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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r 25. 2024

다소간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퇴사하는 날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다. 또다시 백수가 된다.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37살에 백수라니.." 짐짓 농담을 한다. 유쾌하고 웃는 그들의 표정을 살피며 한편으로 안도의 마음을 품는다. '그래, 필요하다면 언제든 일은 그만둘 수 있는 거였구나!' 처음에는 4개월 정도 근무하고 그만두려고 했었으나, 후임자가 오자마자 맡기에는 부담스러울 일까지 마무리하게 되었으니, 떠나는 마음 또한 그리 무겁지 않다. 퇴사 이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요즘 고민하고 있다. 학교로 재입사를 하고 브런치에 글을 꾸준히 올리며, 글과 관련된 직업으로 전향해 보려 하였지만 실패했다. 회사에서 겪었던 심리적인 부담감으로 퇴근하면 쉬기에 바빴다. 글을 쓰지 못한 날이 쌓일수록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어제도 쓰지 못했네' 같은 자기 비난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막상 시간을 내어 책상 앞에 앉아도 글이 잘 쓰이지 않았다. 안 하던 러닝을 시작하면 숨이 금세 가빠오고 근육에 무리가 오듯, 안 하던 행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쓰겠다!' 결심해도 당장에 만족할 만한 글이 써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퇴사가 결정되고 새로운 곳으로 취업하는 걸 우선 고민했다. 나는 심리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내담자로 찾아오는 한 명, 한 명의 고유한 사연을 나누는 일은 숭고하게만 느껴진다. 내담자가 상담 과정을 통해 치유의 순간에 들어서면 경이롭다는 감각이 온몸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나에게 마음을 연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알아주고, 받아들이는 순간마다 함께 머물며 거치는 일은 카페로 들어서는 볕에서 다정한 시선을 느꼈던 특별한 경험처럼 강한 여운을 남긴다. 상담사에게는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과제가 있다. 상담 효과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 중에는 상담자 요인이 있다. 상담자가 쌓은 상담 관련 지식과 훈련하는 기술은 '나'라는 토대 위에 쌓이게 된다. 상담자가 나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면, 그 알지 못함이 상담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상담을 지속하기 위해 상담자는 자신의 삶을 성찰적인 자세로 꾸준히 살피며 '나'라는 존재가 상담에 긍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점검해야 한다.


내게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미해결 과제가 있다. 물론, 한 가지가 아니며, 그중에는 '독립'이란 주제가 있다. 서른일곱이 된 나는 여전히 부모님의 집에서 살고 있다. 독립하여 생활한 경험이 1년 남짓이다. 경기도에 위치한 대학교에 다닐 때에도 2시간 정도 거리를 통학했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서울에서 회사를 다녔으므로 돈을 모은다는 이유로 혼자 살 집을 알아보지 않았다. 독립은 성인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어야만 하는 중요한 발달 과업이다. 고정적인 수입이 발생하고, 꾸준히 모은 돈으로 월세나 전세와 같은 형태의 계약으로 최초의 독립을 경험하는 직장인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을 것이다. 사회초년생이고, 불가피하게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가족의 지원을 받게 되기도 한다. '나'가 중심이 되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독립은 중요하다. 가족이나 학교, 지역사회와 같은 제도권 안에서 형성된 생활양식을 나에게 맞는 형태로 실현하려면 적합한 환경으로 떠나야 한다. 반드시 떠나야만 나답게 살 수 있는 건 물론 아니고, 적절한 타협점이 있을 수 있지만, 자신이 바라는 삶이 현재 삶과 크게 다르다면, 이를 테면 도심을 벗어나 자연과 가까운 환경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주 공간의 분리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심리적인 독립일 것이다. 부산이 고향인 사람이 서울에 자신의 집을 마련했다 해도,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자립하지 못하고, 자신의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면 따로 살지만 가족과 같은 외부의 그림자로부터 속박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의 선택은 대부분 타인의 영향을 받는다. 가벼운 대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해외여행을 앞둔 A라는 친구가 있었다. 또 다른 B라는 친구와 나까지 셋이 대화를 나누던 때이다. 나는 A가 해외여행을 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B라는 친구도 A가 조만간 국내를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몰랐다. 나는 이들과 A의 해외여행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A에게 말했다. "이번 휴가 때 계획한 거 있어?" A에게 듣지 않은 척 물은 이유는 A와 B의 관계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A가 그 자리에서 여행 얘기를 꺼내기 싫어할 수도 있고, B에게 여행 간다는 것을 알리기 싫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B가 모르는 A의 여행 소식을 내가 먼저 알고 있었다면 A와 B의 관계에 미묘한 감정이 흐를 수 있으므로, A가 내게 기억하지 못했다고 꾸지람을 줄지라도 태연하게 웃으며 나이 때문에 기억이 신호등처럼 깜빡거린다고 대꾸한다. 이처럼 말 하나에도 타인을 의식하는 편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선택에는 신중함이 더욱 요구된다.


