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는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단지 다른 형태로 전환될 뿐이다.
채움도 마찬가지다.
기분이 울적한 날 괜히 가벼워지는 지갑과 쌓아는 박스.
혹은 누군가와 참 많이 웃은 날, 저절로 가벼워지는 발걸음과 텅 빈 쇼핑백.
마음에서 빠져나간 무언가는 결국 물건으로, 칼로리로 또는 공허로 쌓여간다.
채움의 총량은 보존된다.
백화점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맡았던 시절,
샤넬, 에르메스, 디즈니를 비롯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브랜드들과 협업했고,
크리스마스 시즌엔 선물과 파티 초대가 끊이지 않았다.
잠시, 나는 뭐라도 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때는 물건 박스의 수를 행복지수로 착각했다.
사는 행위가 주는 도파민, 포장을 뜯을 때의 짧은 엔도르핀.
그러나 새 물건이 제자리를 찾아간 순간, 감정도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화려한 쇼윈도, 천문학적인 마케팅 예산과 인테리어 비용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이 일이, 과연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내게 다시 기회를 주었고, 자본주의 찬란함과 허무함을 동시에 경험하게 해 준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명품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은 결코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실직 후 처음 몇 주는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풀었다.
리노루나의 장난감, 버터벨, 피크닉 식기 세트 등등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많이도 샀다.
‘사는 행위’가 주는 짧고 확실한 위안에 매번 쉽게 무너졌다.
다시 말하지만, 에너지는 형태를 바꿀 뿐, 사라지지 않는다.
외로움은 물건으로, 지루함은 클릭 몇 번으로, 불안은 식탁 위 초콜릿 상자로 변형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스크롤을 내리다 마주친 달항아리 그림.
풍요와 복을 불러온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평소 풍수지리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였지만 어느새 나의 마음은 그 그림이 불러올지도 모를 ‘복’에 기대고 있었다. 결제를 누르기 직전 문득, '나 뭐 하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할 때의 성취감이 채워주던 공허를, 쇼핑으로 채우 나.
가깝지만 어쩐지 먼, 지난 시간의 내가 거기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울적한 날 쇼핑 대신 루나와 산책을 나선다.
햇살과 바람과 커피, 그리고 나를 올려다보는 호기심 가득한 루나의 눈망울.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결국 달항아리 그림을 구입하지 않았다.
대신, 내 마음에 풍요를 남긴 그 순간을 기억하려 챗지피티에게 부탁해 그림을 그렸다.
작가의 작품은 아니지만, 이 그림은 오래도록 나에게 마음의 풍요를 가져다줄 것이다.
더 많이 사는 것이 아니라, 더 적게 흔들리는 삶.
채움이 아닌 ‘충분함’의 감각.
나는 조금씩, 그것을 배우는 중이다.
건축은 비우는 일이다.
구조물을 짓는 동시에,
사람이 머무를 ‘틈’을 남기는 일.
루나와 함께 걷는 이 시간도,
그 여백의 일부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건축을 사랑하고, 미워하고,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