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야, 그런데 왜 작게 말하는 거야?"
온라인 모임에 먼저 참여한 모모는 물었다.
"그.. 여기가 방음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늘고 쇠약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어느 정도로 안 되길래?"
"옆집에서 생활하는 가족의 대화가 제법 생생하게 들려요.."
지난 모임에 빠진 모모와는 한 달 만에 만났으므로 그간의 안부를 나누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덕규가 접속하며 새로이 인사말을 건넸다.
"어... 덕규야... 안녕..?"
밤늦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피로한 척을 할때와 목소리가 유사하다고 자각했다.
"아니, 오빠. 목소리가 왜 그래요?"
"여기 방음이 잘 안 돼서..."
구성진 노랫소리마저 이따금 들린다며, 속삭이는 이유를 다시 설명했다.
내가 참여한 모임은 '글썽글성'이라는 글쓰기 모임이다. 글썽글썽에서 모임명을 따왔다. 덕규의 제안으로 모임명을 결정하였는데 '비록 지금은 글썽거리지만, 이내 글로서 성공한다'는 의미로 기억하고 있다. 격주 수요일 밤마다 온라인으로 우리는 만나고 있다.
"아~ 늦게라도 참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모임이 끝나갈 즈음 접속한 제이는 말했다.
"오... 반가워, 제이야.."
손을 경쾌하게 흔들며, 잠결에 내는 듯한 목소리가 수면 위로 등장한다.
"어, 수호야. 강릉은 잘 내려간 거 맞지?"
"어... 여기.. 강릉이야..."
"그런데 목소리를 왜 그렇게 작게 내?"
"어... 방음이 잘 안 되어서 그래..."
이내 끊어질 듯한 나의 목소리에, 제이는 웃으며 대답했다.
"회사에서 모임에 들어올 때는 '여기... 회사야...'라고 말하더니, 강릉까지 애써 내려가서..."
성대모사를 곁들인 제이의 말에 우리는 일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나의 한 달 살기는 강릉과 동해에서 지내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강릉에서 보내는 2주는 혼자 조용히 지낼 계획으로 숙소를 예약했고, 동해에서 보내는 2주는 어쩌면 방문할 손님을 생각하며 숙소를 예약했다. 강릉 숙소에 처음 들어선 순간, 서울에서 강릉까지 운전하며 쌓인 긴장감이 해소되는 걸 느꼈다. 공간이 주는 포근함이 마음을 안정되게 만드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머지않아 대화하는 소리가 옆집에서 들렸다. 트로트 음악도 뚜렷하게 흘렀다. 서울에서 가져온 짐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마주한 강릉에서의 현실이 다소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내게는 최신형 헤드폰이 있다. 그깟 소음 따위는 관대한 태도로 대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 목소리가 옆집까지 들려 피해를 끼치는 상황은 용납할 수 없다. 어찌나 심각하게 고민했으면 "내 목소리를 켜두고 옆집에 가서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들어보고 싶다"라고 글쓰기 모임에서 말했을까. 돌이켜보면, 선택의 순간마다 유독 주저하게 만들었던 겁이 많은 모습, 즉 쫄보적 기질이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따끼따끼, 재밌거나 무서운 얘기 들려줘"
서진이가 웃으며 보채듯 말한다. 우진이도 거든다. 때는 바야흐로 조카들과 무려 3시간 축구를 하고,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맥주도 한 잔 마셨겠다 노곤해진 상태로 묵념에 빠지고 싶은 나를 조카들이 깨운다.
"음.. 혹시, 삼촌이 거대한 나방 이야기 해주었던가?"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오, 아니. 무슨 얘긴데?!"
호기심을 보이던 이들에게 손으로 콧물을 훔치던 나는 대화를 이어갔다.
"흐흠, 삼촌이 고등학생 때였는데... 혹시 초원아파트라고 들어봤니?"
이 이야기는 어디로 들어왔는지 모를 큰 나방이 안방에서 발견되며 시작된다. 안방에서 티비를 보던 나는, 천장과 벽면 사이에서 무언지 모를 이질감을 느끼며 형광등을 켠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족히 손바닥 만한 나방이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 사이렌 소리가 마음으로 긴급하게 울려 퍼졌다. 황급히 취한 행동은 누나에게 전화하기였다. 누나는 다 큰 애가 무슨 벌레 가지고 호들갑이냐며 핀잔을 주었다. 집에 도착한 누나가 안방으로 들어서자 "어떡하지, 수호야..?"라며 처치 방법을 이내 되물었다.
옴짝달싹 못하며 나방과 대치하던 상황은 누나가 도착하며 끝이 났다. 그러나, 야간 식당을 운영하던 부모님이 집에 오기까지 우리는 안방을 사용하지 못했다. 나방의 안부가 궁금했던 누나가 새벽에 안방 문을 열었고, 빛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들던 나방은 닫히던 문에 부딪쳤다. '툭' 소리가 제법 컸다고 한다. 나방의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문을 다시 열 용기는 누나에게 없었던 듯했다. 이른 아침, 엄마가 집에 와서 문을 열고 여전히 살아있던 나방을 베란다 밖으로 놓아주며 나와 누나는 나방으로부터 비로소 해방되었다.
"푸하하하하"
조카들의 웃음소리가 차 안이 떠나가도록 퍼진다.
"후훗, 삼촌은 어려서부터 대쫄보로.. 어디 하나 크게 다치지 않고 지금까지 자랐지.."
조카들에게 나를 딱히 내세워본 적 없었던 나는, 내가 얼마나 대단한 쫄보인지를 각인시켰다.
옆집의 사정을 나는 알지 못한다.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그러므로 어쩌면 평생 모를 수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생활 소음이 옆집에 단기로 거주하는 나에게 들릴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할까. 아닐 것이다. 내가 찾아가서 말해 주어야만 이웃 가족은 자신들이 내는 소리가 크다는 걸 인식하게 될 테다. 소음이 줄어들지 않으므로 복수할 마음으로 내가 이웃을 향해 크게 떠들거나, 음악을 시원하게 틀어 놓을 가능성은 적다. 방음이 잘 안 되는 구조인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옆집 가족의 알 수 없는 사정이나, 되지 않는 방음을 고민하며 속삭이듯 말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태생적으로 쫄보인 나는 안 그래도 목소리가 작은 편인데, 굳이 꿈속을 헤매는 듯한 목소리로 말할 필요는 없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가족들과 대화를 하며 살아가는데, 나처럼 행동하다가는 내가 거주하는 곳의 모든 세대가 묵언 수행이라고 해야 할 참이다. 아무래도, 당당하게 볼륨을 높여야겠다. 목소리를 내야겠다. 그래봐야 남들이 듣기에는 아주 미미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