새로운 회사로 곧장 취직하고자 했던 이유는 결혼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서른 중반을 넘어선 적지 않은 나이에 직업이 없다는 현실은 결혼에 관한 결심을 위축되게 한다. 배우자가 될 사람과 합의가 잘 이루어진다면 일을 그만두거나, 그만둔 상태로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연애를 오래 하였지만 아직 결혼을 결정하지 못한 나와 같은 경우에는 직업을 포기하기 어렵다. 예비 남편으로서 안정된 계획으로 예비 신부를 설득할 수 없다면, 퇴사는 장기적으로 독거로 나아가는 결정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자친구가 만약 나와의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우리가 결혼을 계획하고 있었다면 나는 퇴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나의 강점에는 책임감이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상황에서도 부모님은 가족을 우선시했다. 또한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신의 선호와 다른 직업도 유지하기 위해 애썼고, 한 푼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걸어 다니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내가 만약 결혼을 했다면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 없이 퇴사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최근 결혼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당분간은 결혼에 대해 다시 얘기하지 않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맺었다. 어쩌면 이번 생애는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막무가내로 퇴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사유였다.


바로 취업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가까운 누군가가 해보고 싶은 게 있는지 물을 때면, 여행이라고 대답했다. 단순히 며칠간 집을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떠돌다가 마음에 드는 지역을 발견하면 필요한 만큼 머무는 그런 여행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여행을 상상할 때면 떠오르는 잔상이 있다. 맨발로 잔디가 푸릇한 땅을 걸으며 발목을 간질이는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는 장면이다. 발바닥으로 흙의 부드러운 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온몸을 감싸는 볕의 포근함에 숨을 깊게 내쉬기도 하는, 그 순간의 나는 살아있음을 절정으로 체험할 수 있을 거라 상상한다. 이러한 상징적인 장면은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해, 물리적, 심리적 독립을 위해 떠나야 함을 의미한다. 인생에서 누구보다 중요한 여자친구만 괜찮다고 한다면, 내게는 떠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집을 구할 목적으로 돈을 꾸준히 모아 오기도 했고, 심리상담사라는 직업은 나이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는다. '일을 몇 달간 쉬어도 나 하나 일 할 곳, 우리나라에 적어도 하나쯤은 남아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주도로 떠났던 5일이 혼자 다녀온 가장 긴 여행이었으므로, 부랑하며 사는 삶을 꿈꾸는 내게 한 달 살기는 적절한 타협점으로 보였다. 한 달 살기라는 방식의 여행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사회복지사로 근무할 때였다. 상사로 인해 이윽고 경험하게 된 우울감을 감당하기 어려워 도망칠 목적으로 찾아보았다. 퇴사를 하고 제주의 별장과 같은 시설에서 머물며 느지막이 일어나 모닝커피를 마시는 환상에 빠지고는 했다. 제주도 대신에 대학원을 진학하게 된 이유도 결국은 결혼에 대한 고려 때문이었다. 결혼을 위해 서울 내외의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소득이 끊기는 일도, 한 달을 놀고먹는 일도 사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한 달 살기는 나로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과정으로 내게 다가온다. 1년 정도 독립하여 살던 집도 본가에서 그리 먼 곳은 아니었으므로, 서울을 벗어난 곳에서의 한 달 살기는 나에게 몰두하며 자율성을 키워가는 계기가 되어줄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물론, '어.. 어디로 떠나야 할까?'는 고민이 해결되지 않았다. 퇴사는 다음 주로 다가왔지만, 여행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한 달간 생활할 공간을 대여하는 데에 적절한 비용은 얼마이며, 고려해야 할 주변 시설에는 무엇이 있으며, 내게 필요로 하고 소중해할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아직 감이 오질 않는다.


거주할 곳도, 그곳에서 무엇을 하게 될지도, 안개에 휩싸인 길 위에 놓인 것처럼 뿌옇기만 하다. 하지만, 흐릿한 세상 속에서 뚜렷한 것이 하나 있다. 마음이 여행을 비추고 있다. 나는 기필코 떠나고 말 것이다. 상담자로서 성장하기 위해, 나로 살아가기 위해, 내가 되기 위해 다소간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Image by Ilo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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