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다다르는 방식
남편은 캐나다 BC주 북부의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 내내 천지산천을 누볐고, 매일매일 뛰어놀기 바빴다. 중고등학생 때에도 대자연을 벗하였고, 학업과 가끔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평범하고 바르게 자랐다.
캐나다에서는 청소년들도 여름방학 또는 방과 후에 용돈을 벌거나 경험을 쌓고자 아르바이트를 하곤 한다. 집안의 경제사정 때문이 아니라 본인이 해보고 싶어서 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 역시 어려서부터 많은 직업을 체험했다.
첫 번째 일은 신문배달이었다. 중학생이었던 그는 형과 함께 신문을 돌리며 용돈을 벌었다. 고등학생 때에는 주말에 어린이 축구경기 심판을 했고, 여름방학 동안 화원에서 나무 식재 작업을 돕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일 년간 갭이어(Gap Year)를 가졌다. 갭(Gap)은 '틈' 또는 '공백'을 뜻한다. 그래서 갭이어는 학업 중 한 해 또는 일정 기간 공백을 가지는 것을 일컫는다. 캐나다에서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사이에 갭이어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 그들은 여행을 가거나 일을 하거나 진로를 탐색한다. 그 이후에 대학교를 지원하더라도 차별이나 불이익은 없다.
남편은 갭이어 동안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경비를 모으기 위해 우선 돈을 벌었다. 중국음식 뷔페식당에서 설거지일을 시작했다. 그는 해봤던 직업을 통틀어 이 설거지일이 가장 힘들고 괴로웠다고 말한다. 그 후, 임업회사의 보조직원으로 산림을 누비며 지도 제작, 벌목 부산물 소각, 약품 도포 등을 도왔다. 그는 이 일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하루 종일 숲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과 육체노동에서 오는 쾌감이 만족스러웠고, 무엇보다 돈을 두둑하게 챙겨주어 여행경비를 마련하는데 큰 보탬이 되었다고 한다.
갭이어 동안 모은 경비로 남미를 여행한 후, 그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생 때에는 주택외벽 페인트칠, 렌터카회사 차량 운전과 세차, 대학 연구실 리서치 업무 등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교 졸업 후, 그는 나를 따라 한국에 왔다. 잠시 영어과외를 하다가 곧 본인의 컴퓨터 전공을 살려 한국 IT회사에 취직했다. 그는 캐나다에서도 여전히 IT일을 하고 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생각할지도 모른다.
"공부에 집중 안 하고 무슨 일을 저렇게 많이 했지?"
"이것저것 한 걸 보면 공부에는 별로 소질이 없었나?"
반전은 남편이 공부를 잘했다는 것이다. 높은 학업성취가 요구되는 IB (International Baccalaureate) 과정을 마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본인의 순수한 지적 호기심으로 그 과정을 선택했다. 좋은 대학교에도 진학했고, 대학생 때 굵직한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남편은 본인의 적성 또한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께서 사주신 프로그래밍 책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 흥미가 자라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여전히 열정을 가지고 일한다. 여가시간에도 IT 전문서적과 IT 동영상을 볼 정도로 좋아한다.
그는 진로에 대한 계획이 꽤 분명했지만, 다양한 경험을 했고, 대학교에도 1년 늦게 들어가는 결정을 했다.
나는 자연스레 그의 삶과 나의 삶을 견주어 보게 된다. 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처럼 획일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공부나 일 외에는 모두 시간낭비라 여겨졌고, 한 눈을 팔면 곧장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다. 많은 한국인들은 세상을 경험하며 사고의 폭을 넓힐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자랐다.
이런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선명하게 다가왔다. 나는 항상 아쉬웠고, 남편이 항상 부러웠다. 남편은 일에 만족했고, 나는 일에 만족하지 못했다. 나는 자주 갈팡질팡했다.
누군가는 그에게 이력서에도 쓰지 못할 잡다한 일이나 여행에 왜 시간을 허비했느냐고 물을 지도 모른다. 그럴 시간에 더 열심히 공부해서 더 좋은 대학교에 가고, 더 일찍 취직해서 더 빨리 성공하는 것이 낫지 않았느냐고 물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했던 일들이 정말 쓸모없는 것이었을까?
그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독립심, 책임감, 끈기, 참을성, 무엇보다 이 세상에 못할 일은 없다는 자신감을 배웠다고 한다. 그 경험들은 그를 성장시켰다. 그 시간들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잠깐의 틈, 잠깐의 벗어남은 인생에 흠이 되지 않았다. 밑천이 되었다. 그 밑천은 그를 키웠다.
남편과 나의 상이한 인생경로는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그런 사유를 통해 깨달음과 방향성을 얻곤 한다. 서로의 삶을 되새기고 장단점을 짚어보며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세상을 열어줄지 생각해 본다.
나는 올바른 깨달음을 나침반 삼아 아이들을 조금 더 나은 방향, 조금 더 행복한 방향으로 안내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