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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pr 18. 2024

생활반경을 필요한 곳으로 점차 넓혀가는 일

"으... 으앗...!"

'으앗'은 내가 자주 사용하는 반사적인 리액션 중에 하나이다. 세세한 자극에도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 사람과 마주치면 절로 흠칫한다. 민망함을 따질 새도 없이 "아이고, 깜짝이야!" 실토하고 만다.


선유교를 건너다 다리가 흔들리면 제자리에서 오들 거리며 떨고, 지하철 환풍구 위로는 발을 절대 들이지 않고, 높은 장소에 선 인물이 세상을 내려다보는 영화 속 장면만 보아도 손발이 땀으로 축축해지는, 나는 겁이 많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나처럼 자극에 취약한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생활 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은 마른 우물 바닥을 긁어내듯, 부족한 용기를 퍼내도록 거듭 자극한다. 알던 길로 가고, 가던 식당에 들르고, 먹던 과자를 고르고, 익숙한 사람을 만나는 선택은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므로 강릉은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상황 투성이었다. 집 안 구조에 익숙해지는 데까지 한 주가 걸렸고, 생활 용품들을 이용하는 손놀림에는 주저함이 묻어났다. 새로운 버스를 타더라도 그 버스가 목적지로 가는지 네이버 지도와 정류장 노선도로 보았더라도 버스기사에게 반드시 물어서 확인했다. 나에게 여행지에 적응한다는 것은 회오리 한가운데서 바깥으로 영역을 점차 넓혀가는 일과 같다.  


강릉에 오며 계획한 것이라고는 숙소밖에 없다. 하지만, 하겠다고 결심한 일은 몇몇 있었다. 그중 한 가지가 글쓰기다. 글을 쓰는 순간을 애정한다. 글만큼 몰입의 상태로 나를 빠져들 게 만드는 활동은 전무하다. 음악이나 자연이 몰입하도록 때때로 돕지만, 일순간에 가깝다. 물론, 그조차도 벅차오름을 느끼기에 충분하지만, 손가락을 움직이는 활동과 숙고의 작업이 수반되는 글쓰기는 더한 감동으로 내게 다가온다.


영진해변의 '카르페디엠'이란 카페로 매일 출근하고 있다. 글을 쓰는 환경으로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를 넘어설 곳이 적어도 내게는 드물다. 출렁이는 파도를 쉬지 않고 보내는 묵묵한 바다와 헤드폰에서 흐르는 음악, 새하얀 화면이 주어지면 '이대로 죽어도 괜찮겠다' 싶을 만큼 마음에서 온몸으로 충만함이 퍼져간다.


카프레디엠에 들르게 된 사연이 우스꽝스럽다. 영진해변에 즐비한 카페거리에 처음 들어선 날이었다. '어느 카페를 이용해야 할까?' 노트북도 하고, 음악도 듣고, 책도 읽기에 적당한 곳을 물색하려 했다. 카페 입구들을 서성이다 보니 어느 카페는 사장님과 좌석의 위치가 가깝고, 여기 카페는 손님이 많고, 저기 카페는 손님이 적고. 그럴싸한 이유들로 어떤 카페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했다.


해변의 끝에서 지나온 길로 다시 돌아올 때, 편한 복장 차림의 손님이 한 카페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지역 주민인 듯싶었다. 왜일까. 계단을 오르던 그의 확신에 찬 걸음에서 믿음이 생겼다. '용기를 내자!' 장바구니에 담긴 노트북을 끌어안고 카페로 들어섰다. 음료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주문했다. 강릉에서의 첫 바닷바람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찼으므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커피가 생각났다. 카르페디엠과의 인연은 첫 방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3층 자리를 나는 선호하는데,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고, 바다가 더욱 훤히 내다보였기 때문이다.


이곳에 앉으면 통창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글을 쓰다가 멈춰질 때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바다로부터 전해지는 감각을 따라 숨을 고르고, 화면을 다시 보면 신기하게도 다음 문장이 저절로 쓰이기 시작한다.  


Image by Albrecht Fietz from Pixabay


"과장님, 저.. 아무래도 그만둘까 고민 중이에요.."

높은 직급과 달리 직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른 과장님께 말했다.

"내가 미안해서 붙잡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는데.."

미안하고 난처한 기색을 보이던 과장님은, 시선을 이내 피하던 내게 대답했다.


과장님께 그만두겠다고 처음 말했던 시기가 11월이었다. 다음 해 3월까지 근무하고 퇴사하였고, 그 사이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를 과장님께 한 번 더 밝힌 적 있다. 주말 동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거나, 평일에 휴가를 내고 집에서 가만히 쉬어도 출근만 하면 머지않아 지치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회사에서는 집중력을 발휘하여 산재한 일을 순서대로 신속하게 처리해야 했다. 그러나, 의지대로 마음이 잘 따라주지 않았다.


