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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pr 26. 2024

서울의 쫄보, 통성명도 거른 채 초면부터 주사위 굴리다

강원도 생활이 3주 차로 접어들었다. 회사를 그만둔 지도 3주가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근무할 때도 그랬다. 순간, 순간은 더뎠지만, 돌아보면 순식간이었다, 남의 집에 사는 듯한 기분으로 강원도 환경에 적응해 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서울로 돌아갈 날이 내일모레로 다가왔다.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숙소를 옮겼다. 강릉에서 2주를 머물고, 나머지 2주는 동해시로 숙소를 예약해 두었기 때문이다. 생활환경을 옮겨서 다시 익숙해져 가는 게 불편할 것 같았지만, 분위기를 한 번 정도 전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무엇보다 집을 눈으로 직접 보고 고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므로, 복불복을 고려하여 이사를 감행했다.


동해시의 한적한 동네로 정착한 첫날, 강릉에서의 마찬가지로 불안이 엄습했다. 실체 없는 허상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불안은, 원래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도 잊게 할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분리수거를 하는 문제부터 숙소 곳곳에 문제는 없는지, 숙소 주변 환경은 어떠한지 꼼꼼하게 둘러보고 확인하고서야 마음이 점차 놓이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강릉에서 나의 주된 고민은 '강원도에서 쓸쓸하게, 사람들에게서 영원히 잊히면 어떡하지?'였다. 꿀렁이는 외로움에 안절부절못하며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을까?' 꾸준히 고민했다. 강릉에서는 결국 어느 누구와도 사적으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기회가 없기도 했고, 기회를 만들 만한 계기도 없었다. 그렇지만, 일상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그럭저럭 균형을 잡아가며 하루씩 보낼 수 있었다.  


동해시로 와서 하루씩 차곡히 살다 보니, 이제는 성취감이 말썽이다. 나는 일에서 얻게 되는 보상으로 성취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을 마친 후에 따르는 '이루어낸 느낌'은 업무 수행을 위한 강력한 동기가 된다. 일을 꼭 마치지 않더라도, 동료들과 전심으로 공동의 목표를 이루어갈 때, 업무는 놀이처럼 즐거운 활동이 된다.


성취감을 느낄 만한 거리가 빠진 강원도 생활은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지속될 것이 분명했다. 그간의 퇴사 후의 삶을 돌아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꿈을 찾겠다든지, 업무가 힘들다든지, 조직 생활이 어렵다든지, 어떠한 어유로 퇴사를 해도 편히 쉬는 기간은 2주를 넘기지 못했다. '아, 취업해야 하는데...' 회사에 한 발을 걸쳐 놓았을 때에는 '어디로 이직하지..?' 고민했었는데, 직위가 백수로 바뀌는 순간 무소속의 조건으로 회사에 취업해야 하는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면접 때마다 퇴사 사유를 묻거나, 면접에 오기까지 공백기 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는 회사들이 있었다. '편히 쉬었다' 하면 안 될 것 같은 엄중한 분위기를 경험하고 나면, 쉬겠다고 결심한 과거의 스스로를 탓하는 결과로 이어질 때가 많았다. 속상하게도.


조바심이라는 감정이 자주 감지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구직사이트에서 일자리를 찾아보기 시작한 것도 강원도로 내려온 이튿날부터였다. 아침, 저녁으로 구직 공고를 찾아보았다. 초조했다. 괜찮아 보이는 공고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원도로 오는 게 옳은 선택이었을까?' 어렵게 결정했으나 고작 한 달의 유예기간조차 적절했을지 따져보는, 효능감이 낮아질 대로 낮아진 나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이처럼 나는 나로부터 시작하여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성취감과 뒤따르는 효능감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타인을 의식하는 경향이 큰 나는 누군가에게 받는 인정을 또한 갈망하는 편이다. 성취감과 인정 욕구 중에 단 하나를 꼽으라면, 성취감은 선호의 대상이지만 인정 욕구는 포기하지 못하는 대상이랄까.


잘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남들이 잘한다고 말해주는 게 내게는 더욱 중요하다. 그리하여, 할 일이 없을 때도 야근을 자처한 적이 있는데 상사에게 헌신하는 모습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강원도, 이곳에서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잘한다는 말을 듣기가 어려웠다. 그럴 만한, 그럴싸한 활동이 없다는 게 무엇보다 컸다. 자원봉사 활동을 지속하여 검색해 본 데는 인정을 위한 욕구가 컸다. 


'한 달간 쉬기로 하고 강원도에 내려왔으니, 편히 쉬면 어때요' 스스로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누군가에게 꼭 듣고 싶었다. 확인받고 싶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싶다. '괜찮아요. 뭐, 어때요'이 한 마디면 관광지를 둘러보거나 글을 쓰며 시간을 깨작거려도 마음이 편안할 것만 같았다


 "자연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당근으로 알게 된, 보드게임을 위한 오픈채팅방에 접속했다. 닉네임은 자연으로 지었다. 당근의 닉네임은 '당근당근'이었는데, 당근당근으로 불리는 것은 아무래도 싫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강원도에 내려와서 잠시 지내고 있습니다"

2주 뒤에는 서울로 내려가야 하므로, 모임에는 단기간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돌려서 표현했다.

