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듯
우리의 자녀양육방식은 보통의 한국인들과는 차이가 있다. 캐나다라서 다른 면도 있지만, 이곳에도 교육에 열성적인 사람들은 많다. 출신국가에 따라서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 보통 동양인들이 교육에 좀 더 진심이다. 국적을 떠나서 가족의 상황과 분위기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곳에도 학원과 과외가 있고, 모두가 학업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나는 보통의 한국인들만큼 교육에 열정적이진 않다. 아이들은 피아노나 축구 같은 방과 후 활동은 했지만, 입시중심의 학원이나 과외는 해 본 적이 없다. 다행히 아이들은 바르고 똘똘하게 자라주었다. 지금 첫째는 대학교 2학년, 둘째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남편과 나의 자녀양육에 대한 기본방향은 비슷하다. 아이들의 자립심과 선택권을 존중한다. 그들의 흥미, 적성, 성향, 의견을 최우선으로 한다. 사소한 의견차이들은 항상 대화로 잘 풀어왔다. 적어도 모든 문제나 고민을 부모에게 말할 수 있는 집안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아이들은 어떤 이야기든지 스스럼없이 우리에게 털어놓곤 한다.
살아온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기에, 남편은 나보다 좀 더 자유분방한 면이 있다. 나는 가끔씩 한국적인 마인드로 무엇이 정말 아이를 위하는 길일까 생각하곤 한다. 이런저런 대화 끝에 남편의 결론은 항상 '그래도 자기 인생인데 아이들이 알아서 해야지, 우리가 어쩔 수 있나'이다. 나는 수긍하면서도, 혹시 잘못 이끄는 것은 아닐까, 놓친 것은 없을까, 한 번씩 되돌아보게 된다.
아이들은 많은 일을 스스로 하다 보니 어릴 땐 이런저런 실수도 했다. 우리 부부는 바쁘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해야 한다는 생각 또한 분명했다. 필요한 준비물을 사주고, 학교행사나 학부모상담에 참석하는 등의 필수적인 역할은 했지만, 거의 모든 것은 아이들의 몫이었다. 완벽을 기대하기보다는,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첫째 아이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주말에 실컷 놀다가 일요일 밤이 되어서야 아이는 숙제를 깜빡했다며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이를 진정시키고 숙제에 필요한 재료를 구해주며,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라고 안심시켰다. 아이는 눈물범벅으로 밤늦게 숙제를 마쳤고, 다음날 무사히 학교에 갔다. 아이는 이 일로 다소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로 숙제를 잊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둘째 아이는 종종 덤벙대느라 시험에서 아는 문제를 실수로 틀리곤 했다. 이럴 때 남편은 주로 "그럼 이제 그 문제만큼은 정확히 머릿속에 넣었겠네. 그 지식이 네 것이 되었으면 충분해"라고 말했다. 항상 점수보다는, 원리와 개념을 이해했느냐에 중점을 두었다. (가끔은 멋있는 척하려고 저러나 싶다.)
나는 "시험칠 때는 꼭 검산과 검토를 하는 습관을 들이자"라고 말했다. 아는 문제를 틀리면 아쉬운 것은 사실이고, 아는 만큼 결과도 나와야 좋은 것은 당연하다. 실수를 적게 하는 것이 앞날에 도움 되는 것도 분명하다. 몇 번의 실수를 통해 아이는 검토를 습관화하였고, 실수는 크게 줄었다.
아이들이 실수를 하면 부모는 아쉽고 불안하다. 괜찮을까, 혹시 또 그럴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가 완벽히 챙기면서 실수의 기회를 없애는 것보다 아이가 실수를 함으로써 스스로 깨우치는 길을 선택했다. 이 경우 부모로서 인내심과 평정심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이 선택은 분명 필요했고 적합했다는 것을 안다. 초등학교 성적표는 큰 의미도 없는 마당에 실수는 어릴 때 다 해보면서 스스로 터득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아이들을 훨씬 잘 다듬어주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컸느냐.
