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가 함께 앉아 있는 오후

부모를 대신해 살아야 했던 시간들

by 멈춤의 일기장

해가 구름에 묻혀 서늘한 날, 마음마저도 복잡하다.
서울에 사는 여동생이 일주일 휴가를 내고 내려와 있다. 막내 동생이라서인지, 자식 같은 느낌도 없잖아 있고, 같은 여자라는 이유로 말이 통한다는 핑계 덕분에 털어놓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우리는 웃고 떠들며 어른이 된 척을 하지만, 어쩐지 그 애가 집 안에 들어와 있는 동안 내 마음은 가끔 오래된 서랍을 열어젖히는 것처럼 덜컥거린다.


동생은 여전히 가볍게 웃고, 가볍게 울고, 가볍게 잠든다. 그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다. 나는 동생이 내려오면 더 잘 먹이고 싶고, 더 편히 쉬게 해주고 싶고, 더 많이 웃게 해주고 싶다. 그 마음이 어디서 오는지 나도 안다. 아마 오래전, 우리가 정말로 ‘자매’로만 살지 못했던 시절 때문일 것이다.


그때의 나는 부모를 대신해서 동생들의 부모가 되어야 했다. 우리의 부모님은 조부모님께서 남겨주신 재산을 관리 소홀로 모두 탕진하셨고, 그 뒤의 책임은 오롯이 장녀인 나의 몫이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어른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른 흉내를 내야 했다. 집안의 분위기가 무너질 때마다, 누군가는 기둥처럼 버텨야 한다는 말을 믿지도 않으면서 믿는 척했다. 동생의 학비가 걱정될 때면, 내 삶의 계획은 늘 뒤로 밀렸다. 마음속에는 늘 같은 문장이 붙어 있었다. ‘내가 먼저.’ ‘내가 해야지.’ ‘내가 참아야지.’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우리는 각자의 가정을 꾸렸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이상하게 동생과 더 가까워졌다. 어릴 때는 서로 다르다고만 느꼈는데, 이제는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동생이 내게 건네는 말 한마디, 사소한 투정, 무심한 농담 속에 ‘나를 믿고 기대는 마음’이 섞여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일까. 동생이 내려와 있는 지금, 나는 반갑고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어딘가 무겁다. 한때 내가 다 떠안았던 무게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다가도, 동생이 “언니는 요즘 어때?”라고 묻는 순간 마음이 잠깐 멈춘다. ‘요즘’이라는 말은 늘 너무 넓어서,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고, 말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웃음으로 넘기게 된다. 동생은 여전히 나를 언니라고 부르지만, 나의 어딘가는 아직도 “괜찮아, 괜찮아”를 먼저 말해야 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래도 이번 휴가는 다르다.
동생은 예전보다 단단해졌고, 나 역시 예전만큼 날카롭지 않다. 서로에게 기대는 방법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동생이 거실에 누워 휴대폰을 보며 깔깔 웃을 때, 나는 그 웃음이 오래 이어지길 바라게 된다. 그 웃음이 내게는 ‘아직 우리에게 일상이 남아 있다’는 증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구름 사이로 해가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가 다시 숨는다.
그 모습이 꼭 우리 같다. 숨고, 나타나고, 또 숨고. 그래도 결국 하루는 지나가고, 우리는 살아낸다. 동생이 떠나기 전까지, 나는 이 일주일을 최대한 따뜻하게 보내고 싶다. 서로가 서로의 과거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지금 같은 시간만큼은 고요하게 품어주고 싶다.


가족이라는 말은 때로 무겁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한 가지를 믿어본다.
우리는 결국, 조금 늦더라도 서로에게 돌아올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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