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T & P, 나는 F & J

피곤한 노릇이다.

by 별빛햇살

자칫 뭇매를 맞을 수도 있는 MBTI를 꺼내보겠다. MBTI를 맹신하는 것도 아니고, 편견을 심어줄 마음도 없다. 하지만 이 몇 글자가 남편과 나의 차이를 가장 간단명료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편리하다.


이 글에는 MBTI와 무관한 개인 성격도 포함되어 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나에게 좀 더 유리하게 쓰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걸 떠나,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고, '다르지만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남편 T, 아내 F.


T는 논리와 이성을, F는 관계와 공감을 중요시 여긴다고 한다. T는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하기도 하고, F는 타인의 감정을 고려해 완곡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T인 남편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다. 가끔은 내가 보기에 비논리를 논리라고 우기는 것도 같지만, 그는 대체로 이성적이다. 일단 절대 F는 아니므로 T임을 인정한다.


다소 철없지만, 연애 중에 내가 물어본 적이 있다.

"만약 결혼 후에 내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 다른 여자 만날 거야?"

"아마 그렇겠지."


한 박자도 쉬지 않고 말한다. 결혼 수십 년 차도 아니고, 연애 중에 말이다. 빈말이라도 보통은 못 그럴 것 같다고 하지 않나? 하다못해 조금 생각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나? 이건 문화차이인가? 여러 생각이 들었다.


"너무 쉽게 대답하는 거 아냐?"

"다른 사람 만날 수도 있지, 그럼 평생 혼자 살겠다고 약속해?"


논리적으로 맞더라도, 진실을 참 친절하게 설명한다. 나는 서운하기보단 그의 사고구조가 궁금해졌다. 물론 지금 내 생각은 이렇다. '나도 마음 편히 다른 남자 만나면 되겠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우리는 쿨하다.


남편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상태에 큰 관심이 없고, 감정의 변화도 눈치를 잘 못 채는 것 같다. 본인도 감정에 기복이 별로 없다. 눈물을 본 적도 없다. 시도 때도 없이 감정이입하는 나와는 확실히 다르다. 내가 괜히 남편을 로봇이라고 놀리는 것이 아니다. 간혹 학습형 F 성향을 보이기는 한다.


어느 날 남편이 회사에서 인사평가를 듣고 와서 말했다.

"나보고 팀원들의 감정을 잘 헤아린다고 해서, 나 좀 놀랐어. 난 그런 능력 없는데."

스스로 그런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더 우스웠다. 심지어 본인조차 논리적으로 파악하다니.


"당신은 팀원들에게 항상 친절하고, 겸손하고, 존중하잖아. 그런 태도도 남을 배려하는 능력이지."

듣고 보니 그런가 싶어 갸우뚱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칭찬을 들어서 기분이 좋은 것 같다. 단순하다.


T라고 해서 꼭 직설적이거나 무례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예의와 존중은 '태도'의 영역일 수 있다. 대화, 토론, 비평, 반박을 논리적이고 정중하게 하는 '인성'과 '기술'을 가진 T들은 뛰어나고 매력적이다.


AI를 보라. 얼마나 예의 바른가. 일도 잘한다. 간혹 남의 심정을 못 읽고, 분위기 파악을 못 하지만 말이다. 장점을 잘 살펴보고 패턴을 잘 숙지하면, 그들은 꽤 괜찮은 인재일 수 있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남편이 내 마음을 알아채지 못해도 크게 섭섭하지 않다.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그런 경우 나는 콕콕 집어서 바로 알려준다. 섭섭한 마음을 오래 묵히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다. 잘못이 있다면 사과하고 오해가 있다면 푼다. 우리는 대화한다. 그게 서로 편하다.




남편 P, 아내 J.


P는 유연하고 즉흥적인 성향이 있고, J는 꼼꼼하고 계획적인 성향이 있다.

우리 가족은 남편과 아이들 모두 P다. 시댁식구들도 거의 P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이것은 인해전술인가?'


나는 그들의 느긋함(또는 미루기)과 무질서(또는 난장판)의 쓰나미에 맞서는 운명에 처해져 있다. 꿋꿋이 버텨보려 애쓰지만 결국엔 파도에 휩쓸려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처참한 신세가 된다. 나는 결국 포기한다. 좋은 말로 '내려놓는다'. 길게 쓰지는 않겠다. 대하소설이 나올 수도 있다. 물론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


사실 나는 P에 대한 편견을 덜어줄 생각이다. P에게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P는 계획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계획이 틀어졌을 때 대처하는 능력이 높은 사람이다."


이미 알려진 말이다. 남편과 아이들은 내가 삐쭉거릴 징조가 보이면 이 말을 상기시킨다. 사실 경험상 이 말에 적극 동의한다. 그들은 계획이 바뀌거나 일이 틀어져도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는다. 그저 다음 단계를 모색한다. 단, 그들에겐 애초에 계획 자체가 없었을 수는 있다.


이런 느긋한 성향은 분명 큰 장점이다. 인생에는 항상 변수가 있고, 그들은 변수를 잘 다룬다. J인 나는 생각했던 일이 끝까지 그대로 풀려야 안심한다. 아주 작은 틀어짐도 불편하다. 하지만 이것은 마음건강에 해롭다.


그들은 마인드가 다르다. 부드럽고 유연하다. 그들은 좀 더 태평하고, 융통성이 있기에 불평불만이 별로 없다. 그들은 나에게 아무런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이건 최고의 혜택이다. P와 살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스트레스가 덜어지기도 한다. '병 주고 약 주고'를 체험할 수 있다.




부부가 잘 맞는 경우는 서로가 비슷해 호흡이 척척 맞거나, 서로가 달라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남편과 나는 다르다. 하지만 각자를 인정하고, 장점을 알아주고, 서로를 보완해 가며 살고 있다.


여전히 불편한 점은 있다. 나만 불편한 것이 아니라 남편도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방의 성향 쪽으로 몇 발짝씩 다가가 가운데 어디쯤에서 만났다. 상대방을 바꾸려 애썼다기보다는, 서로를 위해 각자가 조금씩 노력해 주었다.


결혼생활에서는 사랑만큼이나 '존중''배려'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상대가 원하는 바를 '배려'해주는 것은 평생동안 해나가야 할 숙제인 것 같다. 우리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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