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사랑해도 너무 사랑한다.

캠핑인가 생존훈련인가

by 별빛햇살

나는 남편과 시댁식구들을 '자연인'이라 부른다. 그들은 자연을 극도로 사랑한다. 마치 아기가 엄마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듯이, 그들은 대자연의 품에서 가장 평온하고 아늑해 보인다.


대자연을 만끽하는 데에 캠핑만 한 것은 없다. 그렇기에 그들의 캠핑사랑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내 생애 첫 캐나다 캠핑은 얼떨결에 극한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약 25년 전, 12월의 어느 날, 영하 20도, 록키산맥에 위치한 롭슨산(Mt. Robson)이었다.


일행은 남자 둘(남편과 남편의 사촌), 여자 셋(나를 포함한 한국친구들). 남편 외에 4명은 이미 친한 친구였고, 남편은 친구들 무리 속에서 한두 번 만난 적이 있었던 때였다.


캠핑 제안에 한국 여자들은 재밌겠다며 단번에 승낙했다. BC주 북서쪽 도시에서 출발해 동쪽으로 다섯 시간가량 이동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천지가 눈이었다.


롭슨 산의 거대한 형체가 드러나자 입이 쩍 벌어졌다. 달빛이 세상을 밝히던 그곳에서 우리는 멈추었고, 도로 옆의 샛길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하늘, 별, 숲, 눈, 그리고 우리들 뿐이었다.


남편이 모닥불을 피웠다. 물을 안 가져온 걸 깨달았다. 눈을 퍼서 끓였다. 화장실도 없었다. 대자연을 이용했다. 저녁을 먹고, 불멍, 별멍을 하다가 잠잘 준비를 했다.


텐트 하나, 차량 하나. 여자들에게 잠자리 선택권이 주어졌다. 남자들은 텐트가 더 편할 거라며 양보했다. 하지만 우리 눈엔 얇은 텐트가 더 추워 보였다. 여자 셋은 차량 뒷좌석 등받이를 접어 바닥을 평평하게 만든 후 이불을 깔고 덮고 누웠다. 하얀 입김이 나왔다. 추위에 밤새도록 히터를 켰다 껐다 반복했다. 자는 둥 마는 둥 어서 날이 새기만을 바랐다. 이게 캐나다인의 방식이라면 이것마저도 겪어보리라 생각했다.


아침이 밝았다. 남자들은 텐트에서 따뜻하게 잤다고 말했다. 텐트는 과학이었다. 차는 바람 숭숭 들어오는 곳이었다. 캠핑해 본 사람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모닥불을 피우고, 또 눈을 퍼서 물을 끓였다. 계란이 꽁꽁 얼어있었다. 따뜻한 물에 녹이니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침을 먹고, 돌아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순진하게도 오랫동안 캐나다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내가 아는 캐나다 사람들 과반수 이상이 캠핑을 싫어했다.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세뇌당한 기분이었다.


나는 초반에 시댁식구들이 보편적인 캐나다인이라고 착각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들은 캐나다 사람들 중에서도 꽤 독특한 편에 속했다. 그들은 캠핑도 야생의 형태를 선호했다. 물론 텐트, 냄비, 그릇, 성냥개비 정도는 있다. 음식도 가지고 간다. 하지만 생존에 가까워질수록 자부심을 느꼈다. 호수물이 아무리 차가워도 꼭 들어가 봐야 하고, 바위산이 아무리 가팔라도 꼭 올라가 봐야 한다. 길이 만들어져 있어도 꼭 길이 없는 수풀을 한번 헤집고 들어갔다가 나와야 한다. 이제 나는 뒷짐 지고 생각한다. '또 시작이구만.'


캠핑을 자주 한다고 말하면 한국 사람들은 꼭 묻는다.


"곰 봤어?"

"곰 안 나와?"


곰 봤다. 곰 나온다. 많이 봤다. 다행히 차 안에 있을 때만 봤다. 주로 도로변이나 들판에 있었다.


한 번은 우리가 캠핑장을 가는 중에 길이 너무 험해지고 날이 어두워졌다. 그만 멈추고 샛길로 들어가 텐트를 쳐야 하나 상의하던 중이었다. 차 앞으로 아기곰 한 마리 후다닥, 엄마곰 한 마리 후다닥 지나갔다.


"음. 여기는 안 되겠네." 원래 계획대로 쭉 운전을 했다.


엄마곰과 아기곰이 같이 있을 때 가장 위험하다. 모성본능 때문에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의 경험담도 많다. 친구와 함께 첩첩산중 깊숙한 어딘가에서 등산을 하실 때였다. 어느 순간 시야가 트이면서 강이 펼쳐졌는데 멀리서 십여 마리의 곰들이 상류로 회귀하는 연어를 낚아채 먹는 모습을 보셨다고 한다. 특히 엄마곰이 연어를 잡아 아기곰에게 먹이는 모습은 황홀할 정도로 경이로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잠시 조용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물러나셨다고 한다.


남편은 어린 시절 캠핑 중 아침에 일어나 보니 곰 이빨자국과 함께 두꺼운 박스가 찌그러져 있었던 적도 있고, 등산을 하는 중에 곰을 만나서 도망쳤던 적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옆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걸 보니 생존에는 성공한 듯하다.


도심지 근처에서는 곰을 볼 일이 거의 없다. 자연을 끼고 있는 도시에는 가끔 곰이 나타나 뉴스에 나오기도 하고, 한적한 마을이나 시골에는 곰이 집마당에도 종종 드나들곤 한다. 하지만 곰은 사람이 있는 곳에는 잘 오지 않는다. 캠핑장 안에서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우리가 곰을 여러 번 본 이유는 도심을 훨씬 벗어난 곳을 주로 다니기 때문이다.


곰은 위험한 동물이기에 캠핑이나 등산을 할 때 안전수칙을 꼭 지켜야 한다. 음식물과 쓰레기 등 냄새나는 것은 모두 밀폐해서 차에 넣는다. 등산을 할 때는 소리를 내면서 다닌다. 소리가 나면 보통 곰은 스스로 피한다. 곰을 마주치면 서서히 물러나야 한다. 호신용 곰 스프레이를 들고 다니기도 한다. 이 외에 자세한 사항은 AI가 친절하게 설명해 줄 것이므로 생략하겠다.


자연을 크게 접하지 않고 살아왔던 나에게 캠핑이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캠핑은 엄청난 노동력과 불편함을 동반한다. 그래도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나도 이제 자연을 꽤 즐기는 편이다. 차가운 물에도 풍덩풍덩 들어간다. 극과 극인 남편과 나 사이에서 여러 절충안들도 마련했다.


울창한 숲과 눈 덮인 산, 투명한 호수와 폭신한 이끼, 청정한 공기와 아득한 세월의 원시림, 따뜻한 모닥불과 쏟아지는 별빛. 그 속에서 겹겹이 쌓이는 추억과 행복한 표정의 가족들은 피로를 사르르 녹여버리곤 한다.


가끔은 생각한다. 대자연이 남편을 키운 것 같다고. 복작대는 사회 속에서 남들의 잣대에 맞춰 날카롭게 살아온 우리와 달리, 그는 광활한 대자연 속에 들어가 속세를 자주 비워내며 살아왔기에 조금 더 맑고 넓고 잔잔한 마음을 지니고 사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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