 날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바람을 따라, 내가 바라는 하늘을 향해 기꺼이 날아갈 것이다.

설령 그곳이, 당신이 꿈꾸던 하늘이 아니더라도.


덜 익은 체리처럼 시큼했던 기억도,

시간이라는 마법 속에서는 다정한 맛으로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