첫째 아이는 미술을 전공한다. 예체능에서 성공하기가 좀 더 어려운 것은 사실이고, 부모로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이의 열정은 남달랐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방대한 양의 창작물을 쏟아냈다. 그림뿐 아니라 음악, 작문 등 아이는 학교 외 모든 시간을 창작에 몰두했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독학으로도 상당히 발전했고, 우리는 아이를 진심으로 북돋아주었다.
진로는 또 다른 문제이기에 골똘히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나는 '창작을 하지 않으면 이 아이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직업을 갖고 사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드문 것은 분명하다.
아이는 본인이 원하는 미대 딱 한 군데만 지원하겠다고 했다. 여기서 또 엄마의 입장은 '그래도 여러 군데 지원은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였다. 하지만 아이는 강경했다.
"나는 다른 곳은 합격해도 안 갈 거야. 그런데 왜 지원을 해야 해? 혹시 떨어지면 일 년 정도 다른 일도 해보고 여행도 하면서 내 인생을 설계해보고 싶어."
어린아이가 너무 맞는 말만 했다. 솔직히 어린 나이의 그 확고함이 부러웠다. 여기서 남편의 입장은 언제나처럼 '어차피 자기 인생인데 우리가 뭐라고 할 수 있나?'였다. 모두가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아이는 한 군데만 지원했고, 다행히 합격을 해서 잘 다닌다. 지난 학기에는 본인만의 '개인 프로젝트'를 꼭 하고 싶은데 학교에 다닐 시간이 없다면서 수강과목을 줄이기까지 했다. 우리는 그런 열정과 도전을 응원한다. 젊을 때 마음껏 도전해 보고,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거기서 무언가를 배우면 된다.
고2인 둘째 아이는 아직 장래에 무엇을 하고 싶은 지 모른다. 그래도 알아서 공부는 열심히 해주니 다행이다. 언젠가는 하고 싶은 일도 알아낼 것이다. 조급할 것은 없다. 아이는 졸업 후 여행을 하면서 진로를 찾아보고 싶다고도 한다. 그것도 방법이다. 물론 바로 대학교를 가면 걱정을 덜겠지만, 적성을 모르고 전공을 결정하느니 시간을 갖고 생각하는 것도 괜찮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주 묻는다. "너 행복하니?"
아이들은 항상 행복하다고 대답한다.
어느 날 둘째가 물었다. "근데 엄마는 왜 자꾸 행복하냐고 물어?"
나는 대답했다. "너희가 행복하기를 바라니까."
어느 날은 첫째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유독 신나게 이야기했다. 나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너는 네가 정말 행운아인 건 아니? 부모가 항상 하고 싶은 걸 응원해 주니까 좋지?"
"응, 난 진짜 행운아야. 아마 세상에서 행운아 0.1% 안에는 들 거야. 난 행복해."
부모로서 그 이상 아이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을까? 우리 아이들은 밝고 자신감에 차있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자식이 명문대의 유망한 전공을 선택했을 때 성공사례로 더 주목받는다. 물론 우리도 아이들이 스스로 사회적 기준에서 더 명망 있는 진로를 원했다면 부모로서 뿌듯하고 응원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행복지수가 높은 아이들의 이야기도 성공사례라 생각한다. 나는 우리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 물론 인생은 오르락내리락할 것이고, 힘든 날이 없을 순 없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로부터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받는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
아이들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울타리이자,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버팀목으로서 부모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 아이들은 부모를 믿고, 우리는 아이들을 믿는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부모로서 잘해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내세울 게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어떤 위치까지 올라갈지 모른다. 나는 어느 누구도 그들의 가능성을 단정 짓지 않길 바란다. 나는 그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다.
어쩌면 남들이 생각하는 성공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믿고 추구하는 바를 위해 젊은 날을 후회 없이 불태워보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과 경험은 찬란한 것이라 믿는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사회의 잣대로 가늠하려는 시선 자체를 거부한다. 아이들은 겨우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그들은 여전히 세상을 탐색 중이다. 그대로 직진할 수도, 방향을 틀어볼 수도 있다. 그래도 다 괜찮다. 그런 게 인생이니까.
부모로서 나의 바람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다. 독립 후에는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결국 부모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식들을 사랑으로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 힘든 시기가 온다면 보듬어주고 이끌어주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