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에 날개를 달아 준 사람

내 안의 빛을 깨우다.

by 별빛햇살

어릴 적 나는 우울했다. 10살에 갑작스레 아버지를 여읜 후, 혼란과 슬픔을 속으로 삭였다. 꿈도 희망도 없이 청소년기를 허비하며,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이라 여겼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아빠 없는 불쌍한 아이로 바라봤다. 나에게 관심이나 기대를 갖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인생이 어서 지나가버리기를 바랐다. 가족들은 나의 상태를 알았을 수도, 몰랐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었든 제대로 된 도움이나 치료는 없었다. 그 시절엔 아무도 마음건강을 살피지 않았다. 오히려 수치스러워했다. 나는 혼자 울었다.


큰 뜻 없이 대학교에 들어갔다. 완전히 바뀐 환경은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나는 밝은 아이가 되어갔다. 누구도 나에게서 우울증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3학년 때 드디어 공부를 한 번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문과 복수전공을 했더니 어학연수를 가고 싶어졌다. 휴학을 하고 캐나다로 떠났다.


캐나다에서 나는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을 만끽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자유로웠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세상에서 나는 가장 나다웠다. 주눅 들 이유도, 불안할 이유도 없었다. 죄책감 없이 젊음을 누렸다.


어학연수 후반부에 남편을 만났다. 그를 만났을 때 나에게 우울한 모습은 없었다. 결혼할 때까지도 어린 시절 이야기는 거의 꺼내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잘하는 모습만 봤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했고,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모습을 봤다. 그래서일까. 그는 항상 나를 믿어주었다.


어릴 땐 나를 믿거나 지지해 주는 어른이 없었다. 아빠 없는 아이라는 선입견만 있었다. 출발선에서 이미 결여된 아이였다. 게다가 딸이었다. 우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유야 어찌 됐건, 아니 설령 모든 게 나의 오해라 할지라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 곳에서 결국은 나조차 나를 믿지 못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 여겼다.


그랬던 나에게 나를 전폭적으로 믿어주는 사람이 생겼다. 남편이었다. 남편은 나의 우울한 면을 본 적이 없었다. 이루어내는 모습만 보았다. 항상 나를 똑똑한 사람, 뭐든지 해내는 사람이라 말해주었다. 나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다. 남편은 나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나는 끊임없이 도전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한국에서는 직장일과 자격증 취득을 병행했고, 캐나다에서도 석사학위 후 직장일과 자격증 취득을 병행했다. 나는 나를 다그쳤다. 몸과 마음이 바스러지고 있는 것조차 무시했다. 다행히 모든 도전은 성취로 되돌아왔다. 나는 내가 형편없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비록 이것은 어린 시절의 '결핍'에서 비롯된 '인정욕구'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찾아왔지만 말이다.


남편은 내가 하려던 모든 일을 응원했다. 자꾸만 도전하는 아내를 가진 남편은 자연스레 그에 상응하는 희생을 치러야 했다. 우리는 육아 도움을 받을 곳이 없었다. 두 아이를 보육시설과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부부가 모든 일을 병행하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우리는 매일 새벽에 일어났고, 늦은 밤에 잠들었다. 지금의 짧은 회상으로도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 들 정도로 그 시절은 고되었다.


남편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육아와 집안일도 함께 잘 해내주었다. 본연의 끈기와 참을성 있는 성격이 큰 몫을 했다. 그는 특히 육아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온갖 기발한 아이디어로 아이들과 놀아주었다. 요리실력도 갈수록 늘었다. 베이킹도 잘했다. 한 때는 마치 내가 큰 딸이 된 기분이었다. 남편이 자식 셋을 키우는 것 같았다.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에 그치지 않고, '해 낸 사람'이 되었다. 자랑스러운 엄마, 꿈을 이룬 엄마, 본보기가 되는 엄마이고 싶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좋은 교육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잘 자라주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은 '엄마처럼 살지 말고, 즐거운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라'는 것이다. 돌이켜볼 때 나의 지난 성취들이 꼭 필요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때는 그 선택을 최선이라 믿었고, 그에 따른 여정을 밟았을 뿐이다.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더 후회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우울과 불안은 옅어진 형태였지만 나를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좀 더 나을 때도, 좀 더 힘들 때도 있었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나의 정신적 기반은 흩날리는 모래 같았다. 성공을 위해 닦달할 때면 더욱 심한 스트레스와 불안증이 엄습했다. 결혼 초부터 불안정한 마음건강에 대해 남편에게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마음의 병을 자연스럽게 바라봐주었다. 평가하거나 질책하지 않았다. 한걸음 물러서서 기다려주었다. 그가 해결책을 내려줄 수는 없었지만, '그럴 수 있지'라는 태도로 받아들여 주었다. 나의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단단히 지탱해 주는 그가 편했다. 남편은 내가 숨기지 않고 모든 걸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2년 전 직장을 그만두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던 직장과 직업이었지만, 나의 건강과 엄마의 알츠하이머로 날개를 접고 내려앉았다. 인생은 변수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나는 올바른 선택을 했다.


앞날은 불투명하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도 되는지, 아니, 꼭 어디로 가기는 가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다. 남편은 언제나처럼 침착하다. 나를 나아가게도 하지만, 나를 멈추어 쉬게도 한다. 나는 앞날을 생각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남편은 무엇이든 응원한다.


"네가 행복하기만 하면 돼. 하고 싶은 것 다 해." 그는 항상 말해왔다. 나는 남편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행복을 추구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허가증을 받은 것 같았다.




나는 '남편관찰일지'에서 주로 사랑, 행복, 긍정의 이야기들을 다루었지만, 내가 꼭 꺼내놓고 싶었던 메시지는 '힘든 사람도 언젠가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고난은 사람마다 다른 형태로 다른 시기에 찾아온다. 나도 물론 인생과 고통을 모두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고통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 어둠을 통과하면 빛이 기다린다는 것, 스스로 또는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의해 인생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조심스레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시련의 시기는 나의 삶을 다채롭게 엮어주었고, 야무지게 빚어주었다. 나는 이런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조금 더 살펴보고 이해하는 눈과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제 누구나 넘어질 수 있고,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모든 분들의 하루하루가 조금 더 밝고, 조금 더 따뜻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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