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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pr 20. 2024

단잠을 자고 난 후에 기지개를 켜니

"수호샘, 강릉 내려가면 뭐 할 거예요?"

강원도에서 한 달을 산다고 말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질문을 했다.

"하하, 강원도에서 저의 밭을 일궈보려고요.."

뒤통수를 긁적이는 특유의 제스처를 하며 나는 대답했다.


강릉으로 올 때 나는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어느 식당과 카페가 있는지 찾아보는 수고조차 하지 않았다. 강릉에 가서 무엇을 할 건지 누군가 물으면, '아무것도 안 할 건데요?' 외에는 할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백수인 마당에 과감 없이 놀고먹겠다는 대사가 사뭇 바람직하기 않게 느껴졌다. 귀농에 대한 관심은 실제로 있었으므로, 밭을 가꾸어 보겠다는 대답을 몇몇에게 농담 삼아하고는 했다.  


'강원도?' 하면 '따스운 곳!'이라는 응답을 나는 먼저 생각했다. 햇볕이 쨍쨍하니 해변 어딘가에 서면 포근할 것만 같고, 불어오는 바람은 온기로 가득하며,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을로 넘어서는 어딘가에 내내 머무를 것 같은 느낌이랄까. 돌아보면, 따습다는 대답은 과거에 경험했던 강릉이 단편적인 이미지로, 자동적으로 떠오른 데에서 비롯되었다. 장애인복지관에서 직원 연수를 왔을 때, 가을로 들어서던 강릉은 온화했다. 재입사를 앞두고 혼자 머물던 새가을, 강릉은 다정했다. 


그리하여, 강릉의 요즘 온도가 어떠한지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강릉은 포근하다'는 믿음으로 짐을 꾸렸다. 여행 준비를 위해 빼둔 하루를 인수인계를 위해 회사로 출근하면서 소홀해진 까닭이다. 이 단순하고도 어이없는 믿음은 차에서 내리는 순간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칼바람이 어찌나 모질게 불던지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는 것은 기본이고, 상의가 안정 없이 펄럭였다. 서울에서 챙겨 온 옷가지는 대부분 짧고 얇았다. 긴팔 셔츠나 스웨터를 한둘 챙겼었지만, 짐스럽게 느껴져 여행 당일에 가방에서 구태여 뺏다. 다만, 추위를 기본적으로 많이 타는 편이므로 '혹시나' 들고 온 후드티와 퀄팅 재킷이 유일한 희망이 될 거라고, 강릉의 첫인사에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직감했다.  


4월 첫 주인, 이 시기의 강릉이 춥다는 사실을 밤이 되며 뼈저리게 실감했다. 후드티를 입고 이불을 두 겹이나 덮었는데도 추웠다. 천장으로 입바람을 불면 입김이 보일 것만 같았다. 몸을 뒤척이다 발가락이 이불 밖으로 삐져나가면 전해지던 냉한 느낌이 또한 추위에 떠는 생활을 예고하는 듯했다. 아니다 다를까. 혹독했던 첫날밤 이후 몸에 감돌던 으스스한 느낌을 기본 상태로 강릉에서 지내게 되었다. "안녕하세요.."를 시작으로 카페에서 주문할 때마다 자각했다. 코에는 콧물이 차있고, 목에서는 쉰 소리가 났다. 주문을 하며 코를 훌쩍이지 않았다면, 서른일곱 답지 않게 민망한 모습을 노출할 뻔한 적이 많았다. 보일러를 틀고, 옷을 아무리 껴입어도 강릉의 차가운 공기마저 따뜻하게 바꿀 수는 없었다. 


감기 기운으로부터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낮잠을 자거나 병원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다니던 회사를 포기하고 어렵게 강릉을 찾았던 만큼 시간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 컸다. 특히, 여행 온 지 며칠 안 된 때였으므로 회사에서 분투했던 내 모습이 떠오를수록 흐르는 시간이 아깝게만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관광지를 오가며 쌓인 여행의 피로가 더해지며 상태는 점차 나빠지기 시작했다. 벚꽃 축제가 한창이던 경포호에 가서도, 숨이 멎도록 수려한 벚꽃과 마주하고도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벚꽃을 둘러보던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한 시간 남짓한 나들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 낮잠을 자는 것으로 열띤 축제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후드티를 내의처럼, 퀄팅 재킷을 군대 깔깔이처럼 입고 다니던 나에게 뾰족한 수가 부며 필요했다. 지속된 추위와 거듭된 외부 일정으로 약해진 몸 상태를 회복하는 게 아무래도 급선무였다. 그러다가 문득, '보일러가 잘 들어오는 거실에서 잠을 자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강릉 숙소는 내 방과 환경이 비슷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아파트 복도와 방이 맞닿아 있어서인지 방 내부가 몹시 추워졌다. 보일러를 켜도 침대 위에서는 효과가 딱히 느껴지지 않으므로 강릉에서와 같이 두꺼운 이불을 봄, 가을까지도 덮고 자는 편이었다.


하루는 바닥에서 자고 싶어서 안방에서 낮잠을 잔 적이 있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는 방바닥에서 잤고, 군대에 다녀온 이후로는 침대에서만 잤으므로 한편으로 불편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잠을 푹 자는 경험을 했다. 보일러의 역할이 컸었는데, 바닥에서 전해지던 열이 몸을 뜨겁게 달구니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 순간이 떠오른 밤. 보일러를 켜고 열이 잘 올라오는 거실에 이부자리를 폈다. 형광등을 끄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여느 때처럼 잠에 들었다. 커튼 사이로 비추는 햇볕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런데, '아니, 이게 무슨 기적 같은 일인가?!' 으스스한 느낌이 온다 간데 없이 사라지고 충만한 기운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상쾌한 기분이 뒤이었다. 그늘진 숲 속을 한참 헤매다가 햇살이 비추는 곳으로 이윽고 나아가 그 순간을 만끽하며 기지개를 힘껏 켜는 생동한 이미지가 함께 떠올랐다. 


잠에서 깨는 순간, 전신으로 이내 퍼지던 희열감을 알아차리며 '미라클!' 속으로 외쳤다. 


나는 깨달았다. '내게 필요했던 건 회사에서와 같이 효율적이기 위해 나를 옥죄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하는 방식으로 편히 쉬어가는 것이구나' 그날 이후 나는 거실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잠에서 가끔 깰 때마다 느껴지는 따스움이 내가 기억하던 강릉 그대로이다. 처음 떠올렸던 강릉의 온도는 마음의 온도와 같다. 직원 연수에 와서 동료들과 카페에서 잠깐이나마 담소를 나누고 해변가를 걷던 순간, 퇴사와 재입사 사이에 머물며 그간의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나를 상상할 때 곁을 내어준 바다. 그때의 온도는 분명 따뜻했다. 


다시 회상할 강릉은 아마도 '쌀쌀한 편에 속하는'에 가까울 것 같다. 하지만, 차가운 온도가 있기에 따뜻한 온도를 알아차릴 수 있듯, 내가 살아갈 삶도 마냥 춥거나 덥지만은 않을 거란 사실이 적잖은 위로를 준다. '어떠한 온도라도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한 게 아닐까?' 그러므로, 동트는 새벽,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레 깨어나고 있는 이 순간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 따스운 계절이다.


Image by Rudy and Peter Skitterian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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