"강원도 사람이 아니시군요?!"

거주지를 확인하는 한 모임원의 메시지에 살짝 긴장했다. 아, 졸았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네, 강원도에는 앞으로 2주 정도 머물 예정이에요"

짧게라도 모임에 참여하는 게 가능할지 처음부터 확인하는 게 좋을 듯싶어 솔직하게 대답했다. 


강원도 사람인지 물었던 이는 환영한다는 이모티콘을 남겼다. 다른 이들도 반갑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 정도면 어떤 보드게임까지 마스터할 수 있겠다는 호의로운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한 주마다 모임에 참여 가능한 날짜를 낮과 밤으로 투표할 수 있었다. 나는 언제라도 참여가 가능하긴 했지만, 사람들이 많이 투표한 날로 며칠 선택하여 참여 의사를 표현했다. 


"그.. 어디로 가면 되죠?" 지난 대화를 보니 카페에서 모임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확인 차원에서 모임이 있던 당일 오전에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OOO아파트 OO동 OO호로 가시면 돼요"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누군가의 집에서 모임을 진행한다니. 누가 오는지, 그들의 연령은 어떠하고 성별은 무엇이며, 어떠한 성향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남의 집에 방문한다니. 그리고, 그들과 주사위를 굴려가며 게임을 한다니. 적어도 나에게는 파격적인 순간임에 틀림없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나의 대답은 물론 나이스했다.


차로 이동하던 길에 마트에 들러 과자와 음료를 샀다. 모임 비용은 따로 들지 않는 듯했으나, 처음 만나는 사람의 집에 방문하는 데 빈손은 아무래도 곤란했다. 아파트 단지에 20분 일찍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보다가 벤치에 잠시 앉았다. '이,. 이게.. 맞는 거겠지?' 무수히 많은 생각이 오갔다. 언제까지 회신이 없으면 실종신고를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상상까지 흔쾌히 나아갔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만남이, 정서적인 교류가 절실하였으므로 '그래, 주사위는 던져졌다!' 굳은 결의로 OOO호로 찾아갔다.


집주인인 모임원을 포함하여 셋은 보드게임을 먼저 하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고 그들이 모인 곳으로 걸어 들어가 빈 의자에 앉았다. 하던 게임이 끝나고, 다음 게임부터 참여할 수 있었다. 이 모임에 참여하며 가장 우려했던 것은 역시 나이였다. '대학생 또래가 참여하는 모임인데 내가 낀 거면 어떡하지?' 오픈채팅방에서 '스스럼'이라든지, '달이' 같은 닉네임으로 나이를 유추하긴 아무래도 어려웠다. 또한, 보드게임을 통한 사람들과의 어울림이 목적이었는데, 의도와 달리 참여 목적을 오해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하하, 자연님은 한 명한테만 계속 공격하시네요"

"이 카드는 OO의 능력이 있어서 OO 할 때 활용하시면 돼요"

"오, 제게 그렇게 양보하셔도 되나요? 감사해요"


실종신고를 해야 할 상황은 우려와 달리 생기지 않았다. 어디서 지내는지, 얼마나 머무는지와 같은 간단한 질문에만 대답하고, 우리는 보드게임에 몰입했다. 게임을 매개로 하니 내가 어디서 무얼 했고, 어떤 목적으로 강원도에 내려왔는지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지금, 여기에서 게임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였다. 서로의 나이를 공개하게 된 것도, 연장자가 게임을 먼저 시작한다는 어떤 게임의 규칙 때문이었다. 


그곳에서의 나는 못나 보였던 게 틀림없다. 나이도 제일 많은데 직업도 없고, 보드게임이라고는 부루마블 밖에 할 줄 못하는 내가 이들에게 하나씩 배워가며 참여한다는 것이 쑥스러움으로 이어지는 게 맞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편안하기만 했다. 돌아보면, 보드게임에 참여한 이들에게 인정받을 거란 기대를 갖지 않았다. 오히려 '과연, 이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줄까?'에 관심이 꽂혀 있었다. 걱정이 뒤집힐 정도로 이들이 나를 환대해 주었으니, '잘한다'는 칭찬은 받지 못했으나, 만족스러운 도전이었다. 


나는 그동안 인정받는 것보다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인정을 받아야만 스스로 쓸모 있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보다 중요한 것이 나를 향한 나의 인정이라는 것을 새로이 깨달았다. '거봐, 자식. 낯선 사람들과 남의 집에서 보드게임도 용케 할 수 있잖아' 열악한 타지에서 기어코 낸 용기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주사위를 굴리는 성취를 이윽고 경험했다.

 

그날의 나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런 문장이 나오지 않을까?

'서울의 대쫄보, 통성명도 거른 채 초면부터 주사위를 굴리다'


Image by Szabolcs Molnar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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