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은 말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나는 그대에게 묻고 싶다.
건축을 좋아하세요?
솔리드와 보이드 혹은 채움과 비움, 그리고 그 사이 공간들이 만드는 연속성.
하늘과 땅사이를 빼곡히 채운 끝이 없는 구조물들이 좋아서 건축설계를 공부했다.
대학 시절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졸업 후 나를 기다리는 미지의 세계.
건축가라는 이름의 어른이 된 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쳇바퀴처럼 흘러가는 설계 사무실 속에
내가 동경했던 가우디나 르 꼬르뷔지에는 없었다.
검은 화면 위의 빼곡한 점과 선과 숫자.
그것이 내가 경험한 건축이었다.
하루하루 무너졌다.
내가 참 좋아하던 것이 더 이상은 즐겁지 않게 된 현실이 서글펐다.
무엇보다 앞으로 평생 이 일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그토록 간절했던 꿈에서 스스로 빠져나왔다.
나는 실패했다.
나의 오랜 꿈이, 그동안의 노력이 산산조각 났다.
그 후 나는, 깊고 어두운 동굴에 들어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고 나를 이끌어 줄 어른도 없었다.
실패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던 나는
나만의 돛단배 위에서 꼬박 1년을 표류했다.
그곳은 언제나 밤이었다.
그리고 그저 그렇게 흘러갔다.
엄마는 나의 실패를 부끄러워했다.
난 더 이상 자랑스러운 딸이 아니었다.
엄마의 카톡 상태 메시지 "큰 꿈이 큰 사람을 만든단다."
이 문장을 보는 것이 괴로워 서로 연락을 피하고 매일 더 멀어졌다.
큰 꿈이 없는 나는, 그래서 매일 더 작아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었다.
작은 이모, 여동생 두 사람이 곁에 있었다.
재촉하지 않고, 그저 내가 다시 걸어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마침내, 그 두 사람의 힘으로 나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건축 전공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검색했다.
무슨 용기 었을까.
백화점 건설관리팀의 디자인 PM 포지션에 지원했다.
일 년의 공백기를 채우기 위해 며칠 밤을 새워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면접 날, 회의실 문을 여는 순간. 그 뒤의 기억은 흐릿하다.
나는 그렇게 합격했고, 건축가의 꿈은 다른 형태로 내 삶에 남았다.
이제는 나의 좋은 친구가 된 상사의 말을 빌리자면,
간절함이 보여서 뽑고 싶었다고 한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간절함은 일 년 공백을 메웠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나는 이제 고양이의 방식으로 건축을 좋아한다.
흡사 액체가 되어 어떤 작은 박스에도 완벽히 들어가는 리노와
어떤 공간이던 제약 없이 내 것으로 만들고야 마는 루나처럼,
구조물 자체의 한계보다는 공간의 가능성에 집중한다.
비움은 그저 텅 빈 보이드가 아니다.
그곳은 바람이 통하고, 햇살이 비추며,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머물고 온기가 스며드는 자리다.
스물세 살의 내가 리노와 루나를 만나,
점과 선 뒤에 그 어떤 것을 발견했다면,
나는 건축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결국 도면 위에서 나만의 가우디와 조우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