일은 진행될수록 자극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일로부터 지친 나를 지키기 위해 시행 준비가 끝난 일도 하루씩 미루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일의 진행에 무리가 없는 선에서 미루었지만, 오늘 처리해도 괜찮을 일을 구태여 내일로 미루는 나의 행동은 크게 지쳤다는 분명한 신호였다.


"저, 어제 헬스장 새로 등록했어요"

직장동료인 현수는 자신의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오, 헬스장이요? 저도 이용해 보고 싶은데.."

서른일곱까지 헬스장을 이용해 본 적 없었던 나는, 부럽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아, 그래요? 그러면 이참에 한 번 등록해 보세요"

베이글에 블루베리 잼을 고루 바르던 현수는 가벼운 억양으로 대답했다.


나는 내가 겪은 상황을 느낌으로 기억하는 경향이 크다. 그러므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받아들인다. 현수는 헬스장을 등록했다는 사실과 이용해 볼 것을 권유하는 상황을 제공하였다. 현수와의 대화에서 나는 나의 생활반경에 헬스장을 추가해 볼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꼭 이용해 봐야지' 생각해 오기도 했고, 하프마라톤이 한 달 가까이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현수와의 대화에서 나는 '한 번 등록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번에는 꼭 가보고 말겠다는 결의를 세웠다. 그때를 내면에 잠들어 있던 용기의 원천을 발견하는 순간으로 나는 기억한다.


집과 회사, 가끔 이용하는 카페나 드문 친구들과의 약속 사이에 헬스장을 추가하는 건 곤란한 일이었다. 결심은 했지만, 동네의 어느 헬스장을 어떤 방식으로 등록할지 결정하는 건 끝없는 혼란을 야기했다. 집과 가까운 헬스장으로 어렵게 골랐는데, 건물 입구에서 계단을 올라 2층에 위치한 헬스장으로 들어서기까지, 한 걸음마다 '돌아설까?' 하는 두려움과 '물러설 수 없다!' 하는 용기가 뒤엉키며 다투었다.  


그렇게, 이용하게 된 헬스장의 적응기는 강릉에서의 생활과 유사하다. 헬스장 이용 방법에 대해 소개를 듣고, 라커를 배정받았는데 안내받은 자물쇠 비밀번호와 달라 한참을 망설이다가 도움을 요청한 일. 샤워실에는 공용으로 사용하는 비누 밖에 없어서 샤워 도구를 개별적으로 챙겨 와야 하고, 주말에는 운영시간이 달라 집으로 다시 돌아온 일까지, 헬스장을 등록하지 않았다면 몰랐거나, 경험하지 못했을 일들이다.


헬스장 이용에 익숙해 가는 과정은 서툴렀지만, 체력은 몰라보게 좋아졌다. 달리는 거리도, 속도도 점차 나아졌다. 일을 미루는 행동도 개선되었다. 운동을 하고 다음 날 회사를 출근하면 일에 집중이 잘 되기도 했고, 오늘 해야 하는 일을 서둘러 끝내야 내일의 일을 할 수 있고, 그래야만 헬스장에도 갈 수 있다는 생각이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도록 도왔다.  


러닝의 맛을 깨닫기 시작한 나는 강릉에서도 헬스장을 이용하고 있다. 해변가로 가면 경치가 좋아 달라기 좋을 것 같다고 한 친구가 말했지만, 기왕이면 따뜻한 장소에서 뛰고 싶은 나는 굳이 헬스장으로 향한다. 일일권을 끊어가며 2~3일에 한 번씩 러닝머신 위에 선다. 꾸준한 운동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걸 체감한 뒤로는 낯선 시설을 처음 이용한다는 두려움 따위,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경험만 하고 지나치면 성장의 발판으로 삼기 어렵다.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난 회사에서의 시간, 헬스장을 등록하고 이용해 가던 과정, 강릉에서 좌충우돌하고 있는 요즘까지, 글을 쓰며 면밀히 살피는 이 순간이 있기에 쓰라렸던 경험도 나를 위한 자양분이 되어 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쓴다. 흰 배경에 나의 이야기를 적어간다. 영진해변을 내려다보는, 이토록 용감해져 있는 내가 그저 뿌듯하기만 하다.


그래, 생각해 보면 제주 올레길 여행을 혼자 다녀오기 하고, 프로이직러로서 10년 동안 퇴사도 6번이나 했는데. 겁이 많았다는, 익숙한 과거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구나. 지금의 나, 이토록 용감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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