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물파전과 막걸리 한 잔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말해주는 저녁

by 멈춤의 일기장

눈이나 비가 오려는 날이면
괜히 마음이 먼저 축축해진다.
그럴 때면 생각나는 건
해물파전과 막걸리 한 잔이다.


팬에 파를 길게 올려놓고,
기름 위에서 먼저 숨을 쉬게 한다.
오징어와 조개가 뒤따라 올라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주방은 잠시 작은 잔칫집이 된다.
특별한 요리는 아니지만
그 소리만으로도 마음이 느슨해진다.


노릇하게 익은 파전을 한 점 떼어
간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고,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신다.
시큼하면서도 부드러운 그 맛이
혀끝에서 천천히 퍼진다.
이상하게도 그 한 모금은
하루 동안 쌓였던 말들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괜찮게 만든다.


해물파전과 막걸리는
기쁠 때보다
조금 지쳤을 때 더 잘 어울린다.
열심히 살았다는 증명도,
괜찮지 않았다는 고백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그저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한 상차림 같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도 좋고,
혼자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막걸리 잔을 내려놓는 순간마다
하루가 조금씩 정리된다.
세상이 잠시 느려지고,
마음도 그 속도를 따라간다.


오늘도 별일 없이 지나간 하루의 끝에
해물파전과 막걸리 한 잔이 놓인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이만하면 잘 버텼다고
조용히 등을 두드려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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